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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람은 우주니까 Jul 13. 2019

사람을 보자

생애 첫 인턴생활, 그곳에서 사람을 보기 시작했다.

 커리어를 거치면서 깨달은 바를 잊지 않기 위해 적는 소소한 글입니다. 초기 글은 인턴생활을 하면서 한 생각들, 얻은 노하우 위주입니다. 마침 카카오커머스에서 새롭게 인턴을 시작하게 됐고 브런치에 발행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어서 이전에 작가 서랍에 적었던 글들을 모두 재구성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카카오커머스 이야기 시작하기 전에 대학원, 스타트업 인턴을 하면서 먼저 깨달은 점을 적어보려고 해요. 사실 커머스 인턴의 시작은 이전의 모든 고민이 응축돼 나왔다고 생각해서요 :)




 인턴이라는 직책, 참 흔합니다. 자신의 진로를 정하기 전에 분야를 경험해보는 자리, 본격적으로 업무를 하기 전에 미리 체험해보는 자리. 안 좋은 관행까지 고려해보면, 고급인력 착취당하는 자리, 온갖 잡일 죄다 받아서 해야하는 자리. 사람마다 경험이 다양하고 그에 따라 정의도 제각각이겠죠. 제가 어떤 성격의 인턴을 하게 될지는 전혀 알 수 없지만 어떤 종류든 쉽게 할 수 없는 경험이니 기록을 결심하게 됐습니다. 아주 신선하고 즐거운 분위기도 평생 각인하고 싶고 정말 개선돼야 하는 관행도 꾸준히 곱씹어야 하니 말이죠.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인턴생활에서 저는 사람을 먼저 보게 되었습니다. (너무 흔한 깨달음...)

 

 인턴을 처음 할 때 배우는 내용에 집중하고 노하우를 습득하는 과정이 우선이 되곤 합니다. 특히 사용자경험(UX)이라는 익숙하면서도 생소한 영역을 다루는 입장에서는 더더욱 그렇게 됐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 지식이나 노하우, 정보는 모두 누군가를 거친 결과물입니다. 가령 사용자의 행태에 관한 정보는 특정한 시각을 가진 연구자가, 특정 기준을 가지고, 가공되지 않은 사용자 데이터를 처리한 결과잖아요? 그리고 노하우는 그 모든 과정에서, 공식적이 아니더라도 참고할 만한 굉장히 좋은 우회전략이고 이 역시도 그 과정을 이미 거쳤던 특수한 개인이 경험하면서 얻어낸 종류이고요.


결국 일을 배운다는 건, 개인의/집단 관점을 배우는 것.


 괜히 거창하게 써봤습니다! 특정한 방식으로 처리된 정보는 물론 그 정보를 근거로 내리는 의사결정 모두 그 근원이 되는 관점이 있습니다. 일이 왜 그렇게 진행되고 앞으로 왜 이렇게 나아가는지 이해하는 단초는 바로 그렇게 결정한 관점을 이해하는 데서 출발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관점을 익히기 위해서는? 사람을 보아야 합니다. 그 사람의 성향, 가치관, 삶의 궤적, 경험 모두 관점을 형성하는 데 관여하는 중요한 요소들이잖아요? 좀 더 확장하자면 그 사람이 포함된 조직이나 단체가 될텐데 사실 개인과 집단은 엄밀히 말하면 좀 다른 성격이 있어 보여요. 개인의 합이 집단이 되지는 않으니까요. 저는 제가 속해있던 집단까지 보려고 노력했는데 그게 너무 번거롭다면 집단의 가치를 개인이 받아들이고 대응하는 모습만 봐도 좋은 것 같아요. 관점을 다양하게 알 수 있으니까요.



 제 경우에는 운이 좋았습니다. 인턴이든 신입이든 많은 경우에 소위 사수라고 불리는 조력자가 있고 그 위에(혹은 옆에) 그보다 더 많은 경험을 하신 분들이 계십니다. 제 사수는 연구실 경험은 물론 인생경험까지 풍부한 분들이었어요. 연구실은 물론, 대학원, 학계의 분위기까지 다 알고 계셨기 때문에 그 분들을 통해 수많은 관점을 배웠어요.


 저는 모든 것을 논리적으로 해결하려고 했던 제 관점을 조금 틀어버릴 수 있었어요. 워낙 단계를 밟아서 생각하는 과정이 익숙하다 보니 처음 접하는 업무도 그렇게 진행하고는 했어요. 인턴들은 선생님이 내주시는 인턴과제를 수행하고 배정된 팀에서 프로젝트를 함께 하는데 문제는 그 모든 과제에서 논리가 능사가 아니었다는 사실...


 인턴과제는 선생님께서 직접 내주시는데 경험을 다양한 각도로 바라보고 그동안 무심코 지나쳤던 사람들의 행태에 집중하는 신선한 과제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제 입장에서는 전혀 쓰지 않던 근육을 쓸 수밖에 없었어요. 주어진 관점에서 생각을 단계적으로 이어가는 것이 아니라 현상과 상황을 새롭게 발견하는 관점(틀, 프레임)을 찾아야 했으니까요. 정답이 있는 과제는 아니었지만 만약 있었다고 해도 그 당시의 저는 거의 다 틀린 답을 했을 거예요.



 그 중 제게 의미 있었던 과제 하나만 소개할게요! 지금 UX를 계속 공부하고 경험하는 제 입장에서도 평소에 현상을 보는 버릇을 갈고 닦게 해주는 과제입니다. 바로...


잘 디자인된 경험을 찾아 소개해보세요!


 신기하게도 가장 어려운 질문이 가장 간단하게 표현되는 것 같아요. 잘 디자인된 경험이라는 건 특정 서비스, 제품, 캠페인 등이 1) 대상 사용자, 소비자의 행태, 서비스와 그들의 접점 등을 고려해서, 2) 사용자가 하면 좋을 경험을, 3) 필요한 단계로 적절하게 나눠 놓은, 그러한 경험이에요! 팁을 그때 주셨는데, 되게 고급진? 잡지나 브로슈어를 보면 비슷하게 고급진 서비스 소개들이 있을 텐데 그런 종류들이 되게 신경을 많이 쓴 경험일 것이다...


 근데 그 경험들은 사실 하기에는 너무 비쌌어요. 그걸 빼면 어떤 경험이 잘 디자인된 경험일까? 일주일에 한 번씩 과제를 내주시는데 매번 랩 미팅 때 발표를 해야 하니까 시간은 일주일 남짓이고, 너무 유명한 서비스면 일주일 안에 경험을 못할 정도니까 그것도 고려해야 되고. 와 정말 시작부터 힘들었어요.


 저는 그때 이미 석사과정에 계신 분들이 그 과제를 했던 경험이나 인턴들의 관점, 제 사수 분의 조언 등을 계속 받으면서 틀을 깨보려고 했던 것 같아요. '잘 디자인된 경험'이라는 구절의 의미를 파악하는 데 너무 집착하지 말고 사람들이 뭘 좋아하는지, 일상적으로 하는 경험들에서 특별함이 있는지 등을 살펴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사실 정의에서 시작되는 게 논리이다 보니 저는 되게 자연스럽게 논리에 갇혀있던 거죠.


 그래서 제 결과물은? 바버샵이었습니다! 이발소의 현대판이라고 이야기하는 남성전문 헤어샵인 바버샵을 경험하기로 한 거죠 :) 계기는 아주 우연했는데 마침 머리를 자를 때가 됐고 아무 생각 없이 동네 미용실을 가려다가 마침 그 미용실이 문을 닫았어요. 그래서 집에 돌아가는데 생각해보니 머리를 자르는 건 되게 일상적이면서도 중요한 일인 거예요! 전반적인 이미지에 영향도 주는데다가 남자인 제 입장에서는 머리카락이 빨리 자라지도 않으니까 실패하면 큰일인 거죠. 그러면 분명 특별한 경험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았어요.


 그렇게 리서치를 좀 했고 바버샵을 찾았어요! 동네에 되게 특별한 바버샵이 있었는데 예약이 진작 다 차버려서 못 갔어요. 시가 한 대 + 위스키 한 잔 기다릴 때 준다고 해서 가보고 싶었는데 ㅠㅠ 그래서 다른 데를 찾아서 갔습니다. 바버샵은 남성들에게 어떤 경험을 제공할까 고민하면서요.


제가 갔던 바버샵인데 분위기를 한 번 쓱 보세요! 지금은 이전했대요. ⓒBOMBMME


 신기했어요. 냄새부터 시작해서 공간 자체가 남성들한테 되게 편할 것 같았어요. 이름 있는 헤어샵 가면 여성 손님들 사이에서 헤어 받는 경우가 꽤 있는데 그걸 불편해하거나 신경 쓰는 남성 분들도 있는 걸 그때 처음 알았어요. 만약 그런 분들이라면, 아니면 정말 남성헤어'만'을 전문적으로 판 사람들을 찾아보고 싶다면 이곳으로 충분히 올 만한 분위기였어요. 

 

 바버 분들의 스타일 자체도 되게 깔끔했고 머리부터 수염까지 전부 다 남성컷 스타일인데다가 전문 가운에 개인장비를 다 갖추고 다녀서 전문가라는 인상을 받았어요. 분위기를 편하게 해주면서 나름의 신뢰까지 주는 경험요소인 거죠.


 머리를 자르기 전에 상담을 꼼꼼하게 했어요. 남자머리 잘 자라지도 않아서 망한다는 이야기 위에서 했는데 바버 분은 아예 망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작정을 하고(?) 여쭤보시는 듯 했어요. 평소에 스타일링하는 방식, 두상에 관한 제 이해, 선호하는 머리스타일부터 머리 자를 때 남성들이 하는 흔한 오해, 머리 주문할 때 하는 실수까지 다 말씀해주시더라고요. 시간은 좀 걸렸는데 그래도 배운 것도 많고 더 믿음이 갔습니다.


 그래서 이 경험을 요약하자면, 남성들이 다른 미용실에서 겪을 수 있는 불편함이 없는 공간, 남성관리에는 전문가라는 신뢰감 등을 잘 디자인해서 남성회원에게 어필한 곳이 이 바버샵! 이 내용으로 발표를 했는데 도움 되는 지적을 많이 받았어요. 경험을 시공간, 주객체가 다 얽혀있는 덩어리로 보기 쉬운데 사실은 시간축을 기준으로 한 경험소의 집합이라는 것! 그래서 정리할 때 어려움이 있다면 시간적인 축을 기준으로 고려하면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 이 내용 준비하고 발표하면서 선생님의 통찰력도 쓱 경험하고 연구실 분들의 깊은 피드백에 감탄도 했던 기억이 나네요.

 


 제 첫 인턴생활만 생각해 봐도 처음에는 사람보다 일이 먼저 보이는 게 당연해요. 특히 실적에 기여를 어느 정도 해야 하는 실무 인턴이라면 더욱 그렇겠죠. 저는 다행히도 실제 업무를 하는 기업이 아니라 대학원이어서 일보다 사람을 먼저 보려는 시각이 중요하다는 귀중한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어요. 통찰력을 뿜어내시는 선생님은 도대체 어떤 삶의 궤적을 걸어오셨고 제 팀원들은 무슨 연구들을 해왔는지 관심을 갖는 것. 이건 그다지 일이랑은 관계가 없는 인간관계일 수도 있지만 저는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무엇을 배우든 결국 사람을 배우는 것! 그러니 사람을 먼저 보자. 



 관련해서 말할 수 있는 팀 프로젝트 경험도 많지만 다 적을 수가 없어 안타깝네요. 모두 한 번쯤 배우는 입장에서 관점과 사람을 생각해 보면 참 좋을 것 같아요 :)


                                                                                                                                          <2018.08.20> W_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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