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책상 사진을 찍는 이유
저는 책상 사진을 찍는 취미가 있습니다. 맛있는 요리를 앞에 두고 음식 사진을 찍듯이, 여행을 떠나 멋진 곳의 사진을 찍듯이 저는 책상의 모습을 찍습니다. 잠깐 스쳐 지나간 책상 말고 오랫동안 정을 붙이고 매일 이용하는 책상의 모습을 찍습니다. 책상 사진은 음식이나 관광지 사진과는 다릅니다. 사진으로 남긴 순간이 기억의 단편으로 끝나지 않고 현실에서 더 오랫동안 유지됩니다. 예쁘게 세팅하거나 행복한 표정을 짓지 않아도 됩니다. 나를 받치고 있는 책상에서 한 발짝 뒤로 물러나, 지금 그대로의 모습을 담아내면 그만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남긴 사진을 몇 개월 뒤 몇 년 뒤에 다시 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2004년부터 찍은 책상 사진입니다. 입시를 시작으로 대학생, 군인, 창업, 직장 생활에 따라 달라지는 책상을 보면서 그때의 기억을 되짚어 봅니다.
미술 학원 책상에 앉아 수업 시작 전에 김밥을 먹고 있다. 은박지에 돌돌 말린 김밥 한 줄과 단무지는 7천 원짜리 가마 솥밥이 부담될 때 사 먹던 비상식량이다. 길이 80cm 정도 되는 책상에 3절지와 각종 미술 도구를 잘 배치해야 한다. 시험을 치르는 동안 절반 이상은 서서 그린다. 조금이라도 멀리 떨어져서 그림 전체를 보기 위해서이다. 손동작을 크게 쓰기 위한 목적도 있다. 처음에는 앉아서 시작했다가 아이디어 구상이 끝나면 일어나서 스케치를 시작한다. 두 시간 내외로 밑색, 덩어리, 원근감 처리가 어느 정도 되면 그제야 다시 의자에 앉아 묘사를 시작한다. 이때부터는 밀도를 올리는 작업인데 허용된 시간은 기껏해야 30분, 많으면 45분 정도. 묘사가 시작되면 책상 위 도구 배치에도 변화를 준다. 파스텔은 화구박스에 넣고 색연필과 포스터컬러, 세필을 올려놓는다. 앉았다 섰다를 반복하게 했던 자리.
미술 학원이 끝나고 밤 10시가 되면 입시 학원으로 향한다. 차가운 쇠 다리와 합판으로 만든 길이 60cm 남짓한 작은 책상. 여기서 7차 교육과정이 적용된 첫 번째 시험인 2005학년도 대학 수능 시험을 준비했다. 물론 학교에서도 공부는 했지만 별로 기억하고 싶지는 않다. 이 작은 학원에서 8명 정도가 모여 자정 넘어서까지 공부를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올려 보던 푸른 새벽의 냄새가 아직도 난다.
미술 학원 책상에 앉아 학생들 수업을 가르치고 있다. 입시반 보조 강사를 거쳐 바로 전임 강사를 맡았다. 가끔 3~4시간 풀타임 시범을 보이기도 하지만 수험생 시절만큼은 아니라서 손가락 지문이 돌아오던 시기. 학생들을 바라볼 수 있는 강사 자리가 생겼다. 노트북을 올려놓고 뚫훍송을 틀었던 기억이 난다. 애들은 얼마나 괴로웠을까? 미안.
웹캠으로 셀카를 찍고 피부 보정을 하고 있다. 2005년 대학교에 입학하고 책상부터 바꿨다. 그동안 집에서 쓰던 책상은 책장과 상판, 서랍장으로 구성된 오래된 책상 세트. 초등학생 때부터 쓰던 것이라 더 크고 멋진 책상으로 바꾸고 싶었다. 부모님께는 학교 과제를 하려면 더 큰 책상이 필요하다고 어필했다. 책상이 크면 작업도 더 잘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길이 160cm에 짙은 브라운 색의 일룸 책상을 사면서, 나이가 들어도 서재용으로 오래오래 써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이때는 결혼이라는 것을 미처 고려하지 못했다. 신혼집에 들이기엔 너무 큰 책상이었다. 그래도 13년 동안 정말 잘 사용했다. 갈아만든 배를 페트병째 올려놓아도 공간이 남는다. 사실 이 책상에서 과제는 별로 안 했다. 학교 모형 제작실에 있는 작업대가 더 유용했기 때문이다. 이 책상은 나의 싸이월드와 소서리스 육성을 책임졌다.
군대도 안 가고 휴학 없이 스트레이트로 졸전까지 마쳤다. 입대를 약 일주일 정도 앞두고 심란한 마음을 달래는 중이다. 함께 과실을 쓰는 4학년 대부분이 취업과 진로 사이에서 고민할 때 나는 군대 걱정을 했다. 내가 피아노 칠 때 앞자리에 앉은 형은 기타를 쳤다. 형으로부터 받은 스탠다드 재즈 악보는 아직도 보관 중이며 간간이 꺼내어 연주해 본다.
전역을 한 달 앞두고 행정반에서 동기들과 사진을 남겼다. 세상 무서울 것이 없던 시절. 말년인 4월 군번 네 명은 스스로를 F4라고 불렀다. 나름 모범수 모범적으로 군 생활을 했던 탓에 일병이 끝날 때쯤 군수 계원이 되었다. 짬을 먹어가며 알았다. 물자를 손에 쥔 자가 권력을 쥔다는 것을. 그놈의 A급이 뭐라고…. 강원도 화천 자주포 부대에서 4번 포수, 사수를 거쳐 군수 계원으로 행정반에 들어가기까지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다. 특히 군수 계원이 되어 내 책상이 생긴 이후가 기억에 많이 남는다.
전역 후 학교를 더 다녔다. 학업과 함께 지도 교수님 아래에서 조명 디자인을 배우기 시작했다. 사무실은 학교와는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 델 모니터가 있는 책상이 나의 자리. 이때 처음으로 맥북을 샀고 핸드드립 커피를 처음으로 내려 보았다. 그냥 맥북 샀던 것만 기억하고 싶다.
군대를 다녀왔더니 집이 바뀌었다. 동서울 터미널에서 어머니께 전화를 걸어 집이 어디냐고 물었던 기억이 난다. 전에 살던 곳은 새로 지은 24층짜리 아파트의 꼭대기 층이었는데 새로운 집은 부모님 일터에 가까운 작은 아파트였다. 내 방도 더 작았다. 그래도 160cm 일룸 책상이 있어서 든든했다. 선반 세 개를 사서 벽에 설치하고 좋아하는 음악 CD를 올려 두었다. 아이튠즈에 음악을 복사하고 나면 CD는 거의 쓸 일이 없지만, 그냥 전시해 두고 싶었다. 책상과 깔맞춤한게 만족스러웠다.
두 번째 4학년 과실. 입대 전에 졸전도 끝내고 졸업 사진도 찍었던 터라 새로운 과실 자리는 조촐하게 꾸몄다. 책상과 벽 틈에서 매트 깔고 잠도 많이 잤다. 매트는 졸업할 때 다른 후배에게 물려주고 나왔다. 아나바다! 이때는 친구들끼리 창업을 도전하던 시기였다. 의자 옆으로는 프로토타입도 살짝 보인다. 중기청 청년창업사관학교에 지원했고 특허도 등록했다. 최종 면접에서 떨어졌다.
역시, 책상은 클수록 좋다!
친구들과의 창업 도전을 정리하고 새로운 사람과 전혀 다른 아이템으로 두 번째 창업에 도전했다. 개인 쇼핑몰과 동대문 도매업자 간의 장부 관리를 돕는 앱을 만들고자 했는데 앱에 대해서는 하나도 모르는 상태였다. 일단 애플의 HIG를 완독하고 네이버 다니는 학원 제자에게 댄 브라운의 UX 디자인 커뮤니케이션 책을 빌려 보면서 모바일 UI와 산업 환경을 들여다보았다. 참고할만한 앱을 설치하고 화면마다 캡처하여 포토샵에 올린 뒤, 컴포넌트 하나하나 1px 단위로 파헤쳤다. 키스크린 100여 장과 메인 플로우, IA, 비즈니스 모델, 브랜드 로고까지 만들었지만 정작 이것을 개발해 줄 사람과 자본이 없었다.
“나 어릴 적엔 말이야, 연탄가스 마셔가면서 화면 쳤어.”
그렇다. 난방비를 아끼려고 내 책상 앞에서 연탄을 때웠다. 연통이 허술했나? 출근하면 책상 위에 연탄재가 시커멓게 내려앉아 있었다.
2013년, 피엑스디에 입사했다. 입사 전 인턴을 꽤 길게 했지만, 정직원이 된 지는 6개월도 안 된 시기. 스펀지처럼 아주 쫙쫙 빨아들이던 시기. 신입이 신입사원 교육을 만들던 시기. uxdragon님이 지금의 초심 잃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했던 시기. 창가 자리에 앉은 책임님이 블라인드를 열어 햇빛을 쬐곤 했는데 그때마다 눈부셔서 모니터 보기가 힘들었다.
또 집이 바뀌었다. 그동안 지냈던 방 중에서 가장 넓은 방을 갖게 되었다. 160cm 일룸 책상이 빛을 발했다. 고양이를 키우기 시작했는데 게임만 켜면 둘이 아주 난리였다.
프로젝트 초반, 팀원과 회의실에서 일하는 중. 책상 위에는 디아블로 3, 레고가 올려져 있다.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야근을 밥 먹듯이 하던 시절. 치킨을 먹고 있다. 내 책상은 일하고 있는 동료의 옆자리인데 아내와 함께 만들었던 머그잔이 눈에 띈다. 맥도날드에서 세트 시켜 먹고 받은 슈퍼마리오 장난감, 해외여행 다녀온 동료가 선물해준 코끼리 인형, 이제는 쓰지 않는 유선 이어폰도 있다. 근데 이 사진을 누가 찍은 거지?
이때는 야근이 너무 잦아 집에서의 생활이 거의 없었다. 방은 잠만 자는 숙소 같았기 때문에 갈수록 지저분해졌다. 휴가를 맞아 대청소하면서 책상과 책장 위치를 바꾸는 중이다. 책상 위에는 온갖 잡동사니가 너저분하게 올려져 있다.
프로젝트를 종료하고 그간의 산출물을 정리하고 있다. 출입문과 가까운 복도 쪽 자리인 게 영 불만이었는데 얼마 안 가서 무덤덤해졌다.
구로디지털단지로 파견 갔던 시절. 회의실 하나를 잡고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책상 위에는 정말 필요한 것만 올려 두었다. 맥북, 노트, 휴대폰 충전기. 여기서 생일도 맞이했는데 사진 속 PM님이 마카롱을 사와 축하를 해주었다. 일은 힘들지만 함께하는 동료들 덕분에 즐거웠던 시절.
야근하다가 간식 타임 중이다. 손에 꼽을 정도로 규모가 컸던 프로젝트. 투입 인원도 많고 기간도 길었는데 그만큼 업무적으로 많이 성장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전날, 옆자리 동료가 내 의자에 슬리퍼를 벗어 두고 집에 갔길래, 모니터 아래에 있는 소시지로 때려 주었던 기억이 난다.
집에 놀러 온 지금의 아내에게 기타를 쳐주고 있다.
초능력은 없지만 메타휴먼 히어로들의 리더인 배트맨. 온갖 격투 기술을 연마하고 지략과 자본으로 힘을 발휘하는 인간. 도저히 비교가 안 되는 힘의 차이와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맞서 싸우는 의지. 내게도 그런 정신이 필요했던 시기였다.
국책과제를 하던 시절. 인턴들이 책상 위에 먹이를 올려 두었다. 다들 잘 지낼까? 나보다는 잘 지내겠지.
아내와 함께 만들었던 머그잔을 2년 넘게 사용했었구나. 둘이서 심리 상담 후 받은 결과지도 보인다. 코끼리도 있고, 코스프레 사진도 있다.
이것도 엄연히 일하는 중. 뱁새는 잘 지낼까? 나보다는 잘 지내겠지.
건담에 꽂혔다. 1979년 작 기동전사 건담을 시작으로 제타, 더블제타, 역습의 샤아, UC, 0083, F91, 시드, 시드 데스티니, 00, 오리진을 정주행 하고, 고2 때 중단했던 프라모델에 다시 손을 대기 시작했다. 에어브러시와 컴프레서도 장만하고 마트에서 저렴한 책상을 사서 지하실에 아주 작업실을 만들어 버렸다.
국책 과제의 성과공유회를 마치고 기관 제출을 위한 보고서 작업을 하고 있다. 사이트 로그인이 안 돼서 스트레스가 극도로 심했던 하루. 책상 위에는 맥북, 서로 다른 버전의 OS가 설치된 윈도우 노트북이 올려져 있다. 인스타그램에 이 사진과 함께, 망치나 도끼 같은 거로 세게 내려치고 싶다고 올렸는데 사장님이 하트를 누르셨다.
HCI 학회 발표를 앞두고 주말에 잠깐 회사에 나왔다. 오랜만에 책상을 찍으며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오늘이 나의 마지막이라면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그동안 자신에게 솔직했고 주위에는 진심을 다했을까?’
‘지금 이 자리에 만족하나?
회사에서 기본으로 유무선 키보드가 지급되지만, 생산성 향상을 위한다는 구실로 새로운 키보드를 샀다. 이 키보드는 입력받는 장치를 손쉽게 바꿀 수 있다. 1번에는 맥북, 2번에는 아이폰, 3번에는 아이패드에 연결해 두었다. 정말 잘 산 기기 중 하나. 다만, 폰과 패드를 거치할 수 있도록 키보드 상단에 홈이 파여 있는데, 아이패드에 키보드 케이스를 씌울 경우 두꺼워서 거치 되질 않는다. 이 홈 간격을 수동으로 조절할 수 있었더라면 훨씬 좋았을 텐데.
네 번째 집. 결혼 후 방 하나는 서재로 꾸몄다. 이케아의 150cm 린몬 화이트 상판에 바퀴가 있는 크릴레 다리를 조립하여 이동이 편하게끔 했다. 사실 이동할 일은 별로 없다. 일종의 뚫어뻥 같은 개념이다. 평소엔 사용할 일이 없어도 막힌 순간 빛을 발하지 않는가! 모니터는 벽 선반에 올려 두었기 때문에 책상은 가벼운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주로 여기서는 노란 불빛의 스탠드 등을 켜고 이메일을 읽거나 글을 쓴다.
위키에서는 책상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책상(冊床, 프랑스어: bureau, 독일어: schreibtisch, 영어: desk, 스페인어: escritorio. )은 컴퓨터와 같은 장비를 사용하거나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일 등 학업, 전문가, 가정 업무를 위해, 또 학교, 사무실, 집에서 사용되는 평평한 탁자 표면을 갖춘 가구의 한 형태이다. 조선 시대에는 서안(書案)이라고 불렀다.
15년 동안 찍은 총 서른 장의 사진을 보면서, 책상이라는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봅니다. 저에게 책상은 단순히 책을 받치는 가구가 아녔습니다.
책상은 배움과 계획, 실천과 꿈을 올려두는 자리였습니다.
배우는 자리
새로운 정보와 기술은 대부분 책상 위에서 정리됩니다. 강의를 들을 때도, 영어 단어를 외울 때도, 책을 읽을 때도 책상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심지어 그림을 그릴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생각해 보면 초등학생 이후로 방 한쪽에는 항상 책상이 있었습니다.
계획하는 자리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중요한 일은 대부분 책상 위에서 구체화됩니다. 여행 계획을 세울 때도, 전시회를 준비할 때도, 사업계획서를 쓸 때도 책상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스치는 생각과 바람을 책상 위에 가지런히 펼쳐 두면 사이사이 빈틈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실천하는 자리
문제 해결과 업무 결과는 대부분 책상 위에서 완성됩니다. 글을 쓸 때도, 디자인과 설계를 할 때도 책상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직업 특성상 모든 생산 활동은 결국 책상 위에서 끝이 납니다.
꿈을 꾸는 자리
책상 앞에 앉아서 배우고 계획하고 실천하다 보면 어느새 더 먼 곳을 바라보는 나를 발견합니다. 이 책상 위에 무엇이 있으면 좋을까? 여기서 또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앞으로 또 어떤 책상과 마주할까? 새로운 책상 앞에 앉은 나는 어떤 모습일까? 질문의 답은 책상 밖에서 구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책상은 꿈을 향해 나아가게 만드는 디딤돌이 됩니다.
사진을 통해서 책상이 놓인 환경과, 책상 위에 놓인 사물을 볼 수 있습니다. 환경은 책상을 사용하는 사람이 속한 곳을 말하고, 사물은 그 사람의 취향과 욕망을 말해 줍니다. 결국 책상 사진은 그 사람이 누구인지, 한 사람의 삶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말해 줍니다.
책상 사진을 보면서 그 시절 나를 둘러싼 고민과, 함께한 사람들을 떠올려 봅니다. 과거에 품었던 질문에 스스로 대답해 볼 기회가 생깁니다. 그래서 저는 책상 사진을 찍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