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PCon 2025 팔란티어가 선언한 ‘AI 실행의 시대’
2025년이 끝나가는 12월. 내친김에 팔란티어 AIPCon까지 분석을 해보았다. 팔란티어는 큰 관심이 없는 기업이었다. 그런데 작년 육아휴직 무렵 내 주변 사람들이 하도 팔란티어 이야기를 많이 해서 조금씩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결정적으로 우연히 우크라이나 전쟁 때 팔란티어가 전쟁의 현황 분석을 담당하면서 의사결정 속도를 높이는데 주된 역할을 했다는 정보를 알게 되면서 팔란티어에 대해 본격적인 관심을 갖게 되었다. 국방 분야와 밀접한 회사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 유명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까지 팔란티어가 깊게 관여했다는 점은 인상적이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관심을 가졌던 팔란티어는 생각보다 탄탄하였고, 왜 작년에 주식을 좀 안 사놨을까...라는 판단까지 들게 되었다.
관심 있는 회사인 만큼 올해는 팔란티어가 주최하는 AIPCon을 살펴보았다. 2025년 9월에 진행한 AIPCon은 팔란티어가 기업용 AI 소프트웨어 시장을 확대하기 위해 개최하는 행사이다. 올해 진행한 AIPCon의 1줄 요약은 "팔란티어의 적용 범위가 국방을 넘어 민간 기업의 실제 운영 단계까지 확장되었다"라는 것을 자신 있게 보여준 행사였다.
지금까지 AI는 단순히 '보고서 써줘, 요약해 줘' 수준이었다면 팔란티어는 '공장 기계를 돌려줘, 비행기 스케줄 바꿔줘, 병원의 병상을 배정해 줘'라고 명령하면 회사의 실질적인 업무까지 자동으로 실현시켜 주었다는 것을 발표하였다. AI가 단순히 판단을 돕는 도구에서 현실의 시스템을 직접 움직이는 실행도구로 진화했음을 선언한 자리였다. 그렇다면 이런 'AI 실행'은 도대체 어떤 구조로 가능했을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 팔란티어의 제품 포트폴리오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팔란티어의 포트폴리오 : 고담, 파운드리, 아폴로, AIP
팔란티어는 크게 4가지 핵심 포트폴리오를 갖고 있다. 고담과 파운드리, 아폴로, AIP가 대표적인 포트폴리오 솔루션들이다.
먼저 고담은 국방, 정보기관을 위한 플랫폼이다. 방대한 비정형 데이터를 통합해 전쟁 상황 분석을 가능하게 한다. 9.11 테러 이후 "다시는 이런 비극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문제의식 속에서 탄생한 팔란티어답게 고담은 팔란티어의 존재 이유이자 대표적인 핵심 포트폴리오 중 하나이다.
파운드리는 데이터 통합 기술을 민간 기업으로 확장한 플랫폼이다. 제조, 헬스케어, 물류 등 복잡한 운영 환경에서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을 가능하게 한다. 고담과 파운드리는 초기 팔란티어를 국방업 포트폴리오를 쌓도록 도와준 기술들이고 기술력도 뛰어났다. 하지만 팔란티어로서 큰 문제는 수주가 될 경우 팔란티어의 기술자들을 파견하는 형태라 무척 노동 집약적이고 수익률이 좋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아폴로와 AIP이다. 아폴로는 고담, 파운드리, AIP와 같은 팔란티어의 솔루션을 고객사의 다양한 환경에 설치, 업데이트 관리를 잘해주도록 관리하는 플랫폼이다. 스마트폰의 자동 업데이트 시스템이나 앱스토어 관리자처럼 앱이 늘 최신 버전으로 업데이트되고 잘 돌아가게 해주는 역할을 하는 셈이다. 기업의 복잡한 서버 환경에서도 자동으로 업데이트, 배포가 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아폴로의 등장은 팔란티어를 컨설팅 회사가 아닌 소프트웨어 회사로 만들어준 전환점이 되었다. 아폴로 솔루션으로 소프트웨어 구축 시간은 기존 70일에서 14일, 혹은 몇 시간 단위로 줄였다는 통계가 나올 정도이다.
2023년 출시된 AIP는 기업용 챗GPT이다. 일반 AI는 회사의 비밀 정보나 실시간 재고, 배송 상황을 모른다. 이런 기업 고유의 데이터를 연동해 기업만의 에이전트를 만들어주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AIP가 출시되었을 시점부터 팔란티어가 큰 주목을 받았던 이유는 '온톨로지(Ontology)'라는 개념 때문이다. 온톨로지는 이름만 들어서는 알기 어려운데 쉽게 말해 번역기이다. '배'가 사람의 신체를 의미하는 배가 될 수도 있고 먹는 '배'가 될 수도 있다. 이렇게 특정 단어는 회사의 상황에 따라 사용하는 의미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는데 팔란티어는 각 산업, 기업의 맥락을 AI에게 가르쳐 정확한 답을 얻어내는 형태다. 이런 구조 덕분에 AIP는 단순 데모나 개념 증명이 아닌 빠른 시간 안에 실제 업무 문제를 해결하는 도구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이 팔란티어의 사업 전략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2025년 AIPCon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 변화는 팔란티어의 세일즈 방식과 플랫폼 전략이다. 과거 엔지니어를 오랫동안 파견해 컨설팅을 해주던 방식에서 벗어나 이제는 'AIP 부트캠프'라는 단기 집중 워크숍을 통해 고객을 확보한다. 고객사는 1~5일 동안 AIP를 직접 사용하면서 즉각적인 문제 해결을 경험해 보는 형태다. 이 방식으로 국방 고객사를 넘어 민간 고객사까지 빠르게 확대를 해나갈 수 있었다.
Any Storage, Any Compute, Any Model
동시에 팔란티어는 저장소, 컴퓨팅 환경, AI 모델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개방형 아키텍처를 내세웠다. 기존 팔란티어는 폐쇄형 생태계에 가까웠다. 팔란티어 파운드리의 경우 자체적인 통합 환경을 제공하지만 공식적으로 지원되는 외부 통합이 많지 않았다. 팔란티어가 네이티브로 지원하는 외부 도구는 마이크로소프트 파워 쿼리 등이 언급될 정도로 제한적이었다.
이런 한계를 돌파하고자 특정 모델에 종속되지 않는 구조, 엔비디아와의 협업을 통한 확장, 다른 기업도 활용할 수 있는 기업용 AI앱스토어 'AIP Now' 공개는 팔란티어가 단일 솔루션 기업을 넘어 플랫폼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개인적으로 폐쇄형에서 개방형으로 변경되었다는 사실이 AIPCon을 보면서 놀라워했던 지점이다. 고비용 컨설팅 중심의 기업에서 낮은 진입장벽과 높은 확장성을 가진 개방형 AI 플랫폼 기업으로 진화해 나가는 중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국방 고객사를 넘어 민간 고객사까지 확대하는 중
AIPCon은 팔란티어가 국방을 넘어 민간 산업 전반에 'AI 실행'을 담당하는 플랫폼으로 진입했음을 선언한 무대였다. 과거 아메리칸 에어라인스 항공은 엄청난 엑셀로 스케줄 관리를 했었다. 팔란티어를 적용하면서 스케줄을 실시간 최적화해 수천만 달러의 비용을 절감했다. 노바티스는 수십억 건의 임상 데이터를 통합해 환자 코호트 분류 시간을 1주에서 2시간으로 단축했다. 그 외에도 뉴클리어 컴퍼니는 팔란티어를 통해 원자력 발전소 건설 기간을 절반으로 줄이게 되었다. 기업에 실질적으로 접목하면서 팔란티어의 AIP는 더 이상 분석 결과를 그냥 보여주는 도구가 아니라 기업의 여러 데이터를 한데 결합해 실제 시스템에서 실행할 수 있도록 자리 잡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었다.
AIPCon에서 발표한 전략이 결코 공허하지 않다는 사실은 분기 실적 발표에서 나타났다. 2025년 3분기 실적 발표에서는 글로벌 상업 고객 수가 전년 동기 대비 49%, 미국 내 상업 고객 수가 65% 증가하였다. 이 수치들은 결국 팔란티어가 '실행'까지 시켜주는 회사라는 것을 입증한 셈이다. 단순히 데이터를 보여주고 분석해 주는데 그치지 않고 솔루션을 찾아 실행하도록 만들거나 실행까지 연결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AIPCon은 팔란티어가 단순히 기술력을 보여준 자리가 아니라 AI로서 실행을 이미 해내고 있음을 증명한 무대였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