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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 기획자 Sep 03. 2021

디지털 휴먼에 대한 착각

외관만 사실적으로 만든다고 능사는 아니니까,

최근 3년간 CES를 비롯한 각종 발표회마다 디지털 휴먼을 선보이고 있다. 기술 경연대회라도 하는 것처럼 각 기업마다 사람보다 더 사실적이고 아름다운 디지털 휴먼 기술이 나타나고 있다. 얼마나 사실적이고 아름다운지 SNS에 팬클럽이 생겼을 정도이다. 최근에는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진출하여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게임에 나타나 게임 캐릭터로 각광을 받기도 한다. WHO는 금연 상담을 위한 코치 겸 가이던스로 사람 같은 디지털 휴먼이 사용되기도 한다. 그럼 과연 이토록 사람 같은 디지털 휴먼을 보고 진짜 사람은 어떤 기분이 드는 것일까? 마케팅이나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 사람 같은 디지털 휴먼을 적용하면 모두 효과가 큰 것일까?



인간은 어떤 미디어나 로봇, 컴퓨터와 같은 대상에서 인간다운 특성을 발견할 때 무의식적으로 자연스럽게 사회적 행위자처럼 대하고 반응하게 된다. (Reeves & Nass, 1996) 이렇게 로봇이나 컴퓨터와 같은 대상을 인간처럼 인식하고 대하게 되는 현상을 의인화하고 한다. (Epley, Waytz, & Cacioppo, 2007). 그리고 이 디지털 휴먼은 가장 대표적으로 인간다운 특성을 부여한 '의인화된 표상'이라고 볼 수 있다. 




의인화, 그것은 무엇인가

디지털 휴먼이 얼마나 인간답고 사실적이어야 사람들에게 호감을 느낄 수 있을지 알아보기 위해서는 '의인화'에 대해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의인화는 크게 외적 의인화와 내적인 의인화로 나눌 수 있다. 


외적 의인화는 인간의 특징들을 기계의 외관에 반영한 것을 의미한다(Bartneck et al., 2007). 학계에서는 디지털 휴먼이나 의인화된 대상이 인간과 유사할수록 의인화의 효과가 높게 나타나는 것으로 파악하였다. 단순히 인간의 피부나 눈, 입 모양이 유사하면 유사할수록 덜 비슷한 의인화 대상보다 더 믿을만하고 매력적으로 보인다는 것으로 평가되었다.(Koda, 1996) 


하지만 이런 외적 의인화는 일정 수준 의인화 정도가 지나 인간과 구분 자체가 어려워지는 순간이 올 때 호감도가 급격하게 감소하기 시작한다(Ishiguro, 2005). 바로 이렇게 의인화 대상, 예를 들어 디지털 휴먼에 대해 이질감이 느껴지거나 인공적으로 느껴지면서 급격하게 기존에 느꼈던 호감까지 불쾌감을 느끼는 구간을 Uncanny Valley라고 한다. Batneck이라는 학자는 로봇/디지털 휴먼에게서 어색함을 느낄 때 급격히 호감이 낮아지다가 다시 사람과 비슷해지면 호감이 높게 상승한다고 주장하였다. 문제는 한번 떨어진 호감도는 아무리 사실적으로 닮게 만들어도 좀처럼 호감과 신뢰가 회복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애초 사람과 닮지 않았던 로봇의 호감도가 높게 나타나는 결과가 나왔다.(Bartneck, 2007)


이렇게 디지털 휴먼, 로봇에 대한 의인화는 설계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사용하는 사람들이 호감을 가질 수도 있고 불쾌감을 느낄 수도 있다. 단순히 얼굴만 사실적으로 만든다고 능사가 아닌 것이 외관과 목소리와 불일치로 인해 Uncanny Valley가 크게 생기기도 한다.(Mitchell et al.,2011). 또 아무리 시각적으로 사실적인 로봇, 디지털 휴먼을 만든다고 하여도 상호 인터랙션의 수준에 따라 사용 의도, 사회적 실재감, 정보 품질 등이 낮게 평가되는 경우가 얼마든지 발생하고 있다. (Nowak & Biocca, 2003) 그렇기에 어떤 서비스나 솔루션에 의인화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사람처럼 이라는 가정보다는 어떻게 하면 사용하는 사람들이 이질감을 적게 느낄 수 있을까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해야 호감을 가질 수 있는 디지털 휴먼을 만들 수 있을까? 조금이나마 Uncanny Valley 구간에서 멀어져 신뢰할 수 있는 디지털 휴먼, 로봇을 만들 수 있을까?

 

이를 위해서는 역설적이게도 의인화된 AI의 한계와 역량을 명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필요하다. AI가 사람처럼 할 수 없지만 사람처럼 대하면서 기대감을 얻게 해서는 안된다. 사람처럼 처리할 수도 없으면서 외관만 사람같이 만들어 놓을 때 비현실적인 기대를 갖게 된다. 

 

불필요한 기대를 버리도록 설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출처 : Google)



왼쪽 사진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명확히 제시되어 있다.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명확히 구분하면서 사용자는 해당 서비스가 '완전 인간적인' 서비스가 아닌 '인갈을 보조'하는 역할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아직 진짜 사람과 같이 서비스를 제공해줄 수도 없고 인터랙션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오른쪽과 같은 발화를 할 때 사용자를 혼란시킬 수 있다. 'Hey I'm Allstar'라고 하면서 또 하나의 디지털 휴먼이 어떤 코치 서비스를 제공해줄 때 사람들은 비현실적인 기대를 하게 된다. 같은 서비스라 할지라도 좌, 우의 의인화 레벨을 어떻게 조절하느냐에 따라 사용자의 경험은 완전히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정확한 신호 주기에 대한 인터랙션 역시 필요하다. 인간과 유사한 '디지털 휴먼'의 경우 인터랙션 방식이 중요한데 인간과 비교하여 자연스러운 발화를 기대하도록 만들면 안 된다. 인간은 '달달하게, 노르스름한' 등의 애매한 단어를 사용해도 그 상황과 감정에 따라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디지털 휴먼은 자연스러운 발화가 가능할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아직 인간과 동일한 수준의 인터랙션이 어려운 상황에서 언제 어디서나 인터랙션이 가능하도록 유도를 하기보단 정확히 할 수 있는 인터랙션, 주기 등을 미리 설정하는 것 역시 사용자 경험에 도움이 된다. 





인구수는 갈수록 줄어가고 있지만 디지털 휴먼의 숫자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인간보다 더 우월하고 때론 더욱 인간 같은 디지털 휴먼이 등장하면서 기술의 진보가 나날이 발전되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좀 더 '인간다운' 디지털 휴먼을 만들기 위해 모두가 고민하는 찰나에 '인간다움'에 대한 기준이 문득 궁금해진다. 


어제는 평소 존경하는 한 인생 선배님을 오랜만에 뵈었다. 나를 만나자마자 활짝 웃으시며 안부 인사를 건네는 선생님의 따스한 얼굴에 '오랜만'이라는 시간의 간극이 허물어졌다. 눈빛, 제스처, 어투, 표정 등이 모두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그녀의 생각과 마음이 내게 전달되고 있었다. 나 역시 만나자마자 마음의 자물쇠가 무장 해제되면서 깊은 속마음의 이야기가 나도 모르게 술술 나오게 되었다. 잠깐이었지만 나는 진심을 다해 대화를 하였고, 그래서 더욱 충만했다. 어쩌면 디지털 휴먼이 넘지 못하는 산은 외적인 것이 아닌 인간만이 가진 '진심'의 알고리즘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디지털 휴먼의 Uncanny Valley 역시 진심인 줄 알고 다가갔으나 진심이 아니라 어색한 기계였음을 알고 낯설게, 심지어 오싹하게 느껴지는 게 아니었을까. 디지털 휴먼의 의인화에 대해 생각을 하며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더욱더 깊게 고찰해보는 하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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