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어떻게 영감을 주는가
주말 동안 친정 집에 내려가 막내 동생의 컴퓨터를 빌려 쓰게 되었다. 막내 동생의 키보드는 '게이머'를 위한 키보드였는데 타자를 치는 맛이 달랐다. 타닥타닥 자판을 치는 감도가 좋아 계속 원고를 써 내려갔고 꽤 생산성 높은 저녁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단지 내 도구가 일반 키보드에서 기계식 키보드로 바뀌었을 뿐인데 시간의 질은 확실히 달랐다.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것도 다 옛말인가 보다. 내가 사용하는 도구는 곧 나의 사고방식, 시간의 질을 결정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최근 똑똑한 도구 덕분에 흥미로운 영감을 얻고 있다. 게다가 이 도구 덕분에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 한껏 풍부해지고 있다. 그 도구는 바로 '창조하는 AI'이다. 나에게 익숙한 AI는 음성 타이핑을 대신해준다던지, 모르는 것들을 대신 찾아주는 형태로 인간의 능력을 보조하는 기능이 많았다. 내 데이터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보다 나에게 최적화된 상품을 추천해준다던지, 내가 흥미롭게 바라볼만한 쿠폰을 제안해준다는 등의 활용이 많았다. 그래서 아마존의 디렉터 로니 코하비는 'Data is King'이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의식주 생활 전반에 걸쳐 쌓인 고객 데이터는 고객을 사로잡을 수 있는 비장의 카드와 같이 언급하곤 하였다.
내 일을 자동화해주고, 나를 보조하는 데서 더 나아가 데이터는 요즘 '영감을 주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창작품을 대신 만들어 선보이기도 하고, 뜻밖의 이야기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창조'와 '혁신'의 영역은 인간 고유의 능력이라 믿었던 영역이었지만, AI가 진화하면서 인간과 AI의 능력이 공존하는 형태가 되어버렸다. AI는 어떻게 창조를 하면서 인간에게 영감을 주는 것일까.
빠르게 연결시킨다
“창조라는 것은 그냥 여러 가지 요소를 하나로 연결하는 것입니다."
스티븐 잡스가 정의한 창의성은 '연결'이었다. AI 기반의 창작 사이트는 아주 간편하면서도 쉽게 연결을 시킨다. 텍스트와 이미지와 연결을 시키고 감정과 이미지 간 연결을 한다. 엉뚱한 개체들끼리 서로 연결을 해본다. 구글 포토 같은 경우 사진을 구글 클라우드에 저장시켜 놓았을 뿐인데 알아서 연결을 하여 제안을 해주는 경우가 많다. 2017년, 2018년, 2019년과 같이 특정 시간 순서대로 이미지들을 연결시킬 때도 있고, 잊힌 장소를 매개하여 연결하는 경우도 있다. 뜻밖의 장소, 뜻밖의 요소 제안 등을 통해 생각의 폭을 확장시킨다. 예측 불허한 연결을 통해 인간은 기억을 상기시킬 수 있고 연결을 통해 영감을 얻을 수 있게 된다.
다양한 시도가 허용된다.
유화 작품을 하나 완성하기 위해서는 1-2개월 정도 소요된다. 유화의 특성상 쉽게 마르지 않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요즘에는 기술이 좋아져 빨리 마르게 하는 약품도 있다 하지만 통상적으로 유화 한 작품을 만들려면 재료의 특성 때문에 시간이 제법 걸린다. 만약 한참 그리다가 다른 스타일로 그려야 할 때는 겹칠 하면서 시간이 소요된다. 하지만 달리(DALL-E 2) AI 프로그램을 활용한다면 어떤 스타일이든 빠르게 변형시킬 수 있다.
달리는 인터넷의 수억 개 이미지로 훈련하여 생성하는 이미지 창작 설루션이다. 특정 텍스트를 입력하면 설루션을 생성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고흐 스타일, 피카소 스타일 등 특정 화가 스타일을 빠르게 적용해 변형이 가능하다. 재료, 개체의 크기, 화풍 등 다양한 변수에 따라 작품 창작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예전에는 소요되는 시간, 재료의 한계 등으로 시도조차 하지 못했던 창작의 범위를 AI를 통해 간편하게 변주를 줄 수 있게 되고 있다. 다양한 시도와 실험적인 결과물로서 인간에게 영감을 제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새로운 작품을 수용하게 만든다
전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 갔다 와도 기억에 남지 않는 이유는 '나'와 연관이 없거나 '작품의 가치를 몰라서'일 테다. 하지만 내가 관심 있거나 좋아하는 주제, 색상, 터치의 관심이라면 나와 연관이 있기에 조금이라도 애착이 생기도 관심이 간다. 혹은 이 작품에 어떤 의미가 담겨있고 왜 훌륭한지를 알 수 있다면 그림이 다시 보이게 된다. 인공지능 AI의 경우 창작은 AI가 하지만 명령은 인간이 한다. 내가 필요한 주제, 내가 좋아하는 색상 등을 선택해 명령을 내려줄 수 있다. 나와 연관이 생기는 것이다. 내 취향이 담긴 여러 작품들을 다양하게 제안받게 되면서 새로운 작품들을 보다 쉽게 수용하게 된다. 내가 관여를 하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간접적인 관여자가 되면서 새로운 작품을 포용할 수 있게 된다. 이전에는 관심이 없거나 몰랐던 작품들을 편하고 다양하게 마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셈이다.
창작을 할 수 있는 인공지능 사이트를 경험하면서 단순히 기능을 보조하는 수단을 넘어 영감을 제공하는 동반자로 진화하고 있음을 여실히 느끼고 있다. 갈수록 똑똑해지는 AI를 '잘' 활용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명령어와 양질의 데이터가 중요하다. 편파적인 데이터, 비윤리적인 AI 때문에 구글이 만든 Imagen과 같은 AI 창작 사이트는 폐쇄적으로 운영하기도 한다. 가령 스튜어디스를 검색하면 주로 여성 스튜어디스만 그림으로 보여주는 형태로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게 한계이다. 편파적인 데이터 문제만 해결한다면 창조하는 AI는 연결하고, 변형하면서 큰 영감을 제공하면서 진화할 것으로 전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