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과 연락이 안 된다!
2019년 박사과정을 입학한 뒤 참 다양한 일들이 있었다. 가장 엄청난 일은 가까스로 출산을 하게 된 것이다. 비혼족이었던 내가 결혼을 해서 아기까지 출산하게 되다니, 참 세상일은 내 마음대로 속단해서는 안 되는 것 같다. 아기가 태어나고 30일까지는 기절하는 줄 알았다. 2시간에 한 번씩 일어나 아기에게 분유를 줘야 했다. 그 이야기는 대부분 깨어 있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 시기를 겪으면서 아기 키우는 것과 박사과정 공부하는 것은 분야도, 결도 다르지만 체감상 힘든 건 아기 키우는 것이 200배는 더 힘든 느낌이었다. 그래도 아기 키우는 건 보람이 있었다. 이전의 성취감과 즐거움도 좋았지만 약간 허무함이 밀려오는 행복이었다면 아기가 주는 행복은 오래가는 행복이었다.
행복한 시간은 물론 좋았지만 이렇게 행복에 젖어있는 사이 시간은 계속 지나가고 있었고 나는 본의 아니게 장수 박사생으로 접어들게 되었다. 논문을 못써서 계속 빌빌대고 있는 박사생이 되고 만 것이다. 나름 학사, 석사, 박사 수료까지는 단 한 번의 휴학 없이 스트레이트로 가장 빠르게 달려왔는데 박사는 참 쉽지 않았다. 일, 육아, 박사 과정, 이렇게 3가지를 동시에 역할 분담을 하려고 보니 정말 몸이 남아나질 않았다.
뭐 하지만 늘 그렇듯 닥치면 다 하게 되어있다. 바쁜 건 사실 고민거리가 아니다. 정작 중요한 고민거리는 나처럼 바쁜 사람을 마주하는 일이다. 우리 교수님도 올해 매우 바쁘신 환경에 놓이셨는데 그래서 연락이 잘 안 된다. 올해 난 꼭 논문을 써서 졸업의 문턱에 가야 하는데 정작 나를 지도해 주실 교수님의 연락이 안 되고 있다. 2주에 한 번씩 논문 진도 체크를 하자는 교수님은 메일을 드려도 답변이 없으신데, 이런 경우 직접 찾아가야 하는지 카톡을 드려야 할지 고민이다. 친구나 동료라면 자유롭게 전화를 하거나 카톡을 드릴 텐데 아직은,...(아직도) 교수님이 어려워 제대로 하염없이 교수님 연락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바쁜 교수님께 지도를 받는 박사과정생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이것에 대한 내 생각은 교수님의 진도체크나 연락에 너무 의존하지 않은 채 스스로 진도 체크를 해 나가야겠다는 것이 결론이다. 논문 작성을 위해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연구나 논문 집필을 하면서 교수님께 말씀드리는 형태로 진행해야 진도를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교수님의 연락, 약속한 진도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한채 하루종일 교수님 연락만 기다리다간 끝까지 작성하기가 어려워서 진도체크나 연구 방향은 스스로 진행하면서 교수님을 설득해 나가는 방향이 더 빠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시간이 몹시 부족한 박사과정생은 어떻게 일정 관리를 해야 할까?
아기가 탄생하면서 행복감에 젖어있긴 하지만 논문을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하다. 아기가 잘 때 틈틈이 논문을 읽다가 죽도밥도 안될 것 같아 내 집중력이 가장 높은 시간을 활용해 뭉텅이 시간을 빼놔 논문 집필을 하고 있다. 아침 4시간 동안 베이비 시터나 산후도우미 선생님의 도움을 받고 있다. 정신이 멀쩡한 시간에 바짝 논문을 읽고 쓰는 준비를 하고 있는 셈이다.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서 틈틈이 조각난 시간들을 모아 논문을 읽어 나가고 있다.
박사 과정을 경험하면서 학문적으로 엄청난 발전을 하거나 내 머리가 비약적으로 좋아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태도는 확실히 변화가 생겼다. 진흙탕 속에서 어찌어찌 공부를 해나가는 힘이 생겼다고 해야 하나. 뭐 이런 생각을 쓰면서도 부끄럽다. 글 쓴 건 엄청 열심히 논문을 읽고 쓴 것처럼 썼지만 사실 고3 수험생처럼 그렇게 미친 듯이 연구하는 모드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지치지 않고 꾸준히 흙탕밭에서도 연구를 해 나가는 나 자신에게 힘내라고 하고 싶다. 언젠가 아기가 컸을 때, 그래도 너를 키우면서 나도 크기 위해 이런 노력을 했다고 에피소드처럼 들려줄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