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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 기획자 May 17. 2024

박사과정 육아맘, 어떻게 멘탈관리를 해야 할까?

육아맘의 멘탈관리 비법

"음... 그러니까, 나 혼자 무인도에 있는 기분이야."

오랜만에 내 다이어리에 끄적인 낙서다. 논문을 써야 하는 학생과, 아기를 돌봐야 하는 육아맘은 어울리는 듯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아가의 얼굴을 보면서 논문을 한 줄이라도 끄적여야 하는 이 상황은 혼자 무인도에 뚝 떨어져서 빌딩을 하나 건축하는 기분이다. 고립감과 불안감에 멘털이 흔들리지만, 아기의 웃음을 보면 또 사르르 녹는 게 엄마다. 아직 이빨도 안 난 아기가 나를 보고 하회탈같이 웃어주면 논문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아가랑 소풍이나 갈까, 싶다가도 그동안 투자한 돈과 시간을 생각하면, 그리고 내 꿈을 생각하면 그래도 논문은 써야지.로 마음을 고쳐먹는다.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고 하지만, 함께 갈 이가 주변에 없다면 무적의 멘탈관리가 필수적이다. 동료도 없고, 학생도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논문을 쓸 수 있을까?




1. 굽신굽신 교수님, 도와주세요. (행정팀도요)

아가를 키워본 경험이 있는 교수님께 읍소를 하기로 했다. 교수님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 허접한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제대로 준비되지 않았으면 찾아가지도 않았다. 그래서 드문드문 연락을 드리곤 하였는데 마음을 고쳐먹었다. 교수님이란 실망하기 위해 존재하시는 분들이라고. 교수님이 내게 실망을 하실지 안 하실지 그건 모르겠지만, 설사 실망을 하시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했다.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교수님께 계속 연락을 하였다. 


굽신굽신 연락을 드렸지만.... 교수님은 너무 바쁘셨고, 연락이 꽤나 자주 씹혔다. 씹힐 때마다 처음에는 상처를 받았지만 나중에는 예약 메일, 예약 카톡 등으로 줄기차게 연락을 취해 온라인 만남을 이어갔다. 아기를 돌보지 않았다면 아마 학교에 찾아가서 살았겠지만, 지금 내 처지는 온라인으로만 대면할 수 있는 상황이다. 어떻게든 도움받을 수 있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구하는 방법밖에 답이 없었다. 자존심이고 체면이고 다 내려놓고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논문과 연결된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육아하며 논문을 쓰는 박사과정생에게 동지가 없어 사이버로 행정팀에 연락을 엄청나게 했다. 남편에게 전화한 것보다 행정팀에 연락한 횟수가 더 많은 것 같다. 메일도 하루 최소 3통 이상을 보내면서 문의를 했다. 아마 행정팀 직원들은 모 학과의 미저리 혹은 바보라고 나를 부르지 않았을까.... 나는 정말 기본적인 것도 몰랐는데 예를 들어 "종합시험을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뭐 이런 사소한 것도 몰랐다.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이 늘 있었는데 내게 지푸라기끈은 행정팀이었다. 나중에 졸업하면 행정팀에 선물세트라도 돌려야겠다. 

2. 하루에 한 줄만, 하루에 하나만 해보자.

내가 뭐 대단한 걸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쓰레기를 만든다고 생각했다. 논문을 쓴다고 생각하면 정말 한숨이 푹푹 나고, 실제로 흰머리도 많이 생겼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인터넷 강의를 호기롭게 오픈하겠다고 약속해서 논문과 데이터 시각화 강의 준비를 동시에 하게 되면서 심적으로 힘들었다. 이때 내 멘탈을 지탱했던 건 위대한 걸작을 만들겠다는 다짐이 아니라, 쓰레기 더미를 왕창 만든 다음 그중에서 쓸모 있는 것을 재활용하자는 생각이었다. 하루에 하나씩만, 딱 5분만 논문을 쓰자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실제로 5분만 논문을 썼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엉덩이는 꽤 무거운 편이라서 5분간 시작을 하면 최소 50분은 논문에 집중하게 되면서 조금씩 진도를 빼기 시작했다. 



3. 작은 성공 체험을 누적해 보자. 

전공은 UX, 게다가 생성형 인공지능이라서 내 논문 주제는 꽤나 핫한 아이템이다. '박사 논문'을 쓴다고 생각하면 무인도에서 타워팰리스를 짓는 느낌이지만 요즘 관심 있는 아이템에 대한 기사 한편씩 쓴다고 생각하면 무인도에서 소꿉놀이 하는 느낌으로 부담감이 확 줄어든다. 


나는 브런치와 블로그에다가 연구하는 근황, 내 논문에 대한 아이템들을 계속 수집하고 정리하는 창구로 활용하고 있는데 한편 완성될 때마다 뿌듯하다. 누군가에게 한 편의 글이 무슨 성공이냐고 할 수 있겠지만, 육아맘에게는 한 편의 글을 완성했다는 기쁨이 크다. 작은 성공이 누적되면서 그 기쁨으로 공부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블로그 글 한편이 곧 논문의 일부가 되었기에 조금씩 진도를 나갈 수 있었다. 작은 성공 체험은 박사과정 육아하는 엄마에게 귀중한 기회이다. 작디작은 성공 경험이 없으면 이 기나긴 터널을 뚫고 가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4. 문구류를 적극 활용해야지, 

작은 성공 체험과 연결되는데 모조리 기록했다. 내가 논문작성을 몇 번 시도하였는지, 논문을 몇 번 읽었는지 이런 작은 것들도 기록을 해놓고 혼자 뿌듯해했다. 데이터들은 눈에 보여야 와닿는다. 나도 내가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는지 계속 기록을 하면서 확인을 할 때 불안감이 조금은 사그라들었다.


5. 아기에게 미안하지 않도록 나를 보듬아주기.

'아, 이 시간에 아기나 돌볼걸. 나는 지금 모 하고 있나.'

'아, 자괴감이 든다. 진짜 박사과정 괜히 들어갔나.'


진도가 나가지 않거나 생각보다 성과가 좋지 않을 때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육아로 자꾸 핑계를 대거나 숨게 된다. 생각해 보면 아기가 없을 때도 나는 그다지 성실한 연구자가 아니었다. 아주아주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도 아니고, 그냥 필요할 때 하는, 무식하고 용감한 벼락치기 직장인이었다. 자꾸 아기를 핑계로 내 상황을 모면하거나 숨지 않기로 노력했다. 물론 쉽지는 않지만.... 아기에게 미안하지 않으려면 어찌 되었든 지금 이 상황에서 있는 힘껏 최선을 다해보자고 결심을 했다. 아마 이 마음이 나를 지탱한 가장 큰 원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결론적으로 아기를 키우며 흔들리는 멘탈을 붙잡을 수 있었던 건 아이러니하게도 아기의 힘이 크다. 나는 시간이 부족했기에 최대한 짧은 시간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해야만 했고, 아기에게 미안하지 않기 위해 그래도 힘을 냈어야 했다. 오만가지 각종 사람들과 환경의 도움을 있는 힘껏 최대한 받으려고 노력을 했던 것 같다. 


답답하고 불안하다고 느낄 때면 하루에 하나씩만 해 나가자.라고 계속 중얼거렸다. 혼자서는 결코 할 수 없기에 누군가의 도움이 필사적으로 필요한 시기이다. 도움을 최대한 받되, 나중에 졸업하게 되면 잊지 않고 챙겨야지. 예비심사 본 심사 다 통과하면 날 도와준 많은 분들에게 소고기 한번 쏠 정도로 돈을 모아 놓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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