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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야다 Mar 12. 2020

뭔가 대단한 것을 만들고 싶은데

8할이 건방

 건방진 얘기를 하나 하자면, 독립출판 페어나 일러스트 페어, 전시, 난해한 작품 같은 것을 구경할 때 솔직히 '나도 이 정도는 하겠다.'하고 종종 생각할 때가 있다. 스스로 너무 건방진 생각인 것을 알기 때문에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하지만 속으로 나의 가능성에 작게 불씨를 지핀다. 이런 무모한 가능성은 직접 돌입해보면 당연히 무참하게 짓밟히는 경우가 많다. 잠깐 들여다보는 입장에서 공개되기까지의 수많은 고생과 실패의 디테일이 보일 리 만무하다. 그래서 가볍게 시작했다가 접었던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나의 근자감은 지금까지 무언가를 시도해 볼 원동력이 되었던 것은 분명하다. 겁도 없이 도전하고 깨지고 실패하고 좌절하겠지만 그러다 하나는 괜찮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남는 장사 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무턱대고 덤볐던 프로젝트는 <어쩌면 황금기> 팝업북 제작이었다. 퍼블리셔스 테이블이라는 독립출판 페어에 나가기 위해 구라로 써서 냈던 것이 그만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내가 책을 만들어야 한다니!! 기왕 만드는 김에 유니크하고 재밌는 걸 만들어 보자! 시작은 호기로웠다. 3개월 안에 뭔지 모르겠지만 재미있고 유니크한 책을 만들어야 한다. 그게 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그런 느낌적인 느낌 알지 않는가.


 1달은 거의 구상으로 시간을 보냈다. 짧은 시간 안에 글과 그림을 완성도 있게 만들 자신이 없어 기술적인 접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책 그룹에서 파리에서 산 팝업북을 펼쳤다. 파리의 유명한 관광 명소에 대한 짧은 소개 글과 해당 건축물이 벌떡벌떡 일어나는 책이었다. 나의 지인들이 많이 탐냈던 완성도 높은 팝업북인데 어째선지 그 날 '이 정도 난이도라면 나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하고 또 건방을 떨고 만 것이다. 그 날부터 팝업북 제작 워크샵이나 책 동영상 등등을 찾보다 그만 팝업북의 매력에 빠져버렸다. 내가 그리는 할매 할배 컨텐츠로 팝업북을 만들 생각에 신이 나서 팝업북 화면을 구성하기 시작했다. 팝업의 기술은 다양하고 경이로웠고 두 눈을 잡아 끌만했으므로 페어에 들고나가면 굉장한 반응을 얻을 거라 확신에 찼고 팝업북처럼 내 마음도 펄떡였다. 나대지 마 심장아.


 두근거림을 지나자 기술을 익히고 내 컨텐츠로 만들기 위한 지난한 과정이 있었다. 레퍼런스 삼고 있던 것과 같은 구조로 만들어 보아도 내 팝업북은 좀처럼 팔딱하고 힘 있게 튀어나오지 않았고 이 것이 각도의 문제인지 종이의 문제인지 구조의 문제인지 알기 위해 삽질의 연속인 날도 많았다. 날은 다가오고 나는 조금씩 초조해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제작 문의를 했던 팝업북 업체에서 전화가 왔다. 나는 보통 나를 갈아 넣어 인건비를 줄이는 방향을 주로 선택하는데 팝업북은 나의 전문 분야도 아니기 때문에 업체에도 문의를 해봤었다. 하지만 가격을 듣고 역시 나를 갈아 넣어야겠다 굳게 생각하고 삽질정신을 십 분 발휘했던 것이다. 그러던 중 나의 작업에 관심을 가져준 업체 대표와의 통화는 단비 같았다. 통화 말미에 너무 모르겠으면 사무실에 한번 방문하라는 말이 으레 하신 말인 줄 알지만 나는 간절했기 때문에 음료수를 사들고 찾아가 많은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제작을 무사히 했는데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역시 단가 문제로 조립을 전문인력에게 맡기지 않고 내가 직접 하기로 결정하였다. 왜 나 말고는 할 사람이 없느냐 말이다. 내 일처럼 해 줄 사람 어디 없나? 꼰대 마인드가 폭발했지만 그 꼰대력은 다시 나에게로 향할 뿐이었다. 밤을 꼴딱 새웠는데 고작 8권을 만들었다. 그마저도 한 권은 샘플이라 판매도 안 되는 것이다. 페어가 시작하기 전 일단 밥부터 먹고 가자고 후루룩 마셔버리고 말 생각으로 국밥을 먹으러 갔다. 두 세 숟가락은 들었을까 갑자기 왈칵 눈물이 나서 국밥집에서 뜨거운 눈물과 콧물을 흘렸다. 다시는 자만하지 마라 이 새끼야.


 내 모든 피땀 눈물을 모았던 팝업북을 페어에 내놓고 관람객들과 소통하는 일은 나를 다시 생생하게 살리는 일이었다. 우와! 대박! 이 두 마디가 나를 다시 살린 것이다. 다른 참여자들 중에도 팝업북을 만든 팀이 3팀 정도 있었는데 일일이 부스에 찾아가서 얼마나 고생스러웠는지 작업물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팝업북으로 인해 참여할 수 있는 페어가 많아졌고 생각하지 못한 워크샵도 하게 되었다. 나를 한번 확장해준 경험인 것이다. 그 경험은 생각보다 너무 즐거웠기 때문에 또 이런 기회가 온다면 기꺼이 잡고 싶다.  

 

 퍼블리셔스 테이블 후에 친구들과 언리밋티드 에디션을 구경 갔었다. 나의 미대 입시 친구 '신다'와 피터팬의 방 구하기를 통해 나와 룸메가 된 '가지' 그리고 나 우리 셋은 용량은 각자 달랐지만 창작욕이 조금씩 있었고 취향도 비슷했기에 함께 페어를 구경하는 것이 즐거웠다. 공간 가득 재밌는 컨텐츠를 만나고 기분은 충만하지만 약간 지친 상태로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가지가 뒤늦게 부스 공간에서 나오며 약간 격양된 목소리로 "야들아, 세상에 책이 안 되는 것이 없노?!" 하며 콧구멍 평수를 넓혔다. 어? 얘 지금 '나도 책 만들 수 있겠는데?'하고 건방 떠는 건가? 나는 그 신호를 놓치지 않고 작당모의를 제안하고 다시 일을 벌인다. 그 전에도 몇 번 작당모의를 했으나 생계와 무관한 활동은 쉽게 식어 버리곤 했었다. 지금 이렇게 콧구멍 평수가 넓을 때 얼른 무언가 시작하고 진행해야 하는 것이다. 이 기분이 천천히 식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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