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적정한 선 긋기
스무 살에 처음 만났던 남자는 공돌이 었다. 내가 좋은 사양의 컴퓨터를 갖고 싶어 하자 컴퓨터를 최고 사양으로 맞춰주었다. 물론 돈은 내가 지불했고 그는 알아봐 주고 직접 조립해주었다. 그 pc가 나의 마지막 윈도우 pc였다. 윈도우 pc는 바이러스나 여러 잔고장이 많았는데 그가 언제나 나의 전담 수리기사였기 때문에 나는 그 컴퓨터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그와 헤어지고 나는 180만 원 주고 산 컴퓨터와도 이별해야 했다. 바이러스도 못 잡던 나에게 인내심을 길러주는 고철 덩어리일 뿐이었다. 그때 알았다. 나의 일을 누군가 해주는 것은 내 능력치를 낮추는 일이라는 것을. 180만 원짜리 배움이었다.
20대 중반에 운전에 서툰 남자를 만났다. 그는 2종 보통 면허가 있었지만, 운전을 할 때 안전에 신경 쓰느라 음악도 틀지 못하게 했었다. 나는 1종 보통 면허가 있었지만 반대편에 차가 오는 것이 무서워서 도무지 운전을 할 수 없었다. 둘 다 운전에 서툴러서 운전자가 해야 할 일들을 조금씩 나누었다. 운전과 동시에 라디오나 냉난방 조절이 어려워 조수석에 앉아 있던 내가 적절하게 조절해 주었다. 조수석 쪽 백미러와 백미러 밖의 사각지대를 봐주는 것도 나의 역할이었다. 후방카메라가 있어도 주차 도우미는 역시 나였다. 점점 운전 못하는 남자의 운전 실력에 익숙해 지자 네비까지 보기 시작했다. 그 와 헤어지고 종종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날이 많아졌다. 나는 할 수 없이 스스로 운전대를 잡기 시작했다. 왠지 운전에 서툰 그보다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았은 묘한 자신감이 들었다. 그래도 안전은 두 번 세 번 챙겨도 모자라니까 도로 연수를 충분히 받고 가끔 여행을 가거나 물건을 옮길 때 조심스럽게 운전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것 봐! 네가 없어도 나는 운전해서 내가 가고 싶은 어디라도 갈 수 있다구!
30대 초반에 만난 남자는 나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하는 남자였다. 당시 나는 그림을 그려 굿즈를 만들고 종종 페어에 나가곤 했었다. 제주 북페어를 처음으로 소소시장, 퍼블리셔스 테이블 등 페어에서 내 그림을 좋아해 주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나에게 큰 힘이고 기쁨이었다. 페어에 나갈 때마다 새로운 굿즈를 가져가다 보니 짐이 적지는 않았지만 테트리스 실력을 십 분 발휘하여 28인치 케리어 백에 가져갈 수 있는 정도였다. 연애 초, 그가 연차까지 써가며 나와 내 짐을 옮겨주었다. 고맙긴 한데... 아니 이렇게 까지?! 그리고 곧 내 일의 일부를 뺏긴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데 도움을 받는 것이 내 손발을 묶는 것 같았다.
"이건 내 일이니까 내가 하는 게 당연하고 마음도 편해. 내가 정말 도움이 필요할 때 너를 찾을게."
그는 나의 독립적인 면을 어려워했다. 내가 그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안 그는 자신의 역할을 잃은 한물 간 연극배우가 되어버렸다. 내 영역을 지키려는 나와 침범하는 그 사이의 실랑이는 자주 발생했다. 그의 선의와 싸우며 나는 스무 살의 무능했던 나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나는 이미 나의 독립적인 면을 사랑했던 것이다. 그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빈틈이 있는 것이 싫다. 빈틈이 있어야 이성이 들어 올 자리가 생긴다는 말도 싫다. 그 자리를 내어주기 위해 계속 부족한 것을 견디는 것이 싫다. 나는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 지금보다 건강하고 힘이 쎈. 더 현명하고 단단하며 자유롭고 따뜻한.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