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UYAOWL 유야아울 Nov 30. 2021

방 탈출 게임

편향이 알려준 삶의 의미

내가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더라도 편향이라는 단어 자체가 던지는 질문과 그와 관련된 기억들이 뇌리를 스친다. 상당히 오랫동안 어쩌면 나도 모르게 편향을 해왔는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후에 내가 했던 행동들이 편향의 조각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세히 설명하긴 그렇지만 나를 향한 말이 아닌 누군가를 비난하는 반복되는 부정적인 말들이 있었다. 그 말들을 듣고 싶지 않아 나도 모르게 타인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 습관이 생겨버렸던 것, 덕분에 나는 마음의 상처를 덜 받긴 했지만 경청이라는 것이 나에게는 너무나 큰 숙제가 되어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단지 기억력이 나빴던 것이 아니었다. 나는 왜 소중한 친구들의 이야기를 기억하지 못했을까? 그것은 흘려듣는 습관 때문이었다. 그것을 알고 난 후로 누군가 이야기를 하면 그 말을 귀담아듣기 위한 별도의 노력이 필요하긴 했다. 물론 지금은 어느 정도 원만하게 듣고 있다고 여긴다.


슬픈 건 편향이 부정적인 감정을 덜 느끼게 해 줘서 좋지만 긍정적인 감정 또한 차단해 버린다는 대목, 심하면 삶 자체를 잃어버리게 된다는 말이 겁이 났다. 삶이라는 바다에 풍덩 뛰어들어 바닷물의 짠맛과 피부에 닿는 물살을 느끼고 바닷속에 살고 있는 아름다운 생명체들을 보며 환희에 빠졌다가 또 바닷속에 넘쳐나는 쓰레기를 보게 되면 슬픔에 빠졌다가 또 숨이 차 숨통이 끊어지는 단말마를 겪게 되거나. 그러다 지나가는 유람선에 발견되어 어렵사리 구조가 되고 또 그곳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참으로 스펙터클한 삶이 아닐까? 참으로 투박하고 비현실적인 상상이긴 하지만... 그런데 나는 그저 내 몸 하나 누울 만한 아주 작은 통통배 위에 몸을 싣고 드넓은 바다 앞에 조그맣게 웅크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거대하고 드넓은 바다 그리고 검은 물결 아래 어떤 괴생명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고 그저 위태롭게 망망대해를 떠다니는 느낌이다.


고립은 스스로가 자처했지만 고립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을 미리 준비하지 못하고 고립의 방으로 들어와 버렸다. 작은 창에 커튼을 드리우고 방문을 닫고 있는 이상 세상 밖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없다. 그저  깊은 어둠 속으로 들어갈 뿐이다. 똑똑똑 누군가의 노크가 기다려지면서도 동시에 두려운 마음이다. 나는 히키코모리가 아니다. 매일 연락하는 친구도 있고 가끔 외출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마음속에 고립의 방이 생긴  같다. 가끔은  방으로 들어가 편향이라는 방어기제를 작동시키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무엇이 그렇게 두려운 인지  뚜렷한 형체를   없지만 나는  고립의 방을 허물어버리고 싶어 졌다. 밋밋하고 주저하는 삶을 바꿔보고 싶다. 깨지고 부서지며  일어서는 용기를 갖고 살아가고 싶어졌다. 그래서 시작하려 한다.  탈출 게임... 스타트!







작가의 이전글 환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