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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이 Feb 23. 2024

지속하는 힘은 어디서 올까

처음을 기억하는 일

뭔가를 하다가 보면 자주 느껴지는 게 있다.

우리가 끊임없이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는 그중에 하나가 ‘처음을 기억하는 일’이라고 믿는다.



우리는 무언가를 할 때 힘을 주곤 한다. 그런데 힘이 들어가면 힘이 빠지기 마련이다. 특히 잘하고 싶어지면 더욱 그렇다.


내가 상상하는 모습이 매일의 작은 점들, 지속적인 노력으로 이루어진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노력하는 과정 선상에 있는 열매들은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된다. 느껴지는 것은 스스로에 대한 의구심과, 열정이 이 정도뿐이었나 하는 실망감이다.


'꾸준히 하면 늘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머리로 아는 걸 실제로 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토록 당연한 진리를 실제로 오랜 기간 실천하여, 원하는 경지에 이르는 것 말이다.

 



좋아하는 곡을 연주할 수 있는 건 큰 기쁨이다.


기타를 다시 배우기 시작했다. 4년 전쯤 입문을 하고 멈추어져 있었다. 학원에서 배우고, 하루에 10분만 연습하자고 스스로에게 약속했었다.


그런데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연습에 부담을 느끼는 나를 발견했다.


퇴근 후 집에 와서 딴짓을 하다 보면 잘 시간이 되어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인 레슨날이 다가오는 걸 알면서도 왜인지 모르게 미루고 미루었다. 그렇게 일주일 동안 한 차례도 기타를 잡지 않았다. 내일은 해야지라고 했지만 단 10분도 기타를 잡지 않았다. 레슨날이 다가오자 나 자신이 한심했다. '지난번 배운 걸 소화하지도 못했는데 오늘 가야 한다니..' 하면서.



결국 왜 기타를 잡는 게 부담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나는 초보이다. 외운 코드 수가 적고, 코드를 옮겨가는 데도 버퍼링이 있다. 소리도 매끄럽지 않다.


한편 레슨에서는 늘 새로운 걸 하나씩은 배운다. 모든 분야가 그렇듯 배우는 건 배우는 거고, 익히는 건 학습자의 몫이다.


이처럼 실력을 조금씩 향상하기 위한 모든 것은 약간의 도전적인 과제를 늘 수반한다. 그런데 연습하다 보면 '아.. 어렵다, 이거 실력이 느는 거 맞아?'라는 생각이 종종 들었다.


그러다 보니 이미 익숙한 코드로 할 수 있는 곡만 연주하게 되었다. 새로 배운 걸 습득할 엄두가 안 났다. 당장은 늘지 않더라도 조금씩 매일 해야만이 원하는 연주를 할 텐데 말이다. ‘스킬을 갖춘다, 실력을 늘린다’에 집중하자 부담으로 다가온 것이다.



나는 문득 처음을 생각했다.


'내가 왜 다시 기타를 배우고 싶다고 생각했지?'


노래할 때 정용화는 정말 행복해 보인다

작년 12월 말에 가수 씨엔블루가 공연하는 영상을 봤다. 보컬이자 기타리스트인 정용화가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모습이 무척 인상 깊었다.


무대에서 에너지가 느껴졌고, 학창 시절에 알던 씨엔블루보다 훨씬 성장해 있었다. 무대에서 모든 걸 쏟아내는 모습에 '정말 멋있다..'라고 탄식했다. 그들이 행복하다는 게 화면을 뚫고 나와 내게 느껴졌다.


이렇게 작년 겨울에 씨엔블루 노래를 많이 들었다. 그리고 나도 기타를 배경음악으로 노래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이가 들면서 좋아하는 악기 하나를 잘 다룰 수 있다면 좋겠다고 느꼈다.


그렇게 다시 기타를 배우기로 했다. 기타 학원에 전화를 거는 데 망설임이 들지 않았다.




처음을 떠올리자 그리 부담을 가질 필요가 없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기타 치며 노래하는 사람들인 씨엔블루가 좋았다. 음악으로 자기 삶에서 그렇게 좋은 시간을 만들 수 있다는 게,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준다는 게 좋았다. 그리고 나도 삶에 음악을 더욱 들여오고 싶었을 뿐이다. 구체적으로는 씨엔블루의 반말송, 직감, 사랑빛 이런 노래들을 연주하고 싶었다.


'얼른 잘하려는 마음'이 커져 처음을 가리면 안 되었다.


모든 것의 열매는 도달한 목표 자체에 있는 게 아니라, 도달하는 과정에서 하나씩 담는 열매일 것이다. 그런데 얼른 잘하려는 마음이 커지면 놓인 열매들이 보이지 않게 된다. 작은 열매들의 달콤함을 맛보며 가는 것의 아름다움을 놓치게 된다.



오히려 힘을 뺐다.

연습을 덜 해서 부족해도 레슨을 피하지 않았다. 일단 가서, '선생님 저 솔직히 연습 많이 못했어요ㅎㅎ', '아 어렵네요ㅎㅎ'라고 말했다. 배우면서 느껴지는 감정을 가볍게 털어놓으며 못해도 그냥 하고 있다.


힘을 뺀 덕분에 다시 부담 없이 기타를 잡을 수 있게 되었다. 그제야 연주하고 싶었던 곡을 연습하고 있는 게 즐거워졌다. 그저 좋아하고, 조금씩 나아진다는 데에 초점을 맞출 수 있으면 되었다. 나아지는 게 당장은 눈에 보이지 않다는 걸 인정하면 되었다.


연주할 때 소리가 그렇게 예쁘지 않더라도 그냥 기타를 잡아 본다. 그러면 10분 정도는 둥 둥 하면서 새로 배운 걸 연습할 수 있다. 재미있는 건 사람은 일단 행동을 하고 있으면 그렇게 큰 의심을 하지 않는다는 거다.



이처럼 모든 것의 열매는 도달한 목표 자체에 있는 게 아니라, 도달하는 과정에서 이미 담고 있는지도 모른다.


처음을 기억하는 일. 그럼으로써 힘을 빼는 일.

작은 열매들의 맛을 충분히 느끼며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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