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 그리고 채움
여름날 어느 퇴근길이었다. 도로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표정이 보였다.
공허하고 지쳐 보였다. 나 역시 그래 보였을 테다.
‘아 그래, 표정 신경 쓰자'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눈동자 초점이 공허한 얼굴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곧 고민에 이르렀다.
'이렇게 반복되는 하루를 어떻게 살아내지 앞으로..'
직장에서 일하는 시간이 녹록지 않다. 자존심을 굽혀야 할 때도 있고, 이슈가 있을 땐 정신없이 일하면서 그날 장을 마치고 나면 혼이 탈출한 것처럼 공허해진다. 아무 생각도 안 들고 터덜터덜 귀가하는 상태랄까. 집에 오면 너덜너덜한 기분이 든다.
지금 삶의 모습은 나라는 사람에게 있어 지속가능한 삶일까. 진지하게 고민해 보게 되었다.
'평일에 일해서 주말에 쉬고 놀면 되지.'
'최소 3년은 해봐야지.'
'원래 직장은 하고 싶지 않은 것도 해야 하는 거야.'
일이라는 게 뭘까. 평일에는 나라는 존재는 없다는 듯 기계처럼 일을 하기로 하고, 월급이라는 이름으로 돈을 벌 수 있으면 그걸로 된 걸까. 아닌데, 그런데 나 뭐 하고 있는 거지. 아니야, 그래도 일과 관련해서 노력하면 더 나은 걸 할 수 있을 거야. 이런 생각들이 뒤섞인다. 이십몇 년이나 살았는데 아직도 내 삶에 관한 방향성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스스로에게 계속 물어보지만 답변을 듣지 못하고 있다. 나중에 가서 결국 무엇이 옳았는지 알게 될 텐데.
어제 금요일은 퇴근길은 일과 직장에 관한 고민이 이어져 복잡한 심경이었다. 그대로 집에 가봤자 별로 기분이 나아질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근처에 있는 쇼핑몰을 둘러보며 걸을 겸 잠깐 들렀다. 내 발길을 멈추게 하는 곳은 역시 서점이다.
서점을 간다. 봐야겠다고 정한 책은 없지만 언제 방문해도 시선을 새로이 닿게 해 주는 곳이 서점이다. 어제처럼 정처 없이 유랑하는 서점. 깨달았다. '아.. 서점에서 발길이 향하는 곳. 요즘 어떤 관심사가 있는지, 요즘 내가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는 거야.'
목적 없이 방문한 서점에서 이 코너, 저 코너를 발길이 향하는 대로 기웃거려 본다. 서점에는 상상 이상으로 다양한 장르의 책이 있다. '이런 것도 책이 된다고?'라는 생각이 드는 주제의 책들도 많다. 삶에서 글을 길러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유랑하다 보면, 어쩌면 어떤 삶의 모습을 원하는지 참고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 않는 삶(히조)'.
어제 손에 잡힌 책이다. 가만히 있지 못하는 사람으로 꽤 오랜 기간 살아왔다.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의식적으로 하지 않을 때도 머릿속은 풀가동일 때가 많다. 여담이지만 그래서 이렇게 복잡한 내 기본값을 중화시켜 줄 수 있는 단순한 사람들과 만나면 즐거울 때가 많다. 예전보다 훨씬 가만히 있는 상태를 편안하게 느낄 수 있게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너무 복잡하다'.
하지 않는 삶을 하고 싶구나 너. 지금 일과 직장에 대해 고민이 깊고, 생각들이 뒤섞여 방향을 찾지 못한 상태지. 그런데 어쩌면 그 머리 그만 굴리고 잠깐 그냥 비워야 할 때인지도 몰라. 그런 다음 네 직감이 알려줄 수도 있지. 지금 필요한 건 불안해서 뭔가를 맹목적으로 하는 게 아니야. 도피도 아니야.
비워진 공간 없이 새로운 아이디어가 들어올 수 없다. 어떻게 삶을 살아갈지에 대해 나라는 사람에게 맞는 아이디어가 찾아와 주면 좋겠다. 그러려면 우선 비워야 하는 상태임이 명확하게 다가온다.
책의 문장이 좋다.
시선을 빼앗는 물건들, 시야를 가리는 마음들을 비워야 한다.
어젯밤 그리고 오늘 시간을 두고 글을 읽어 내려가며 나라는 사람을 비추어 본다. 책을 통한 만남만으로도 조금은 가뿐해진 나의 생각들. 부디 비움으로써 저자처럼 나와 다른 이들에게 더욱 이로운 삶의 방향을 찾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