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조 바라보기, 서울 산책로 추천
잠실 한강공원에 다녀왔습니다. 말복이 지나고 저녁에는 조금 선선해졌지요. 여전히 덥기는 하지만 해가 질 무렵쯤 걷는 정도는 되는 것 같아요. 남자친구와 저는 산책을 좋아하는데 이번에 같이 멋진 산책길을 다녀왔어요.
잠실 쪽은 저희가 자주 오는 동네는 아니에요. 사귀고 100일 지나서 처음 왔으니까요. 가끔 이렇게 얘기하면서 웃기도 해요. 이렇게 잠실 강남 쪽 안 오는 커플 있어? 라면서요- 하하.
한강공원에 들어와요. 여의도에서 걷는 한강공원과는 또 다른 길이더라고요. 한강의 길이를 실감하면서, 이곳만의 산책길을 즐깁니다. 생각해 보니 강을 따라 걷는 건 언제나 좋은 것 같아요. 별다른 이유도 없이 말이죠. 고향 집 근처에서도, 예전에 호주에서도 강을 따라 걷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걸 보면. 이제 잠실 한강공원 강변 산책로도 예쁜 기억으로 남겠죠.
얼마 지나지 않아 잠실철교를 발견해요. 2호선 지하철의 지상 선로가 맞닿아 있는 다리에요. 지하철을 타고 이곳을 지나면 한강이 내려다 보여요. 지하철이 지상으로 나올 때면, 멍- 하고 창밖을 바라보고는 하죠. 그러면 뭉게뭉게한 나무들이 보여요. 종종 봤던 풍경이에요. 잠시 후 이렇게 말하게 될 테지만..
‘나는 이곳을 아는 게 아니었구나'
공원 산책로에서 살짝 옆으로 빠져나와요. 그러면 잠실철교로 들어서는 계단이 보이죠. 오늘 산책 코스이자 저희가 잠실까지 온 이유예요. 다리를 건너면서 낙조*를 보는 것. 초입구부터 왠지 느낌이 충만해요. 뭐랄까 일본 청춘 드라마에서 본 한 장면 같은데- 아니다, 이곳은 서울 그 자체죠. 다른 곳이랑 비교할 필요는 없을 거 같아요.
*낙조(落照). 저녁에 지는 햇빛
철교로 올라서니 한강공원 풍경이 가까이서 한눈에 들어와요. 뭉게뭉게 모여 공원에 지붕을 만드는 나무들이, 강가에 작은 섬을 만든 듯한 지형이, 산책로를 따라 걷는 사람들이 보여요. 바로 옆에는 2호선 지하철이 지나다녀요. 와- 놀라워요. 그냥 밖으로 나왔을 뿐인데 그동안 창밖을 통해 보았던 장면과 완전히 달라 보여요. 거기 알지, 지나다니면서 봤거든-이라고 말했던 저는 사실 그곳을 알지 못했던 거예요. 울창한 공원에서 생동감이 느껴졌어요. 조금만 가까이 와도 뭔가를 더 잘 볼 수 있는지도 몰라요. 어쩌면 아예 새로운 정체성으로 말이에요.
이제 철교를 천천히 건너요. 요즘 저녁 일곱시 경 해가 지기 시작하죠. 한강을 건너는 다리들은 해가 천천히 지는 과정을 그대로, 다른 방해물 없이 경험할 수 있는 장소인 것 같아요. 낙조가 진행되는 동안 하늘은 색깔을 서서히 바꾸어요. 모방하거나 예측할 수 없는 색깔과 모양으로 눈앞에 펼쳐져요. 마치 마법이 일어나는 것처럼요.
다리를 건너는 데에는 생각보다 시간이 걸려요. 눈에 담기는 장면들이 잠시 걸음을 멈추게 하거든요. 심지어는 핑크빛을 띠는 구름을 멍하니 보고,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한강공원이 또 달리 보여요. 마술 지팡이로 휘저은 듯한 구름은 하늘에 커다란 새를 그려 놓아요. 해가 서서히 저무는 장면 속에서 시간의 흐름을 경험해요. 새로운 산책길에 경험하는 모든 것들은 조금 색다른 감각과 생각들이 깨어나게 해 주었어요.
이렇게 말해요.
"여행 에세이를 보면 이해가 안 되는 말이 있었어. 멀리 떠나서 대자연을 마주한 사람이 '이걸 보기 위해 여기에 왔다'라고 하는 거 말이야. 그런데 그걸 보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고 생각했어. 그냥 보는 거잖아. 아무리 멋지다 한들 그게 자기 삶에 무슨 의미가 있다는 거야라고 생각했어."
이어서 말하죠.
"그런데 지금은 그 말에 공감이 돼. 다른 설명 필요 없이 왜인지 그저 감동이 든다는 거야. 그것만으로도 어쩌면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
다리를 건너온 시점, 한층 새로운 색깔을 입은 우리가 되어 있기를 소망하면서.
추천 코스.
잠실나루/잠실/한강공원에서 놀다가 잠실철교를 건너 강변/성수/뚝섬 쪽으로 갈 수 있고, 반대로 성수/뚝섬 쪽에서 놀다가 강변역으로 와서 한강공원으로 들어오는 방법도 있답니다.
저희는 잠실나루쪽 카페에서 출발, 한강 생태화공원을 거치고, 잠실철교를 건너 강변역에 도착, 이후 지하철을 타고 서울숲과 성수에 가 저녁시간을 즐겼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