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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유니 Aug 22. 2024

프롤로그

방구석 셰프의 시작

결혼 전에는 요리에 대해서 관심이 있었던 적이 전혀 없었다. 기껏 하는 요리라고는 회사 구내식당에서 셀프로 라면 끓이는 정도였을 뿐이었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 요리란 남이 해주는 것, 사 먹는 것이란 인식이 전부였다.


결혼 후에도 바쁜 직장 업무로 요리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었고 삼시세끼 모두 회사에서 챙겨 먹었고 일 끝나고 포장해 가서 집에서 먹는 치킨, 피자, 족발 등 외식요리가 우리 집 최고의 요리였다.


하지만 우연히 TV에서 요리 예능을 본 이후로 나의 요리 인생이 바뀌기 시작했다.



"냉장고를 부탁해"


매회 게스트를 초대해서 유명한 셰프들이 게스트의 냉장고에 들어 있는 재료를 활용해 15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요리를 만들어 주는 방송이었다.


모름지기 요리란 다양한 재료 준비부터 복잡한 요리방법을 통해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라는 인식이 강해서 나에게는 섣불리 접근하기 어려운 영역이었다.


그러한 인식의 틀을 깨준 것이 바로 냉장고를 부탁해 다.


정해져 있는 짧은 조리시간에 턱 없이 부족한 재료로 게스트에게 요리를 해준다는 것이 정말 쉽지는 않을 것인데 역시 프로는 달랐다. 없는 살림에 소소하지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내는 우리네 어머니와 같았다.


예능방송이라 그런지 진지한 요리경연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오히려 요리를 재밌고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정말 내 인생에 최고의 요리방송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셰프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요리를 시도하는 과정 중에서 어떤 거는 가히 상상을 초월하다 못해 저걸 게스트들이 먹을 수는 있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기괴하고 창의적이었다.


요리과정과 결과물은 정말이지 충격적이었고 존경스러울 정도였으며 방송에 나온 모든 셰프들은 나의 롤모델이자 스승이 되었다.


방송에서 하는 요리과정은 초보자인 내가 따라 하기에도 정말 쉬웠으며 맛도 충분히 보장이 되었다. 하나둘씩 따라서 하다 보니 점점 요리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고 완성된 요리에서 희열과 행복함을 느끼게 되었다.


냉장고를 부탁해본 이후로 어느덧 요리 세계에 발을 들인 지 어언 10년이 지났다.


우리 집 냉장고는 항상 재료가 부족하지만 스승님들 덕분에 최소한의 재료로 간편하게 두세 개 요리 정도는 쉽게 할 수 있는 경지에 올랐다.


현재 집안에서 모든 음식은 내 손을 통해서 만들어지고 있고 아이와 아내 모두 내 음식에 길들여졌다.


아이는 이유식 때부터 지금까지 내가 모두 만들어 먹이고 있고 아내 또한 내가 해주는 음식이 아니면 안 될 정도로 의존증심하다.(나만의 착각이다.)


현재 주방은 나만 출입할 수 있는 제한구역이며, 모든 주방기구는 나만 위치를 알고 다룰 수 있도록 세팅이 되어 있어서 현역 셰프가 와도 내가 이길 정도다.


아내는 웬만해서는 내가 해달라는 거 허락해주지 않지만 요리와 관련되었다 하면 큰 불만 없이 허락을 해준다. (가끔 이용해 먹을 때도 있다.)


아마도 더 맛있는 요리를 먹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감과 마음 한편에 남아 있을지 모르는 죄책감 때문에 라고 나는 생각한다.(아내는 요리를 전혀 하지 않는다.)


최근에는 우리 집 근처에 사는 처제 또한 어느 순간부터 식사 시간이 되면 말없이 슬금슬금 우리 집으로 들어와 식탁에 앉아 있다. 숟가락이 하나 늘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점점 장 보는 횟수가 많아지더니 생활비 지출이 늘기 시작했다.


검은 머리 처제는 거두는 것이 아니었는데 잘못된 판단이었다.  


아무튼 처제도 음식을 많이 얻어먹다 보니 눈치가 보였는지 내 생일날 백화점에서 내가 그렇게 갖고 싶었던 프라이팬을 사주는 것이 아닌가.


이제 앞으로 처제는 더 당당하고 합당하게 음식을 요구할 것이 자명하다.


그래도 처제는 내가 해주는 요리를 먹으면서 "우~와 진짜 맛있다. 형부 정말 맛있는데요? 대박!"이라는 표현을 정말 듣기 좋게 매번 로봇처럼 해줘서 요리를 해줄 맛이 난다.


생각해 보니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고 대접하는 것을 즐기는데 기왕이면 좋아하는 요리를 제대로 배워서 평생 업으로 삼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우리 가족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행복한 요리를 나눌 수 있다면 이 또한 좋지 아니한가.


우선 전문적으로 배우기 위해서 요리학교를 다녀야 한다. 이상하게도 요리학교라 하면 르꼬르동블루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 "내 이름은 김삼순", "줄리 앤 줄리아" 등 작품에서 많이 언급이 돼서 뇌리에 박혔나 보다.


그래서 왠지 모를 로망 때문에 요리학교를 간다면 르꼬르동블루에 가겠다고 다짐을 했었다.


아내에게 요리를 제대로 배우고 싶다고 말하고는 앞으로 르꼬르동블루에 입학을 할 것이니 열심히 학비를 모아두라고 요구했다. (무려 9개월에 2천만 원이 넘는다.)


아내는 왜 하필 르꼬르동블루냐고 물어보길래 기왕이면 출신간판이 좋아야 멋지지 않을까?라고 했다가 요리를 영영 못하는 순간이 올 뻔했다.


현실적으로 봤을 때 르꼬르동블루에서 배우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나도 알기에 르꼬르동블루에서 직접 출간한 책을 모두 사서 독학으로 한번 해보자라고 마음을 먹었다.


서둘러 인터넷에 검색하여 르꼬르동블루라고 적혀 있는 책은 모조리 다 사버렸다.  요리, 과자, 빵, 초콜릿 등 상당히 다양한 카테고리로 구성되어 있었다.


집에서 쉽게 할 수 있도록 난이도 별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 참 마음에 들었지만 책을 펼쳐보니 초보자 수준을 너무 높게 잡아 놓은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꾸준히만 한다면 마치 영화 줄리 앤 줄리아의 아저씨 버전이 되지 않을까 한다. 영화처럼 하루에 하나씩 요리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최소 일주일에 하나는 꼭 하리라 다짐해 본다.


앞으로의 나의 요리 행보가 너무나 기대되고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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