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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 rey Sep 24. 2022

( 자기 )만의 방

한 사람의 인간이 점유한 독립적인 최소 공간의 힘

일찍이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이 픽션을 쓰려면,

연간 500파운드의 안정적인 수입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남겼다.


이때 자기만의 방이 의미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한 사람이 온전히 점유할 수 있는 적당히 넓은 크기의 공간에

문과 벽, 잠금장치가 있는 독립적인 최소 공간.

여기에 더해 500파운드는 스스로 사유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이자 안전망이다.


당시의 500파운드를 현 기준으로 환산하면 약 4천만 원에 이른다고 하니,

그것이 픽션을 쓸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기 위한 다음 목표가 될 것이다.

 

그의 말에 사무치게 공감한다.

나도 자기만의 방을 갖고 사유할 힘을 갖고 싶어 애를 쓴다.


 


고향을 떠난 이래 나는 오래도록 진정으로 내 것이 아닌 공간에 살아왔다. 심적으로 진정 내 방이라고 느끼는 방을 갖게 된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내가 방을 구하는 데는 집안의 돈이 포함되지 않았고, 사회초년생으로 많이 벌지 못했으므로 아주 변변한 방을 구하지는 못했다. 지금은 낡고 오래된 방이 내가 사는 곳이다. 집이 아닌 방에 가까운 형태에 가까운 공간이다. 그럼에도 기어코 자기만의 방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은 나를 자주 위로한다. 방에 대해 생각할 때면 아직도 갓 성인 된 사람처럼 마냥 기쁘다.


처음 집을 구하고 나서 방의 낡음과 조악함을 맞닥뜨렸을 때, 이런 생각을 했다. 지금은 당혹스러울 정도로 초라하고 구리지만, 내가 이 방의 가능성을 알아본 것이라고-사실은 내가 스스로를 향해 그렇게 믿으려 애쓰듯-. 그러므로 이 방의 모든 흉터와 흠결을 나만 알아볼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다른 단점들을 모두 수용할 수 있었다. 치안이나 낡음이나, 부동산업자를 중간에 끼지 않고서는 좀처럼 소통이 쉽지 않은 깐깐한 집주인 할머니의 성미라든가. 전 세입자가 1년을 채우지 않고 나갔다는 방에, 입주 시 기본사항인 도배와 장판을 새로 해주는 것도 아까워해서 현실적인 조건면에서는 딱히 이득을 보지 못했지만 그 대가로 대신 집을 고쳐 써도 좋다는 허락을 얻었다.


고쳐쓸 수 있는 낡은 방. 그 자유가 이곳을 나의 방으로 만들어 줄 것이었다. 그럼 되었다. 그것이 나에게 가장 중요했다. 옅은 크림색의 페인트로 벽을 덮자마자 나는 이 공간을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뜯어고치지 않고 조금씩 건드리면서 천천히 달랠 준비가 되어있었다.


나는 방의 흉과 골격에 어울리는 옷을 입혀주는 것을 좋아했다. 색색의 천을 구입해서 배치했고 고심하여 중고 가구를 들였다. 낡은 나무 뼈대가 부끄럽지 않도록 나무로 된 책상과 물건을 들였다. 그런 노력으로 완성된 조악하지만 귀여운 흔적을 마주 보면 나도 슬쩍 위로받는 기분이 든다.



침대에 걸터앉으면 내가 만든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더 이상 책을 집어넣을 공간이 없는 가련한 책장, 중고 물품을 거래하는 당 X 마켓에서 재빠르게 줄을 서 나눔 받은 체리목 색깔의 화장대 서랍-진짜 체리목이 아니라 필름지를 붙인 제품이며, 이것을 얻어올 적에 애인이 나를 도와주었는데, 주인아주머니는 젊은 사람이 알뜰하다는 이야기와 자기 아들은 결혼도 안 하고 속상하다는 감상을 전했다. 이유는 알 수 없다- 디퓨저를 쏟아서 바랜 얼룩이 생긴 길쭉한 원목 테이블, 몇 번의 죽음의 위기를 보내고 세 번째로 간신히 살아남은 오렌지 자스민, 반년째 미심쩍을 정도로 가느다란 뿔을 올리며 자라고 있는 피시본 선인장, 생화를 사다가 곱게 말린 드라이플라워. 푹신하고 무거운 침구에 집착하는 나를 생각해 엄마가 택배로 부쳐준 *로라 애슐리의 퀸 사이즈 이불(아마 그것이 내가 가진 물건들 중에서 가장 사치스러운 물품일 테다) 커버를 하나씩 구매하느라 짝짝이가 된 푹신한 베개 두 개, 가느다란 나뭇 살로 가공된 격자무늬 창. 해가 중천에 떠도 빛이 아주 희미하게 들어오는 어둑한 공간. 낮이던, 밤이던. 울렁이듯 건물 안으로 들어오던 행인들의 소리.


언젠가 유진 언니는 우리 집을 처음 방문하고 ‘아늑한 토끼굴’ 같다고 했다. 영국의 아동용 동화 캐릭터 '피터 래빗'이 사는 집을 말한 것인데... 그도 그럴 것이, 이 집에는 절대 직사광선이 들어오는 법이 없어 늘상 누런 주광등을 켜 두기 때문이다. 반사된 빛이나 틈새로 스며든 햇빛만 닿을 수 있다. 그래서 이른 아침이건 한낮이건 자연광을 보긴 힘들다. 식물에게는 몹시 가혹한 환경이다. 사람에게도 아주 좋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햇빛을 자연의 복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기에 마지막까지 이 집의 가장 큰 단점을 햇빛으로 생각할 것 같다.


어쨌든 자연을 통제할 수 없어서 인공적인 노력을 가미했다. 주광등과 식물, 예쁜 천, 달큼한 간식 냄새로 이 집을 따뜻하게 만들고자 애를 썼다. 전등 교체는 내가 이사 후에 가장 먼저 했던 일중 하나였다. 지금은 우리 집 현관을 열면 가장 먼저 그다지 밝지 않은 노란 조명이 1인 가구 답지 않게 복작스런 주방을 집중적으로 비추고 있다. 아일랜드 식탁 위에 간식 바구니를 두고 가끔 쿠키를 구워 포장해둔다. 베이킹을 한 날이면 방을 드나들 때마다 밀가루와 설탕, 버터 냄새가 폴폴 나는데, 이것은 장점이자 단점이다.


또 현관과 마주 본 부엌 공간에는 아기 머리가 하나 드나들 수 있는 크기의 작은 창이 있다. 때때로 비실비실한 화분이 햇빛을 받을 수 있도록 창가에 애처롭게 내놓는다. 그러면 오전 10시-오후 2시 사이 즈음 작은 틈으로 용케 빛이 들어온다.


이런 부동산! 서울시의 멀미 나도록 빽빽한 인구밀도나 시민의 삶의 질을 우선적으로 고려하지 못한 도시건축법을 탓해보고 싶지만, 그런 계란으로 바위 치는 투정은 멈추도록 하겠다. 주어진 상황에 그럭저럭 적응하고 있으므로.


해가 다시 멀어진다. 네가 배고플지언정 굶어 죽지는 않겠구나. 화분을 다시  안으로 들여놓으며 나는 그런 생각도 한다.



나는 스스로 고쳐 쓰는 것이 허락된 이 낡은 방을 무척이나 사랑했다. 나를 닮은 것들로 채우고 싶었다. 장단점이 뚜렷한 이 낡은 건물은 장단점도 뚜렷한데, 내 방은 해가 잘 들지 않을지 언정 결코 차갑지 않았다. 나는 그 점에서조차 동질감을 느꼈다. 건축 구성요소에 나무가 많이 사용되었고, 그 흔적이 겉으로 드러나 있다는 점도 썩 맘에 들었다. 세월감이 느껴졌지만 완벽하지 않아서 더욱 집에 정감이 갔다. 90년대에 완공된 낡은 빨간 벽돌 빌라인 이곳은 내가 유년기에 살았던 '하숙집'을 떠올리게 하는 구석도 있었는데, 그 집에 대한 추억을 소중히 생각했기에 이곳을 좋아하기가 더욱 쉬웠던 것 같다.  


이 집에서 생활한 지 1년이 지났다. 낡고 낯선 집이었던 이곳을 점유해서 자기만의 방으로 만들어 간다.

자기만의 방에서, 나는 거의 생애 처음으로 마음에 솔직한 글들을 적는다. 알리기 부끄러워하거나 숨기던 생각들을 쓰고 내밀 용기를 얻는다. 돈을 가져다주지는 않지만 쓰면서 마음을 달래는 글을 낭비로 생각하지 않고 그냥 쓴다. 이것처럼.


사실 이 이야기를 통해서 내가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은 생각은 하나다.

여러분이 어떤 형태로든 자신만의 방을 가져야 한다는 것.


늙던 어리던, 여성이건 남성이건 가능한 현실 안에서 독립된 공간을 점유해서 자기가 원하는 것으로 채워야 한다는 생각이다. 공간은 사람을 닮는다. 또 사람은 공간의 모양에 맞는 생활을 하게 된다. 이것은 사람과 공간이 맺는 필연이다. 공간과 사람은 서로를 점유하며 자기도 모르는 새에 각각의 색채를 물들인다.


한 사람의 인간은 자기에게 반드시 하나의 공간을 배정해 줄 수 있어야 한다. 당장 방이 없다면 공용 책장의 한 줄이라도, 자기만의 책상이라도. 그러고는 계속해서 끈질기게 크기를 늘려가야 한다. 독립된 주체로 번듯한 공간을 주장하고 채울 수 있는 자유를 갖는다는 것은 곧 우리의 내면을 자기 다운 방으로 만드는 일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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