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바게트에서 내가 맡은 업무는 간단했다. 일요일 조라서 그런지, 어린애라서 일을 덜 시킨 건지 샌드위치 제조도 주중에 시키고 아무튼 할 일이 많이 없었다. 7시에 출근하면 주방 뒤편에 있는 창고에서 빠삐용 옷으로 갈아입는다. 머리는 말총처럼 묶는다. 그 위에 회색 빵모자를 쓴다. 다시 주방으로 나가서 포실포실한 체형에 피부가 흰 여자 제빵 기사님에게 인사를 드리고 매장으로 나간다. 그리고 한 손에 바게트를 쥐고 대기하다가 들어오는 손님에게 샹송을 불러준다…는 아니고 사실 바게트는 낮이나 되어서 나온다.
가장 먼저 냉장 제품을 넣는 쇼케이스의 전원을 확인하고 기계에 딸린 조명을 켠다. 그다음 밖에 놓인 푸른 물류 트레이들을 매장 안으로 들여놓는다. 가능한 우유와 케이크가 들어있는 박스를 찾아내서 먼저 쇼케이스에 진열해야 한다. 생크림이 들어간 케이크가 변질되면 안 되니까. 우유는 유통기한 임박한 것을 앞으로 빼고, 그림이 그려진 면이 앞으로 오도록 진열한다.
1-2호쯤 되는 작은 케이크나 버터케이크는 위칸에 두고 가족 단위로 먹을만한 3-4호 케익이나 아이들이 좋아하는 타요/또봇/어벤저스/디즈니 케익 같은 것은 적당히 아래로 뺀다. 지금 생각해보니 아이들 키높이에 맞게 잘 보이라고 (그리고 부모님께 적극적으로 사달라! 하라고) 아래에 뒀던 것 같다.
그러고는 남은 트레이를 정리한다. 식빵, 모닝롤, 부시맨 브레드, 어머니 손 잡고 온 아이들이 가장 먼저 집는 곰돌이나 캐릭터 프린트가 인쇄된 완제빵과 케이크 팝처럼 생긴 막대과자랑 초콜릿 스틱도 잘 보이는 곳에 배치한다. 하나는 낮은 높이의 매대 코너에, 하나는 계산대 근처에 뒀다. 선물용 롤 케익, 전병이나 호두파이 같은 비싼 제품도 차곡차곡 진열한다. 이쯤 하면 한 시간 정도 지나있다.
그사이 주방에서 갓 나온 소시지빵, 마늘바게트, 찹쌀 도넛츠 쟁반들이 키높은 카트에 차곡차곡 쌓인다. 물류 정리하는 동안 빵이 적당히 식었다. 장갑 끼고 빵 쟁반을 매대로 가져간다. 나무 트레이에 기름종이를 새로 깔고 먹음직스러워 보이도록 그 위에 대여섯 개씩 일부만 진열한다.
9시에 나 말고 다른 알바가 한 명 더 왔다. 이름이 한상이었나 하는 이 동갑내기 친구랑 마저 물류를 정리했다. 한상이는 지역에서 평이 좋지는 않은 공립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토요일에도 일하고 땜빵도 자주 뛰었다. 나보다 3개월쯤 일을 더 했으니 일종의 사수였다. 모르는 게 있으면 걔한테 일을 물어보고 요령을 배웠다. 오전 9시쯤엔 바쁜 일들은 얼추 해결됐거나 남은 일들을 같이 해치울 수 있게 되어 급한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그러고는 카운터로 가서 커피머신 청소하고, 카운터 바로 옆에 있는 작업대에 빵 쟁반을 올려놓고 크림빵이 되어야 할 아직 민둥빵에 크림을 채우거나 가루에 굴려 미완의 빵을 완성품으로 만드는 일을 했다. 중간에 물류 트럭이 한번 더 올 때도 있는데 그럼 하던 일을 대강 정리하고 지저분하지 않게 물류 트레이 또 정리한다.
그러고 중간에 손님이 빵 사러 들어오면 어서 오세요 하고 이거 맛있나요 하면 네 맛있어요 하고 카운터로 오면 계산해주고 할인되는 카드 있으세요 해피포인트 있으세요 결제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봉투 필요하세요 영수증 드릴까요 하고 품에 빵을 안겨서 내보낸다. 아 가끔 바게트 찾는 손님 있다. 바게트를 구매하시면 여기 옵션이 하나 더 추가됩니다. 바게트를 썰어드릴까요 통으로 드릴까요? 이러고 딱딱한 바게트를 마음이 급해서 서걱서걱 썰다가 들어오는 칼질에 손가락도 베이곤 했다. 덜렁거리는 내 탓이라고 민망해하며 키친타올 뜯어 쥐고 타올 겉면이 뻘겋게 되기 전에 봉지에 바게트 조각들을 넣는다.
그리고 마저 빵에 충전재 채우고 썰고 한다. 자잘한 소보루 토핑이 붙은 드라이한 맘모스빵에 딸기잼을 두텁게 짜고 중앙 정렬 맞춰서 노란 봉투에 넣는다. 테이프 붙이고 지그재그 모양으로 이음새를 마무리해서 빵끈을 예쁘게 두른다. W자도 아니고 S자로 짜는 형편없이 적은 정량이 말도 안 된다 싶어서 한두 개 정도는 몰래 딸기잼을 듬뿍 넣어 묵직해진 맘모스빵을 손저울로 가늠해보고 누가 사갈지 궁금해한다. 그리고 거의 10년이 지난 지금에야 사실 크림빵 크림 채울 때도 비슷한 짓을 했다는 것을 엄숙하게 고백한다.
이런 식으로 오전 일과를 마무리하고 나면 어느덧 점심 먹을 시간이 된다. 한상이랑 제빵기사님이랑 배달 전단지 팔랑팔랑 넘기면서 오늘은 짱깨 먹을까? 국물 먹을까? 고민하고 식대 7천 원에 맞게 음식을 시킨다. 한상이나 제빵기사님이 전화를 걸어준다. 두 사람은 주로 빨간 국물 먹는데 항상 느끼하고 고기고기하고 바작바작한 음식 좋아하는 나는 순두부찌개가 한계다. 30분이 채 지나지 않아 배달기사가 오면 카운터 돈통에서 현금을 꺼내서 건넨다. 식대를 초과하면 우리 현금으로 채운다. 철가방에 담겨 배달 온 뜨끈뜨끈한 음식이 협탁 너비의 이동식 조리대에 펼쳐지고 우리는 주방에서 같이 식사하며 도란도란 얘기한다.
짬이 나면 점심 먹고 나서 얼음을 잔뜩 넣은 아메리카노까지 내려마신다. 직원 복지에 '하루 1잔 커피 허용'이 있어서 할 수 있는 행동이었는데, 좀 더 비싼 제조 음료를 먹으려면 직원 할인가에 차액 내고 먹어야 했다. 가끔 단 거 땡길 때 2천5백 원씩 돈통에 넣고 바닐라 라떼나 카라멜 마끼아또를 마셨다. 카라멜 마끼아또 먹고 싶은데 매번 먹기에는 좀 아깝다는 말을 했더니 한상이가 유통기한 임박한 우유는 재고 봐서 좀 써도 된다고 못되고 달달한 꿀팁을 알려줘서 가끔은 카라멜 소스 한번 짜고 삥땅 라떼도 마셨다. 사장님 죄송합니다.
한상이는 알바를 일찍 해서 그런가 씀씀이 단위도 나보다 컸고 돈 생각도 많이 했다. 이번 달 월급으로 주말에 자기네 집에서 자고 갈 4명의 친구와 먹을 배달음식 예산과 유료 게임의 종류를 하나하나 들어서 말해줄 정도로 구체적이었다. 평소에 하는 짓 보면 장난스러웠고 조숙한 체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내 눈에는 영 어린애 같고 자주 낄낄 거리는 걸 좋아해서 존재하지 않는 남동생 같았다. 근데 이쪽은 자기가 오빠인 줄 아는... 서로 자기가 정신적 연장자인 줄 아는....
일할 때도 사담할 때도 한상이는 머리에서 입으로 가는 생각의 출력이 빨랐다. 누가 말을 걸면 별로 고민하는 티도 안 내고 툭 대답부터 냈다. 그 덕에 캐셔를 혼자 맡겨두면 가끔씩 동네 아저씨랑 시비 붙었다. 빵 포장하다가 아저씨가 아니시에이션 시전하는 소리가 들려서 나는 반사적으로 카운터로 스르르 갔다. 똑같이 ‘아니 안된다니깐요?’하는 한상이를 슬쩍 옆으로 밀고 엄청 심각한 표정 짓고 일단 끄덕거리면서 뭘 메모하는 척하고 사과했다. 이게 안 통하면 아저씨 입에서 학생이-아가씨가-까지 나오곤 했고 그럼 그때가 주방에서 제빵기사님이 나오는 타이밍이다.
기사님은 꿈뻑하고 우리와 아저씨를 한번 쳐다보시곤 아저씨가 말한 내용을 한번 되물어서 확인한 후 침착하게 포스기를 두들겼다. 그동안 빠삐용 유니폼 입은 햇병아리 2명이랑 조리모를 쓴 풍채 좋은 천사가 아저씨 한 사람을 위해 카운터에 달라붙어 있었다. 내가 거기에 있는 동안 제빵기사님 선에서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없었다.
파리바게트 오픈조가 내게 괜찮은 알바 자리였다고 기억할 수 있는 건 운이 좋았기 때문이다. 다른 수많은 SPC 가맹점 근로자들이 겪었듯이 매뉴얼이 빡빡한 업장에서 일을 하지 않아서. 느슨한 관리자(사장)가 있는 곳에서 일해서. 내게 호의적인 사람들을 만나서. 일요일만 일해서. 딱 그만큼의 돈만 필요했어서. 고로 그 모든 서러운 일들과 곤란한 것들을 운 좋게 피해 가서.
나는 손이 빠른 편이 아니고 엄청나게 양심적이거나 믿음직스럽거나 부지런하지도 않았는데도 월급을 꼬박꼬박 타 먹었다. 일하는 내내 옆에서 깐깐히 감독하는 사장님이나 매니저의 존재가 없어서 안락한 무법지대에서 일했다. 그럼 누가 나에게 일을 알려주고 감당할 수 없는 손님이 오면 포스 앞에 서고 돌발상황이 생기면 커버해줬느냐. 바로 제빵기사님이었다.
*이 글을 마무리할 때쯤 한상이의 본명이 생각났습니다. 걔가 이걸 볼 일이야 없겠다만 혹시 모르는 그 친구의 익명성 보호를 위해 그냥 계속 한상이라고 부르기로 결심합니다.
**시점이 계속 과거형과 현재형을 오가는 이유는 각각의 기억 조각에 대한 제 감정의 거리감을 반영해서 그렇습니다. 저에게는 회상하는 일들과 회상하다가 다시 빨려 들어가는 일의 차이 같은 것으로 구분이 되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