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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 rey Oct 31. 2022

꿈벌레

기척 없이 갉작이다 밤이 되면 피어나는 무의식의 씨앗

깨어난 뒤에도 우리를 다시 무의식으로 끌어당기는 이미지가 있다. 꿈의 형태로 찾아온 무의식의 환상은 지나치게 달콤하거나 황당할 정도로 이상해서 현실의 감각조차 교란시키고 헷갈리게 만들면서 방금 전 꿈속에서 본 세상으로 돌아가려고 애쓰게 만든다.



내 꿈은 작은 악마 같다. 사람의 마음속에 꿈을 빚는 존재가 있다면 필시 그는 뒤틀린 존재일 것이다.


꿈의 씨앗은 기억의 파편에서 찢겨 나오는데, 그것은 아주 중요한 일의 조각일 수도 있지만 짧게 지나가지만 마음을 쓰이게 할 만한 무작위적 경험에서 생성될 수도 있다. 씨앗인 줄 알았던 이것은 사실은 유기체처럼 움직이고, 심지어 자랄 수도 있다. 둥글고 혼탁한 색을 띠고 있지만 죽어있지 않고 움직인다.


대부분의 시간 동안 기억의 씨앗-콩벌레는 머리 한켠에서 존재감 없이 기생하는 작은 벌레처럼 조용히 잠들어 있다가 때가 되면 아래로, 아래로 내려온다.


눈치채기 어려울 만큼 느린 움직임으로. 그러고는 기어코 마음에 자리를 잡아 상을 만들고 장면을 만들 수 있게 될 만큼 천천히 자라서 적어도 하룻밤쯤은 숙주의 무의식을 점거할 만큼 강해진다.


다 자란 꿈 벌레는 내 마음을 잘근잘근 씹어서 소화시킨 양분으로 하루치의 꿈을 잣는다.


무거운 공기로 만든 베틀에다가 씨실에 기억을, 낱실에 마음을 통과시켜 자아낸 태피스트리처럼. 꿈 벌레가 짜 놓은 진한 꿈은 뿌옇고 우글우글한 커튼 같다.


커튼 뒤의 장면은 내가 원하는지도 몰랐던 것을 보여주고, 가장 두려워하던 것을 눈앞으로 가져와서 똑바로 바라보게 한다. 작정한 꿈의 구속력은 무척이나 강해서 나는 맘대로 꿈에서 깰 수도 없다. 낮에는 이성으로 누르고 잊고 있던 진짜 감정들이 강력한 가짜 장면의 망토를 두르고 달려올 때, 경계하는 마음은 무너진다.


밤의 세상에서 나는 환상을 이길 수 없고 언제나 계속해서 압도당한다. 속죄하듯 무력하게, 투항하듯 기쁘게 꿈이 내미는 극적인 해석에 거의 항복하고 꿈의 졸개가 된다. 어떤 날은 그런 꿈의 달콤함에 완전히 매료돼서 진짜 세상으로의 깨어남도 거부하고픈 유혹에 강하게 사로잡힌다.


모든 것이 잘못되어 있지만 어떻게든 말이 되는 안전한 꿈벌레의 영역에는 기이한 편안함이 있고, 꿈벌레가 정교하게 뜯어놓은 가짜 세상에 폭 젖어든 날이면 안개에 서서히 숨이 잠기듯 의식이 희미해진다. 얼토당토않은 규칙 아래 모든 게 멀쩡히 작동하고, 가짜라서 괜찮고 안전한 이토록 이상하게 매력적인 세계라니.


나는 커튼 뒤의 가짜 세상에 더 머물고 싶어져 버리고 만다. 오래오래 머물러서 이쪽의 현실과 저쪽의 미몽을 교환하고 싶어진다. 현실이 허락하지 않는 이상한 실험을 벌이면서 나는 낄낄대고. 일회성짜리 환상열차가 멈출 때까지 꿈벌레의 지시를 착실히 따르면서 암전 된 꿈-극장에서 춤을 춘다.


그러나 아무리 깊은 잠에 취해도 끝은 있다.


착실히 꿈을 잣던 꿈벌레는 아침 햇살에 녹아 퍽! 터져 죽는다.

 언제나 그렇게 죽어버리고 흔적도 없이 분해되어버리고 만다. 그럼 꿈은 폭주하고 끊어진다.


깨기 직전에 통제를 잃은 농도 짙은 환상은 꿈을 잃은 주인을 공격한다. 깊은 꿈을 꾸고 일어난 직후 내가 거친 잠꼬대를 하고 있거나 우는 소리를 내고 있다면 이런 힘센 환상에게 얻어맞다가 비로소 정신을 차렸기 때문이다.


서서히 정신이 돌아올 때는 눈앞의 현실이 더욱 가짜 같다. 침대를 떠나면 내 손발은 일과를 위해 움직이는데 꿈의 이미지는 찢긴 책 페이지처럼 내 주머니에 남는다. 며칠 뒤에 나는 지극히 일상적이지만 진짜가 아닌 꿈의 한 장면과 진짜 기억을 혼동할 것이다.


꿈벌레가 빚은 가짜 기억은 다시 씨앗이 되어 마음속에 웅크리고 고요 안으로 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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