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생각만 하면 나는 요즘 자꾸 스몰톡 킬러가 된다
1. 4월이다! 하지만 오늘 아침엔 비가 오고 쌀쌀해서 2월처럼 느껴졌다가, 점심엔 축축하고 바람이 불어서 11월 같았다. 지금 2층 창가에서 행인들이 오가는 걸 보고 있다. 초겨울과 봄 사이 어딘가쯤에 있는 확신 없는 옷차림과 햇볕 때문에 어쩌면 3월 같기도 하다. 원래대로라면 오늘 여의도에는 벚꽃도 남아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창밖으로 보이는 식물이라곤 연두색 이파리만 무성한 벚나무와 숱이 적게 난 활엽수밖에 없다. 요즘 길가에 핀 꽃은 대부분 철쭉인데, 철쭉은 봄꽃 중에서도 가장 나중 순서로 피는 놈이어야 했다. 어릴 때 반팔 티셔츠 한 장만 입고 아파트 단지를 쏘다니며 독성이 있는 줄도 모르고 철쭉 꼬다리를 빨아먹던 기억이 난다. 벚꽃과 개나리는 진작에 땅에 떨어져 성긴 포대로, 하수구로 흘러 들어갔을 테지. 아마 보라매 공원에 가면 키 작은 튤립이 입을 헤 벌리고 있을 거 같다.
2. 이런 징조는 불안하다. 매년 꽃이 피는 시기가 빨라지고 계절의 경계는 고장 난 냉장고처럼 변덕을 부린다. 어쩌다 한번 찾아오는 비 오는 날도 며칠 가지 못하고 전국 각지에는 산불이 난다. 강릉처럼 수도권 사람들에게 그나마 익숙한 동네에 불이 나고 시내까지 화마가 번지고 나서야 사람들은 혀를 끌끌 차며 숙박 예약을 취소한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속으로만 이상하다고, 정말 이상하다고 한다.
3. 그래서 일터에서 예쁜 아가씨들이 꽃구경 얘기를 할 때 꽃이 예쁘다고 맞장구칠 수가 없었다. 석촌호수에 벚꽃이 너무 빨리 져서 아쉽다고 할 때 닥치고 있기가 어려웠고. 결국 태연하고 무심한 척, 원래 정상적인 서울의 벚꽃 개화시기가 4월 초라는 말을 하면서 기후위기가 실감 난다고 해버렸다. 심지어 한번 그런 것도 아니고 꽃 얘기가 나올 때마다 노망 난 인간처럼 “맞아요 근데 (중략) 음… 기후위기…”라고 했다. 상냥한 사람들은 아웅 정말 그런가봐요. 하고 넘어갔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꾸를 해주지 않더라. 나는 스몰톡 킬러다.
4. 우리가 아는 윤택한 시대가 빠르게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기분을 떨쳐낼 수가 없다. 가령 1kg에 3만 3천 원 하던 남미산 카카오빈으로 만든 프랑스 기업의 초콜릿이 2년이 안되어 4만 5천 원까지 올라갔을 때, 세계 각지에서 수입되던 버터 품목이 이제는 가장 잘 팔리는 것들로 한정되어 들어오는 걸 발견했을 때 생각이 많아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밥값은 아껴도 디저트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는 말이 공공연해진지 꽤 오래됐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재주가 아까우니 카페를 하라는 말을 자주 던진다. 호의를 알면서도 그 말이 달지는 않다. 디저트가 표상하는 고급화된 대중문화는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 우리가 그걸 포기할 수 있을지, 포기하기를 거부함으로써 가까워지는 미래는 어떤 모습일지 자주 상상하며 케이크를 만든다. 한편 나는 지구에 이로운 일을 한 게 없고, 내가 사는 세상에도 아직 썩 좋은 일을 한 게 없으니 자주 무력하고 매 순간 겉돌며 부조화 속에 감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