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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 rey Jun 24. 2024

만원 전철에 구겨져 있을 때

'미안합니다'와 '고맙습니다'가 인색한 일상의 단면

문제라고는 전혀 없는, 아주 일상적인 상황에서 낯선 감각에 빠져버릴 때가 있다. 그날도 별 다를 건 없었다. 겨우 어깨만 움직일 정도의 공간만 남은 만원 전철에서 사람들 틈바구니에 서 있는 보통의 상황이었다.


나는 환승역에서 하차하기 위해 출입구 쪽으로 가려고 애쓰고 있다. 이 타이밍에는 때때로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나가기 위해서는 신체를 부딪혀야만 할 때- 동선에 걸쳐 있는 이들을 깊게 (혹은 초조하게) 의식한다.


만원 전철의 호흡에는 패턴이 있다. 우리는 서로를 알지 못하지만, 2-5분의 간격으로 사람을 토하고 도로 삼켜내는 전철 한 칸만큼의 공간을 비좁게 나눠 쓰며 수분 간 자연스러운 상호작용을 한다. 소지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공간을 서로 침해하기도 하고, 부러 휴대폰을 들어 무의식적으로 발 한 뼘만큼의 거리를 확보하기도 한다. 눈길이 부딪히거나 신체의 일부가 닿았을 때 고개를 들어 그들의 얼굴을 보면 떠오르는 특정한 낯빛의 계열이 눈에 들어온다. 피로에 절었거나, 어쩌라는 듯 쳐다보거나, 이미 짜증이 나 있거나. 움직여 줄 생각이 없는 듯 시큰둥한, 대체로 무심한 계열의 얼굴들. 그 사이에서 현실로 돌아온 나는 이질감을 느낀다.


출입구가 열리기 전, 조그맣게 ‘죄송합니다’, ‘실례합니다’하며 그들이 약간의 공간을 내어 주길 속 마음으로 호소한다. 그래도 비켜주지 않는(어쩌면 못하는) 몇몇 육체와 부대껴가며 새로운 탑승객들이 객차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틈바구니에 껴서 간신히 입구에 도달한다. 이상하게 미리 입구까지 도착하는 날이 거의 없다…? 하지만 다음에 전철을 탈 타이밍이면 나는 또 무심코 안쪽으로 들어가서 공간을 채우고 있겠지. 괜히 진이 빠진 채로 너털너털 계단을 올라간다.


우리는 실례한다고 좀처럼 말하지 않는다. 늘 겪는 일인데 나는 매번 낯설고 괜히 적응이 되질 않는다. 서울을 겪는 보통 사람들은 매일같이 이런 풍경의 일부가 되는 법에 적응한다. 이것도 우리 문화라고 생각되자 야속함이 배가 된다.


뭐, 다들 바쁘고 지쳐 있어서 그렇겠죠. 군중 안에 섞여 그 안의 사연을 상상하려고 애써보다가 속으로 콧김 뿜는다. 조금만 엮일 구석이 있으면 눈치코치 열심히 살피는 한국인들이 모르는 사람 앞에선 ‘미안합니다’와 ‘고맙습니다’를 너무 귀하게 여긴다. 거대한 강폭이 도심을 반으로 가르고 있는 아름다운 도시, 모두가 구조적으로 실례하고 구태여 미안해할 필요가 없는 도시, 서울 마이 소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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