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심 이상증식증

by 레이 rey

그런 기분이 있다. 노후된 자동차로 골목길을 주행하는데 가는 곳마다 과속방지턱에 빽빽이 걸려 거북이 기어가듯 하루 종일 덜컹거리며 도로를 달리는 듯한. 속도보다는 완수 여부가 중요해서 그냥 어떻게든 하루 혹은 최소 단위치의 과업을 끝내기는 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차의 상태가 꽤나 메롱이라 이걸로 주행을 하는 게 맞나…? 싶은.


요즘 나라는 자동차는 그다지 만족스러운 기세를 내지 못하고 정해진 상하차 A-B-D-A-B-C 지점을 뱅글뱅글 도는 중이다. 이제 다시 멀리서 보면, 이 움직임에는 효율성이 없다. 연료는 연료대로 먹고 길에 매연은 오지게 뿌린다. 생각해보면 어릴 때부터 모든 종류의 자동차 게임에 젬병이었다. 카트라이더? 순위권은 고사하고 역주행이나 안 하면 다행이다. 면허? 없다! 심지어 범퍼카 운전도 못한다. 상대를 쫓아가서 박아대는 거 아프고 싫다. 아니, 사실 비유를 이토록 길게 쓴 게 무색하게 감가상각 충실한 차라는 소비재의 물성 자체에 관심이 없다…. 어릴 적 자동차 피규어조차 모은 적이 없다…. 수학도 싫어했고… 한붓그리기도 진짜 못했는데…. 검열 빼고 의식의 흐름을 적었더니 여기서 어느 정도 견적이 나온다. 그러니까 효율이 안 나겠지요?




근래 가장 발목을 잡는 감정을 지목하라면 주저 없이 이 녀석을 고발해야 하겠다. 수치심. 언젠가부터 나는 자주 부끄러움을 느끼고, 이미 지나버려서 어떻게 할 수 없게 되어버린 상황을 떠올리고 혼자 입술만 깨문다. 바보 같네, 진짜 뻔하다. 왜 그랬대. 달갑지 않은 부끄러움이 시도때도 없이 일상에 침범해서 가뜩이나 실행력이 약점인 나를 기어이 머뭇거리게 만든다. 수치심을 유발하는 요인은 안팎으로 다양하다. 가령 굳어버린 머리로 인해 무언가 떠오르지 않아 사회적으로 민망한 상황이 생길 때, 제대로 해내고 싶어 여러 번 건드린 무언가가 끝내 조악한 채로 출고되어 면이 서지 않을 때, 나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거나 중도 파기할 때….


크고 중요한 것에서 사소하고 유난한 것까지 별 게 다 부끄럽다. 수치심은 잘 배양된 곰팡이균과 비슷해서 균주가 살아있는 이상 연료를 주는 에피소드는 무궁무진하게 공급된다. 사실 나는 타고난 마음의 모양이 제법 건방져서 맷집이 좋을 때에는 무던함의 내피를 두르고 잠시 수치심이 냉기처럼 나를 뚫고 지나가도록 둔다. 그럴 때는 어깨나 한번 부르르 떨어주면 끝이다. 응. 그럴 수 있지. 이미 지난 걸 어쩔 것이여. 그리고 새로이 생성된 이불 킥 조각을 (마치 인사이드 아웃의 기억 구슬처럼) 마음 속의 쓰레기통으로 던진다. 끝.


한동안은 쓰레기통에 던져 넣는 것만으로도 사회적 내가 바깥일 하는 동안 쓰레기통 속의 감정들이 내면의 우렁각시를 자처하여 다소 NG난 일상의 조각들을 논리에 맞게 재정렬해줬다. 괜찮은 자동편집 기능이었다. 한 달, 육 개월, 일 년쯤 살고 나면 아이폰 자동 앨범 기능 마냥 하이라이트 영상도 만들어줘서 그럭저럭 주어진 삶과 퍼포먼스에 만족하면서 자기자신을 예뻐해 주는 자기애 어린 순간으로 또 다음 일들을 도모하곤 했다. (아시겠지만 나를 가장 둥기둥기 해 줄 수 있는 존재는 결국 나 밖에 없다) 그렇게 살아왔는데…. 하지만 모든 일에는 역치가 있는 법이다. 마찬가지로 자기 허용에도 정해진 게이지가 있어서 일정 이상 쌓이면 냄새가 난다. 그러면 쓰레기통을 여는 것조차 꺼려진다. 열면 악취가 나니까. 저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속속들이 알기 때문에 벽장 속의 괴물을 두려워하여 장롱 문을 열기를 기피하는 어린이처럼 나약해진다. 그러면 쓰레기통에 버리지 못한 수치심이 방을 채우게 된다. 더 이상 무언가를 덮거나 가릴 수도 없는 수치심에 대한 수치심이 새로운 수치심의 교배종을 생성한다.


마음 속의 쓰레기통을 완전히 청소하지 못한 지 얼마나 지난 걸까? 모른다. 세다 잊었다. 그리하여 수치심을 해결하기 전까지는 다시 쓸 수 없을 것만 같은 기분이 나를 압도한다. 저거 못 열겠다고. 들어갈 수 없다고. 진짜 중요한 글은 못 건드리겠다고. 참 좋은 핑계가 아닌가. 2교대하고 온 사회적 자아라는 가장이 개판 오 분 전인 집에 들어오면 명령어 과다로 흑화한 내면의 우렁각시가 구석에서 브런치를 차리고 있다. 그거 참 먹음직스럽고 해롭다. 썩은 우유에 폭 적셔서 노릇하게 구운 프렌치토스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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