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숙한 퇴행

by 레이 rey

철푸덕. 어떤 어린 애들은 넘어지자 마자 운다. 넘어진 순간 곧장 앙앙 울지는 않고 아주 짧은 시간 동안 판단 처리를 마친 후에 정면을 보고 사이렌처럼 애앵-하고 마른 얼굴을 구기는 식이다. 통각이 전달되는 속도와 울기로 판단을 내리는 속도 중에 뭐가 더 빠를까?


“(으)애애애애앵.”


가끔 보면 그 울음은 반응보다는 표현에 가까워 보인다. 청자가 필요한 울음이다. 멀찍이서 아이들을 구경하다 보면… 문득 이상한 생각을 하게 된다. 얘들도 넘어졌을 때 주변에 일으켜줄 사람이 있어야 우는 소리를 내는 법이라고…


그 중에서도 넘어졌냐고 어르고 달래주는 어른이 있을 때 울음 소리가 가장 크고 우렁차다고. 혼자 있는 어린이는 의외로 씩씩하다. 가끔 보면 어떤 애들은 엎어진 후에 새카만 구슬 같은 눈을 도르르 굴려서 주변을 살피곤 손으로 무릎을 슥슥 비비고 짧은 다리를 일으켜서 주변 어른 찾으러 저벅저벅 떠난다.





버르장머리 없는 사람처럼 살고 있다. 요즘 어머니는 밖에서 만나는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나를 팔자 좋은 있는 집 자녀처럼 소개하는 놀이를 한다. 인생 대부분의 기간 동안 있는 집 자녀로 살아오지 않아서 그 배역 거북하고 이상하다.


요전 날 동작 카페거리 근처에 있는 해물찜 식당을 찾았다. 갑각류 좋아하는 엄마의 새로운 동네 단골매장이다. 일주일이 허다하고 포장을 해 가는지 사장님 휴대폰 번호까지 알고 있다. 끼니를 남의 손에 맡기는 일이 자주 있다는 뜻이다. 음식 나오기 기다리는 동안 사장님이 바다거북처럼 크고 두꺼운 몸피를 빌려 내게 느릿느릿 여러 질문을 뿌린다.


“못 보던 앤데? 이 집 큰 딸이야?”


“예에.”

나는 약속된 것처럼 얌전하게 (그러나 방어적으로) 웃는다.


“이쁘게 생겼네. 엄마랑… 입술이… 닮았나?”

(그리고 이 대목에서 괜히 입술을 앙 다문다)


“혼자 살어?”


큼직하고 튼튼한 플라스틱 배달용기에 꽃게찜을 나눠 담으며, 사장님의 무심한 호구조사가 이어진다. 그 뉘앙스가 꼭 대답을 들으려는 사람의 것이라기보단 며칠 걸러먹는 반찬 무치듯 대수롭다.


”얘는 따로 살아요.”


그러면 엄마가 그 말 잘 나왔다는 양 받아간다. 딸이 유난하다는 듯, 그럼에도 당신이 기성세대 안에서도 오픈마인드를 가지고 있다는 듯 농도를 10%쯤 담아서.


늙은 사장님은 달팽이 점액 같은 시선을 내 몸에 슥 뿌리고 말이 없다. 흐린 눈으로 사람을 뚫어지듯 보는데 그게 꼭 전도 대상자를 물색하는 사람 같다고 생각한다. 지저분하게 이것저것 올려놓은 작업용 식탁 곁에 은근한 고가로 보이는 미니 분재 같은 게 있다. 눈동자를 시계방향으로 굴리던 시선ㅇ 벽에 붙은 커다란 말씀액자에 멈추고 이제 곧 교회 다니냐는 질문을 받게 될까 상상한다. 그쯤 지나니 음식을 다 포장한 사장님이 물건 내주기 전에 나를 침침하게 쳐다보고 묻는다. “몇 살이야?”


“하하…. 저 이제 나이 많아요.”


“스물 아홉이에요.”


엄마가 대신 얼른 말하기에 내 나이가 이제 좀 부끄러운가, 생각한다. 해가 바뀌었고 나는 이제 한국 나이로 서른이니까. 여기서 서른이란 숫자는 다음 단계를 미루면 좀 이상한 상태를 암시하는 거 같다.


“시집 가야겠네.”


“어유.” 질색하는 엄마.

“얘 대학원생이에요.”


“저번엔 방송국 다닌담서?”


“이젠 안 다녀요.”


숨막히는 틈에서 기회를 본 나는 조사가 길어질 새라 얼른 답한다. 말 한 적도 없는데. 모친이 언제 또 나를 안주거리로 팔아먹었나 싶다. 대강 대꾸하고 포장된 게찜을 챙겨 일어서는데 엄마가 그새 자발적 대변인 하고 계시다.


“시집이야 멀었어요. 공부해야지.”


“하기야 여기는 엄마가 능력이 있으니까 뭐. 호호.”


사장님 말소리가 여전히 느리고 평온하다. 아주 장수한 두꺼비를 닮은 두꺼운 살거죽이 묘하게 모피처럼 사장님 재력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힘없이 히죽 웃고, 가게를 나선다. 날씨가 더럽게 춥다. 찬 바람이 뺨을 철퍽철퍽 때리는 동안 아우성 치는 속마음은 꿀꺽 삼킨다. 우리는 20년쯤 지난 시점에야 다시 돌아와 ‘엄마놀이’를 하고 있군요. 다만 이 놀이는 한 사람만 재미있다는 점에서 애들 역할놀이보다 효용이 떨어진다.


우리가 이보다 나은 대화를 한다면 좋으련만. 멀리 통유리창 너머로 밝은 형광등이 등대처럼 보인다. 개업한지 1년 안된 거 같은 정육점이 영업 중이다. 정신이 혼미하니 고기 앞으로 가는 건가. 진열장 뒤에서 장정 하나가 등뼈 갈린 돼지 두 짝을 매달아놓고 손질 중이다. 작은 칼로 뼈 사이를 그어 틈을 낸다. 큰 고기 덩이가 깨끗하게 떨어져 나간다. 내 입술을 틀어막던 힘이 생각과 다르게 빠져버린다.


“어머니, 우리…”


“…정육점 좀 들려요.”


중요한 말은 결코 나가지 않고,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티없이 화답한다.


“응, 그래라.”


너무 흔쾌한 목소리가 돌아와서 미안할 지경이다. 엄마는 요즘 큰 딸이 본가에 들리면 자꾸만 돈을 쓰고 양손에 짐을 들려 보내면서 무척 흐뭇해한다. 그 비뚜름한 미소를 보면 어쩐지 가슴이 갑갑하고 비강에 습이 차서 시선을 멀리 던지게 된다. 필요없는 좋은 물건이 든 쇼핑백이 손에서 묵직하게 흔들린다. 내가 어머니께 돌려주는 건 - 이제는 없다.


정육점 방향으로 성큼성큼 걷는 엄마 정수리를 내려다본다. 우리 관계가 이렇게 되어 유감이에요. 다 커서 도로 어린애가 되다니 안타까워요. 그 말을 뱉지는 못하고 구토를 막듯 삼키기만 한다. 일찍 늙어버린 젊은 여자가 조그만 중년 여자의 뒤를 걷는다. 계절은 기울어 가고, 세월은 오직 한 방향으로만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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