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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즈 uze Jul 15. 2019

<나는 정신병에 걸린 뇌과학자입니다>

두 달에 걸친 '낯선 나'와의 조우

첫 시작부터 흥미롭다. 2015년 봄의 끝 무렵 전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은 신경과학자이자 분자생물학자인 바버라 립스카 박사는 보랏빛 염색약을 머리 전체에 펴 바른 뒤 비닐봉지를 뒤집어쓴 채 아침 조깅에 나선다. 2009년 유방암 수술 후 밖에 나갈 때에는 잊지 않던 왼쪽 인공 유방 착용도 빼먹었다. 보랏빛 염색약이 얼굴과 목을 타고 흘러내려 한쪽이 없는 불균형한 가슴 그대로의 기괴한 실루엣을 드러낸 채 한 시간째 조깅을 한 뒤 그는 깨닫는다. 집으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없다. 지난 20년 동안 평생 살아온 집인데...

 


<나는 정신병에 걸린 뇌과학자입니다>의 저자 바바라 립스카 박사는 정신 건강과 인간의 두뇌발달을 연구하는 미국 국립정신보건원 산하 인간두뇌수집원의 수장이다. 이름이 좀 오싹한 인간두뇌수집원은 사후에 기증받은 두뇌를 정신건강 연구에 사용할 수 있는 조직 표본으로 만들어 전 세계 과학자들과 공유하는 일을 한다. 그와 동료 과학자들은 다양한 두뇌 표본에서 얻은 정보로 신경정신학적 장애의 원인을 이해하고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하는 데 힘쓰고 있다.


특히나 립스카 박사는 조현병의 원인을 찾는데 헌신해 1993년 조현병이 발발하는 뇌의 핵심 부위가 전두피질임을 명백하게 밝힌 ‘조현병의 신생아 해마 병변 모델(일명 랍스카 모델)’을 발표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고 조현병의 인지 가능 결함을 치료하는 신약 개발의 틀을 마련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녀가 '직접' 정신병에 걸린 것이다. 주원인은 뇌에 전이된 암인 흑색종.


그는 약 두 달간 정신질환에 빠져들었으나 당시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의 말마따나 ‘정말이지 희귀한 경우’였다고 한다. 뇌종양과 정신질환이라는 무시무시한 경험을 한 뒤, 그 상태에서 벗어나 그동안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을 설명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렇듯 심각한 뇌 기능장애를 갖고 있던 사람이 치료에 성공하는 경우도 드물지만 심지어 당사자가 수십 년간 뇌와 이로 인한 정신질환을 연구해온 과학자일 확률은 더욱더 희박할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자신이 겪은 정신적 붕괴가 무척 무시무시했으나 신경과학자로서는 값을 매길 수 없이 소중한 선물이었다고 말한다. 몸소 정신질환을 겪어보기 전까지는 정신을 잃었다가 되찾는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 온전히 알 수 없었다면서. 그래서 정신질환을 직접 겪은 다른 사람들에게 동질감을 느끼게 되었고 자신의 이야기를 나눠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고 한다.

 

저자가 인용한 자료에 따르면 매년 전 세계 성인 다섯 명 중 한 명이 우울증, 불안증, 조현병, 양극성 장애(조울증) 등 적어도 한 종류의 정신질환을 겪는다고 한다. 그만큼 대중적으로도 잘 알려져서 이제 정신질환이 마음의 병, 나아가 뇌의 병이라는 인식도 생겨났으나 아직 갈 길이 멀다.


저자에 따르면 지금까지 쌓인 데이터에 따르면 정신질환은 유전과 환경의 조합으로 생기는 것 같으나 이의 생물학적, 화학적 과정을 정확하게 짚어내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 암이나 심장병과 달리 발병 여부를 구별하게 해주는 객관적 지표(영상 스캔, 검사 등)를 통해 판단할 수 있는 생물학적 지표가 없다는 것.


따라서 행동을 관찰하는 방법이 주로 쓰이는 데 이 또한 증상들의 조합이 개인마다 다를 뿐 아니라 같은 사람이라도 시간에 따라 증상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어렵다고 한다. 정신질환의 몇몇 징후는 일반적인 성격 특징이 과장되게 표현되는 정도로 보이곤 하는데 이런 경우는 병 때문이라고 인지하기가 더욱 어렵다고 하다. 예를 들어 원래 내향적인 사람이 평소보다 더 많이 움츠러든다 해도 주변 사람들이 그 증상이 알츠하이머병 때문이라고 알아차리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전이성 뇌종양, 엄밀히 말하면 흑색종이 발병하면서 저자의 뇌에서는 가장 인간적인 행동을 책임지는 부위인 전두엽과 두정엽이 제 기능을 하지 못했고 특히 전두엽의 왼쪽 앞부분에 자리 잡은 전두피질이 타격을 입었다. 전두피질은 인간을 판단력과 정보를 바탕으로 결정하는 능력을 가진 존재, 사고하고 기억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존재로 만드는 곳이다.


이마 바로 위에 있으며 전두피질의 가장 앞부분인 전전두피질 역시 마찬가지로 영향을 받았다. 피질 중에서는 가장 작은 편이지만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는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전전두피질은 옳고 그름을 분간하고 부적절한 행동이나 충동적인 행동을 억제해 현재 일어나는 일이 미래에 몰고 올 결과를 예측하는 등 가장 복잡한 인지 과제를 수행하는 곳이라 한다. 광범위한 연구를 통해 전전두피질에 생긴 문제가 정신질환의 핵심이라는 점은 거의 명확하게 밝혀졌다고 한다. 그러나 그 문제가 과연 어떤 문제인지는 아직 모른다.

 

뇌에 생긴 종양 때문에 시작된 고통스러운 여정 속에 립스카 박사는 자신의 개성에서 비롯되는 독특한 증상과 함께 전 세계 임상의들과 연구자들이 다양한 정신질환을 분류할 때 사용하는 공시 지침인 <정신질환의 진단 및 통계 편람> 제5판(DSM-5)에 적힌 각종 전형적인 증상들도 겪는다.


익숙한 장소에서 길을 잃고, 방금 일어난 일을 잊어버리고, 가족에게 매몰차게 화를 내고, 아침 식사에 집착하고, 단 것을 병적으로 먹는 등 낯선 사람으로 변해버리는 그의 경험은 조현병, 치매, 양극성 장애, 조울증 그 어떤 것이든 우리가 자신에게서, 또 가족에게서 맞닥뜨릴까 두려워하는 그 병들을 직면하게 해 준다.


뇌에 종양이 발견된 2015년 1월부터 시작한 그의 싸움은 일단 책 안에서는 2017년 6월 가족과 함께 트라이애슬론(철인 3종 경기)에 참여해 2km의 호수 수영을 완주하는 것으로 끝맺는다.(저자는 발병 전 에너제틱한 스포츠 마니아였다) 물론 정기적으로 뇌 스캔을 받아야 하고, 방사선 치료의 부작용으로 왼쪽 눈의 시력도 영원히 잃었다. 예전과 같은 유연성과 균형감각은 찾을 길 없고, 방향감각도 곧잘 잃어서 자주 넘어진다. 그러나 저자는 말한다.

 

"예견할 수 있는 가까운 미래에, 그리고 아마도 살아있는 한 계속해서 나는 더 많은 뇌 스캔과 검사를 받을 것이고, 불안 속에서 결과를 기다릴 것이다. 치료를 이어가다 보면 예상하지 못했던 달갑지 않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나는 유난히 사악하고 비뚤어진 상대, 이기기가 아주 어려운 질병과 겨루는 중이다. 최신의 과학적 성취에 더해, 강한 의지와 신체와 정신까지 요구되는 철인경기를 치르는 기분이다. 이 경기에서 나는 결승점을 향해 서둘러 달려가지 않는다. 결승점이란 없기 때문이다. 따야 할 메달이나 트로피도 없고, 찬사도 응원도 없다. 또 하루를 살아냈다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또 하루를 보냈다는 깊은 만족감이 있을 뿐."


지금 막연한 불안감이나 심상찮은 징후 때문에 걱정하고 있다면 한번 읽어볼 만한 책. 뇌에서 일어나는 일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과학자로서의 냉철한 이성과 사랑하는 가족들의 상심을 가슴 아파하는 아내이자 어머니로서의 감성이 어우러진 그의 글은 이 시대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마음과 뇌의 병이 가진 실체를 직면하게 도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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