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들은 내 말을 믿을 거야

함정 또는 한계 3 'Office Friendship'을 믿는 것

by 유즈 uze

실무자형 인간들은 대체적으로 인간관계가 좋다. 워낙 일을 열심히 하고 같이 하는 프로젝트도 잘 되는 방향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숟가락 얹으려는 요령파들도 잘해주지만 특히 같은 실무자형 인간들과의 관계가 좋다. 그렇다. 야속한 상사에 얌체 같은 동료, 멍청한 후배 욕을 하며 형성된 동류들과의 교감은 그야말로 ‘우애’라고 밖에 표현할 수가 없다. 속상하고 힘들 때 어느덧 컴퓨터 화면 구석에 속속 떠오르는 응원톡들. 어차피 바빠서 학교 친구들 만날 시간도 없으니 어느덧 회사 동료들은 업무시간 뿐만 아니라 평일 저녁 술자리, 주말 영화 구경까지 같이 하는 베스트 프렌드가 되어 간다.


그러나 이런 유대감이 회사를 그만 둔 후에도 계속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만약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하거나 심지어 퇴사해야 하는 모종의 사태가 벌어진다면?


나로선 천만다행으로 당사자가 된 적은 없지만 나이가 들고 경력이 쌓이면서 이른바 ‘저성과자’ ‘조직부적응자’를 좋은 말로 타이르거나 또는 견딜 수 없이 궁지에 몰거나, 어쨌든 스스로 알아서 판단해 나가라고 압박을 주는 현장을 자주 봐왔다.


아니, 사실 그 반대편에 주로 있었다. 회의실에서 울며 불며 싸운 적도 있었고, 후배가 짐을 싸고 그녀의 남편이 “여긴 누구 하나 편들어 주는 사람들도 없냐”고 소리소리 지르는데도 묵묵히 앉아 일했다. 짐을 싸서 나가는 모습이 보기 불편해서 나가 있기도 했고, 이 사람을 그냥 두면 내가 일을 못하겠다고 상사에게 하소연하기도 했다. 그렇게 유사시 사무실에서는 서로가 서로에게 가해자이고 피해자다. 대부분의 교통사고가 그렇듯 100% 한쪽의 과실일 경우는 드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발생하면 서로 상대방이 절대적으로 하자가 있다고 우겨댄다.


지나간 몇몇 사례들을 돌이켜 보면 그 순간에는 원인 제공자가 나가는 게 당연하다, 조치를 취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의견을 같이 하는 적극적인 몇몇이 퇴근 후 따로 만나 의논을 시작하고, 당사자를 빼놓은 단톡방도 만들어진다. 대부분은 대세를 지켜보며 말을 아끼지만 집단 논의가 계속되면서 감정이 격앙되고 사태는 과장된다. 어느덧 당사자는 회사의 미래를 망칠 절대악, 빌런이 되어간다.


회사 관할 노동청에 신고가 들어가지 않는 선에서 마무리 되고 책상이 비워진 뒤 새로운 채용공고가 뜨면 들떴던 상황이 진정되고 예전으로 돌아간다. 아니, 다음 사태가 일어날 때까지는 평온해진다. 빈 책상을 바라보며 다들 쓴 입맛을 다신다. 나는 여기 남을 자격이 있는가. 또한 여기 남는다고 더 나을 것은 뭔가. 어차피 내 회사도 아닌데 고작 일 좀 못한다고 뭘 그리 거품을 물었나. 현타가 오는 와중에 잠시 결성되었던 퇴사추진위는 와해되고, 죄책감에 시달리던 누군가는 심지어 언제 한번 밥이나 먹자는 톡을 보내기도 한다.


그들이 뭐 대역죄를 지은 것도 아니었다. 그냥 일이 적성에 안 맞았거나 능력이 부족했거나 분위기를 못 읽었거나 본인의 능력을 과신해 경거망동했을 뿐이다. 결국 타이밍과 코드의 문제다. 그래서 이 말 밖에 할 수 없는 것이다. "당신은 이 조직과 안 맞는 것 같습니다." 지금 일상의 대부분을 함께 하는 동료들도 당신이 당사자가 되는 유사시 ‘조직’이라는 애매모호한 집단 속으로 숨을지 모른다. 그리고 사태가 끝나면 술 한 잔 하자는 톡을 보내거나 당신의 치앙마이 한 달 살이 포스팅에 ‘좋아요’를 눌러줄 지도 모른다. 당신이 그 자리에 대신 남았다면 그랬을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