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무자형 인간을 위한 멘탈관리 팁 5
1. 뒷담화는 가능한 멀리 벽이 있는 장소에서
직장이나 직장 근처의 장소에서 동료들과 회사 뒷담화를 하는 일은 피해야 한다. 어떻게든 귀에 들어간다. 또한 멀리서, 전혀 상관없는 이와 한다고 해도 안심할 일은 못 된다. 난 몇 년 전에 지인과 지하철에서 회사 관련 수다(물론 좋은 이야기는 아니었지)를 떨었다가 하필 회사와 관련 있는 낯선 이가 옆에 앉아 있었던 바람에 꼬리를 잡혔다. 그 다음부터 특히 공공장소에서는 입 뻥긋 안 한다. 런던 폭탄테러를 다룬 한 BBC 다큐멘터리를 보니 수사관들이 두 용의자가 공원 한가운데에 길게 누워 입을 가리고 대화하는 걸 보고 테러범이란 걸 확신하던데, 그 정도는 해야 하나... 하긴 어쩌면 회사 뒷담화를 하는 인간은 테러범과 맞먹는 존재일 수도 있겠다.
2. 스위칭 모드
회사에서 있던 일들은 집에 가는 길에 다 잊는 것이 좋다. 내 경우는 전철 타고 가는 내내 오늘 하루 있었던 일들을 복기하다가 머릿속이 여전히 복잡한 채로 역에 내린다. 그리고 마을버스를 타는 대신 집까지 일부러 걸어간다. 10분 남짓 기계적으로 발걸음을 떼고 팔다리를 기계적으로 움직이다 보면 어느덧 기분나쁜 일들이 조금씩 잊혀진다. 집에 들어갈 즈음에는 뭐랄까, 어깨를 짓누르고 있던 무거운 백팩을 벗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회사에서 있던 일을 이야기해봤자 걱정만 할 뿐 이해해줄 수 없는 식구들이 기다리고 있다면 효과는 더욱 만점. 그냥 난 집에서는 또 딴 인간이 되는 거다.
3. 싫은 사람을 담지 않는다
몇 년 전 지하철 플랫폼에서 차를 기다리다 발견한 이야기다. 왜 그런 거 있지 않나. ‘오늘의 한말씀’ 스타일로 액자에 넣어 붙여둔 게시물 같은 거. 평상시에는 ‘그리하여 사는 건 아름다운 것이지요’ 스타일의 잠언이나 에세이 풍은 질색하지만 그 이야기는 왠지 마음에 들었다. 그때도 아마 누군가를 미워하고 있었나 보다.
정확치는 않지만 옮겨보자면 다음과 같다. 고승과 그의 제자가 길을 가고 있었다. 큰 강물이 앞을 막았는데 한 아름다운 여인이 그들에게 다가와 혼자 갈 수 없으니 건네 달라고 했다. 제자는 수도자의 신분으로 그럴 수는 없다며 냉정하게 거절했다. 허나 고승은 허허 웃으며 그 여인을 업고 강을 건넜다. 강 건너에서 여인과 헤어진 후 두 사람은 다시 길을 걸었다. 제자는 스승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어서 계속 번민하다가 한참을 가서야 여쭈었다. 왜 그 여인을 업어 건네 주었느냐고. 고승은 되물었다. "난 이미 그 여인을 잊었는데 넌 아직도 생각하고 있었단 말이냐?"
사람을 미워하는 것도 그런 것 같다. 그 사람과 부딪친 것은 한 순간인데 결국은 그 순간에 매달려 오랜 시간을 괴로워한다. 어쩌면 그가 나한테 그리 악의적인 의도는 아니었을 지도 모르는데, 상상하고, 확대하면서 더 분노의 싹을 키운다. 그는 이미 나를 떠나 저만치 갔는데 난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그 사람의 환영을 등에 업고서, 어깨에 매달고서, 더 무겁게..
4. 자기 연민은 최대의 적이다
이런 저런 상황이 생기면 나 자신을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이 스멀스멀 생긴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나만 괴롭히는 것 같고, 다들 걱정 없이 사는 데 나만 죽을동 살동 하는 것 같고. 게다가 내가 이만한 일을 당할 이유가 눈꼽만큼도 없는 인격자라는 생각까지 겹치면 기분은 점점 바닥으로 내리꽂힌다.
그러나 자기 연민은 최대의 적이다. 스스로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기본적으로 객관적인 기준을 상실한 상태이기 때문에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뿐인 것이다. 모든 자기계발, 심리학 기법의 전제는 ‘남들이 나 같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라’ 인 것 같다. 낳아준 부모든 변치 않은 사랑을 약속한 연인이든 내 마음을 100% 알아주고 내 뜻에 따라주는 사람은 없다는 이야기. 그렇다면 일면식도 없거나 일로 만난 타인들이 자길 무시한다며 분노하는 일들이 과연 현명한 일일까? 게다가 자기 연민에 깊이 빠지게 되면 결국은 남들을 증오하게 되는 것을.
5. 말은 뇌를 거쳐서 나오는 요물
“사실이야, 정말이야, 내가 너한테는 다 말하는데, 그건 정말...” 이런 말들을 전적으로 믿을 수는 없다. 입술을 놀리기 전에, 다른 사람들에게 확실하게 들리는 목소리로 발음하기 전에 인간은 뇌라는 것의 도움을 받아 결국 내가 유리한 쪽으로 말이란 것을 과장하고, 생략하고, 덧붙이고, 편집하는 재주를 부린다. 게다가 세상의 모든 일은 동전의 양면처럼 보기 나름이라서 절대적인 진실 같은 건 애시당초 존재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천인공노할 범죄가 또 누군가에게는 정의의 실현일 수도 있다. 난 잘못이 없다지만, 어떤 이는 내가 잘못했다면 그건 또 그런 거지. 어차피 당사자들끼리 마주 보면서도 말이 엇갈리는데 더 이상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런데도 참 이 말이란 게 묘해서 하면 할 수록 후련해지는 효과는 있다. 이 사람, 저 사람 붙잡고 말을 해대면 속이 좀 풀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은 뭐가 남지? 확인할 수도 없는 일들, 내 입장에서만 내려진 결론들, 자기 위주의 감정들을 사람들에게 쏟아 놓아봤자, 그 수많은 말들이 날 위로하던가? 그들이 선심 쓰듯 베푸는 지지의 말들이 진실을 보장하던가? 주머니 뒤집듯 명백하게 내 말이 맞다는 걸 증명하던가? 다 소용없는 짓이다. 다 헛된 짓이다.
무엇보다 말은.. 하고 있는 나에게는 절실하지만, 듣고 있는 상대방에게는 한치 건너 두치이기 때문에 더욱 헛되다. 나는 분통절통한 사연을 쏟아 붓고 있지만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주는 상대방은 사실 “지금 일어나면 전철을 탈 수 있을 텐데”라던가 “내일 일찍 일어나야 하는데 오늘도 늦고 말았군” 뭐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각자 자기 일이 가장 중요한 건 당연한 일. 나 역시 그런 식으로 살면서 뭐 딴 사람들이 내 일에 펄펄 뛰며 나서주길 원하겠는가? 천만의 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