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는 게 치욕은 아니다

실무자형 인간의 미래 1인 브랜드의 꿈은 당신에겐 맞지 않을 수도 있다

by 유즈 uze

다들 ‘직장인’이 아니라 ‘직업인’이 되어야 한다고들 말한다. 소속되어 있는 직장으로 자신을 정의하는 게 아니라 무엇을 업으로 삼는 사람인지에 대한 정체성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입사에 열광하고 퇴사에 눈물지으며 일희일비하는 회사인간, 월급노예에서 벗어나야 한다. ‘어디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어떤 일을 하는’ 사람, 제네럴리스트가 아니라 스페셜리스트가 되어야 한다고 수많은 퇴사 관련 책에서도 조언하고 있지 않은가.


말처럼 쉽지는 않다. 1인 브랜드. 듣기에는 좋지만 끊임없이 자기어필을 하면서 홀로 돌아다녀야 하니 정신, 육체적으로 피곤하다. 기존 월급만큼 벌기도 쉽지 않다. 4대 보험. 국민연금도 직접 내야 한다. 미래사회에서 주류가 될 거라는 프리랜서, 프리에이전트, 긱워커는 몇몇 능력자들을 제외하고 나면 실상 이런 저런 일로 주섬주섬 수입을 모으는 ‘n잡러’의 다른 말일 수도 있다.


학력, 능력, 재력에 따라 위계가 정해지는 서열화는 사회에서는 더욱 극명하다.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해봐도 일찌감치 공부 잘해서 명문 대학 들어가고 젊은 나이에 각종 고시 패스해 현장에서 경력 쌓은 이들을 이기진 못한다. 특히 전문직이나 기술직이 아닌 사무직에 있으면 더욱 체감하게 되는 일이다. 그렇지만 배경, 돈, 노력이 모자랐던 과거를 후회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 각자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발걸음을 떼야 한다. 우린 끊임없이 계속되는 무빙워크 속에 있다. 잠시 난간에 기대 쉴 수는 있지만 멈춰 서면 어디도 가지 못한다.


은퇴 전문가인 이형종은 <실례지만 나이가 어떻게 되시나요?>라는 책 속에서 나도 모르게 마음에 끌리는 것을 선택하라고 이야기한다. 다만 ‘할 수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이 겹치는 부분을 찾으라고 말한다. 새로운 커리어를 찾을 때는 자기 분석이 있어야 하며 이를 통해 나온 자신의 진짜 모습이 장래 커리어 방향의 기반이라고 한다. 그는 이를 ‘인생의 닻’(Career Anchor)이라고 불렀다. 개인적으로는 책 속 이 구절이 인상적이었다. “지금부터 자격을 취득하고 새로운 능력을 익힌다고 하면 적어도 3년은 걸릴 것 같다. 포기하고 한시라도 빨리 먹고 살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할 것 같다.(중략)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다면 충분한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그러나 시간을 투자해도 아무도 성공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이것이 세상의 진실이다.”


지금 다니는 회사를 무조건 그만 두는 것이 아니라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을 활용해 차근차근 미래를 준비하라고들 한다. 지금까지 익숙했던 삶의 방식, 일의 가치관을 바꿔야 새로운 인생이 열린다고도 한다. 하지만 이런 환골탈태를 해도 성공은 보장하지 못한다고 한다. 각종 자격증, 대학원 진학, 창업 컨설팅, 국가 지원사업 설명회를 부지런히 쫓아다니던 발걸음이 얼어붙는 순간이다. 힘이 빠지고 속이 상한다.


늘 의지할 조직과 고락을 나눌 동료가 필요한 실무자형 인간에게는 이 모든 추세가 다 낯설다. 공부는 더 하기 싫고, 글은 보고서 말고는 자신이 없다. 한번 영상도 만들어봤지만 재미있지도 않고 화면속 내 얼굴을 보자니 손발이 오그라드는 것 같다. 끼보다는 성실, 개성보다는 상식을 장착한 실무자형 인간이 과연 1인 크리에이터의 길을 갈 수 있을까.


지금도 남들보다 많은 노동량, 상대적으로 박한 평가에 분노하면서 퇴사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면 과연 회사를 나가서 괜찮을지 다시 한번 자문해 볼 일이다. 나가서 존재감을 드러낼 만한 콘텐츠도 마땅히 없는데다 굳이 만들고 싶지도 않고, 무엇보다 명함이 없다는 생각만 해도 불행해 질 것 같으면 그냥 다니는 것도 방법이다. 지식정보사회가 되고 노동시장이 갈수록 유연해지는 바람에 자기 콘텐츠에 대해 다들 강박적으로 매달리고 있고 이 와중에서 회사일만 하는 사람은 어느덧 대책없는 게으름뱅이로 취급받고 있다. 그러나 세상에는 회사일을 하는 사람들이 책을 내고 유튜버로 활동하는 사람들보다 아직 많다. 길이 안 보일 때는 일단 버티는 것도 방법이다. 사표를 던지는 다른 사람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도 나가야 능력자처럼 보일 것 같다는 초조함은 거두고 일단은 일에 집중하라. 또한 회사일 하는 것만큼의 비중과 정성으로 자신에게도 집중을 시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