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평한 작은 책상 위, 당신은 성장하고 있다.
책상은 책 책(冊 )자와 평상 상(床 )자를 쓴다. 쭉 뻗은 평평한 상 위에서 우리는 기록하고 독서하는 과정을 수도 없이 반복해 왔고, 성장해 왔다.
내가 책상의 본래의 뜻을 알아본 계기는 데스크테리어를 시작하면서였다. 데스크테리어는 데스크와 인테리어의 합성어이다. 자신의 서재, 사무실 등을 꾸미는 것을 SNS에서 공유하기 시작하며 생겨난 신조어다. 지난 1년 동안 나는 책상을 가꾸는 일에 참으로 진심이었다. 10년간 사용하던 방을 300만 원을 들여서 꾸민 공간에서 나를 가장 잘 드러내는 곳은 다름 아닌 '책상'이었다.
기록과 독서를 좋아했던 시절을 지나 바쁜 일상에 치어 현생을 살아가던 2022년 겨울. 친구들이 선물해 준 책상을 꾸미고 기록과 독서를 시작하게 되었다. 정신없이 쌓여있는 서류들, 정돈되지 않은 필기도구, 읽다 만 책으로 정신없던 책상을 정리하고나니 무언가 해 낼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샘솟았다.
누구나 한 번쯤 자신만의 집을 짓고 행복한 삶을 누리는 상상을 해봤으리라 생각한다. 나 또한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터를 잡고 유명한 건축가에게 나의 취향이 가득담긴 집을 의뢰하는 상상을 해봤다. 고급스러운 벽재, 뛰기에 넉넉한 뒤뜰, 지루하지 않은 동시에 고즈넉한 조경까지 상상만으로 행복하지 않은가. 하지만 모두가 알듯 2023년 보통의 30대 직장인에게 꿈만 같은 일이었다.
현실적 제약으로 그 상상이 희미해질 때쯤 책상을 꾸미기 시작했다. 기록을 하며 이런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책상은 작은 땅!"
만약 우리게 땅이 거저 생긴다면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쌓인 각종 쓰레기와 오래된 구조물을 제거할 것이다. 그러곤 흙과 바위로 울퉁불퉁한 땅을 고르게 하여 집을 지을 준비를 한다. 준비를 마치면 구조물을 세우고 이내 우리가 원하는 모습대로 건물의 형태를 지을 수 있게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난 책상의 '참' 쓸모를 발견하게 되었다. 책상을 가꾸는 일은 정확히 그와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책상을 새로 들이고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청소였다. 불필요한 소품, 필기도구들을 정리했다. 밭을 가꾸고 땅을 평탄케 하듯 책상을 닦고 쌓인 먼지를 털어내었다. 내가 좋아하는 소품과 도구들이 올바르게 자리 잡도록 설계도 잊지 않았다. 그러니 자연스레 책상에 앉게 되었고, 사색하고 책을 보면서 하루를 정리하고 새 목표를 설정하게 되었다.
오늘 내 글을 통해 여러분도 '누구에게나 있으나 참 쓸모를 인정받지 못한 책상이란 땅'을 발견하기를 바래본다.
책상을 꾸미다 보니 나름의 컨셉이 생겼고, 원하는 색상과 조화로운 소품들을 최대한 어우러지도록 꾸미고 나니 공간에 대한 뿌듯함이 생겨났다. 여기서 나의 자존감의 씨앗이 자라나게 되었다.
나의 이십 대는 시류를 따라 참 정신없이도 흘러왔다. 내 주관보다는 사회가 정한 기준에 나를 꾸겨 넣으며 고생하고 뒤따르는 후회로 힘들어하면서 자연스레 내가 없는 삶을 살게 되었다. 늘 완벽하고 싶었고 잘 해내야 한다는 부담에 뭘 해도 부족하고 잘 해내지 못한다고 여기며 서른을 맞이했다.
내 나이 서른둘, 친구들은 대리 달고 열심히 회사 생활하며 바쁘게 살 때 책상을 정리하고 꾸미기 시작했다. 꾸민 공간이 꽤 맘에 들었는지 자연스레 스마트폰을 들고 신나게 찍어대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보기에 좋을까? 생각하며 소품을 빼고 올려두기를 반복했고, 색감을 보정했다가 어둡게 했다가 하면서 나만의 공간의 최고 순간을 뽑아내려 노력했다.
꽤 'Instagrammable' 해진 나의 책상 사진을 가만히 둘 수 없던 나는, 언제 만든 지도 기억안나는 인스타그램 부계정에 접속해서 계정명을 바꾸고 '데스크테리어'라는 키워드를 주제로 사진을 올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누가 보겠어 하던 사진과 글에 나와 관심사가 같은 분들의 댓글이 하나둘 달리기 시작했다. 댓글이 달리니 흔히 말하는 '맞팔', '답글'을 서로 해주면서 자연스레 인스타그램 활동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바로 여기서 나의 자존감은 움트기 시작했다.
거의 죽어있던 계정은 자연스레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200명, 300명, 500명 점점 팔로워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와 동시에 글에 공감해 주는 분들과 책상이 너무 깔끔하고 예쁘다는 댓글은 점점 늘어났고 나의 수고로움을 인정해 주는 사람들이 생겨났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 과정이 반복되면서 나의 자존감은 쭉 뻗은 줄기처럼 튼튼히 자라나기 시작했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인스타그램에서 자존감을 회복한다고?" 자조 섞인 말을 할지도 모른다. 소셜 미디어의 부정적인 측면 - 맹목적으로 호화스럽고 사치스러운 삶을 자랑하는 - 이 여전히 나 스스로도 조심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여전히 SNS 공간은 나와 비슷한 생각과 흥미를 가진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고 또한 꽤 강한 연대감으로 엮일 수 있다는 것이 우리의 자존감을 지켜줄 수 있는 충분한 필요조건이라고 생각한다. 스트레스와 바쁜 삶에 치여 스스로를 돌보지 못했는가?
자, 이제 책상을 정리하고 카메라를 들어 자존감을 회복할 때이다!
나의 2023년의 요약은 아래와 같다.
책상정리 - 기록과 독서 - 새로운 목표설정 - 꾸준히 해내는 것
처음엔 책상이 예뻐서 시작했고, 인스타그램에 의미 없는 말을 쏟아내고 싶지 않아 나의 느낀 점을 적어 내려갔다. 그러다 보니 어느 날엔 내 글이 너무 부끄럽고, 또 어쩔 땐 가독성이 너무 떨어져 여러 차례 글을 수정했던 적이 있었다. (당연히 현재 글에 만족한다거나 내 글이 완벽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아무튼 그런 과정을 겪다 보니 부족함을 느꼈고, 책을 펴 필요한 정보를 읽고 습득하려 노력했다. 잊지 않으려 다이어리를 펴서 나에게 필요한 이야기, 몰랐던 정보, 알았으나 정확하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수정, 보완, 기록해 나갔다. 그 과정은 자연스레 나에게 새로운 목표를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그것을 꾸준히 매일 곱씹고 기록하며 이어 나가려 치열하게 노력하고 있다.
내 나이 서른셋. 내가 좋아하던 일을 찾고 그 일에 몰두할 수 있다는 것이 새삼 행복하다. 사진을 찍기를 좋아하고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하던 공대생은 남들이 선망하는 대기업에 가려 발버둥 치며 20대 중후반을 보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있던 영상편집, 사진 등의 취미를 끊어내고 살아왔다. 그러나 우연한 기회로 얻게 된 새 책상에서 끊어진 줄만 알았던 그때의 즐거움과 취미를 재발견하게 되었으니 어찌 행복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젠 그 행복함을 가져다준 책상에서서의 나의 성장 이야기를 많은 사람에게 전하고 싶다. 그것이 어떤 형태이든 내 개인의 감정이나 푸념으로 끝나지 않고 누군가의 삶이 변할 수 있도록 가공하여 전달하고 싶다. 오늘 나의 글을 마주한 당신에게 그 성장의 시작점이 뿌리내리길 바라본다.
나의 성장이 그대의 성장이 될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성장이 돌고 돌아 다시 나에게 돌아와 내가 성장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