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씨가 사는 집 이야기
사진에 본격적으로 흥미를 갖게된 건 고등학생 때부터 인것같다. 누나들이 돈을 열심히 벌어서 고가의 디지털카메라를 구매하고 버려준덕에(?) 자연스레 사진을 보고, 찍는 일에 흥미를 느꼈던 것 같다. 예쁜 풍경이 있다면 감도 높은 사진을 찍으려고 최선을 다했다. 무엇보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셔터를 누르고 좋은 사진을 담아내는 일이 참 즐거웠다.
예쁜 사진을 다운로드하여서 모아두거나, 군 시절에는 버려지는 패션/인테리어 잡지에서 멋진 공간과 풍경이 담긴 페이지를 찢어서 보관하기도 했다. 다채로운 색상, 쉽게 갈 수 없는 공간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희열까지 내가 참 좋아하는 분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바로 흔히 말하는 '좋아하고 잘하는 일' 인가 싶은 생각이 들때쯤 나의 뇌리를 스친 생각이 있었다.
"내가, 이 나이에,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어설프게 공부하고 공부에는 재능이 없던 고등학교 시절, 이렇게는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었다.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이 시작하던 날, 난 머리에 흰 수건을 둘러매듯, 심기일전하며 공부를 시작했다. 매일 독서실 문이 닫힐 때까지 공부를 하다가 집에 오면 한 겨울 방에 창문을 열고 얼음물이 담긴 세숫대야에 발을 담그고 새벽까지 공부를 했다. 뺨을 때리다 볼에 실핏줄이 터지기도 하고, 남들 다 먹는 학교 석식을 포기하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천 원짜리 참치 주먹밥을 사들고 들어와 교실에 앉아 문제집을 풀었다. 후회 없을 만큼 최선을 다했다.
나 또한, 대부분의 고등학생들처럼 성적에 맞는 가장 좋은 학교를 선택했다. 서울 상위권 대학에 입학하고, 신소재공학이라는 삐까뻔적(?)한 전공을 공부하게 되었다. 수학, 과학도 꽤나 좋아했으니 "멋진 공대오빠가 되는 거야" 다짐도 했더랬다. 당연히 대학생활은 기대와 달랐다.
제대로 놀아볼 용기도 없었고, 무작정 노는건 시간낭비 같았다. 근데 동시에 학업적으로는 뭘 배우는지, 왜 배워야 하는지 모르는 시간들의 연속이었다. 수업시간엔 그림을 그리거나, 무단결석도 서슴지 않았고, 점점 학교를 가야 할 이유보단 가지 않을 방법을 고민하고 있었다.
(차라리 재밌게 놀았으면 좋았을 것을... 미지근한 미온수처럼 공부도, 대학시절도 누리지 못했다.)
아마도 그 시절의 나는 첫 방황의 돌파구로 사진을 고르지 않았나 싶다. 무단결석을 한 날, 카메라를 들고 무작정 마포대교로 향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영화를 너무 많이 봤던 것 같다.) 사람이 걸어갈 때마다 켜지는 대교 위 글귀들, 어둑한 여의도의 야경을 뒤로 쌩쌩 달리는 자동차들을 연신 찍어댔다. 이렇게 사진을 찍을 때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안타까웠던 사실은 난 자유로운 영혼, 보헤미안 라이프에는 근처도 못 갔다는 것. 그렇게 좋아하는 일을 하고 즐기면서도 성적 걱정, 취업 걱정, 인간관계 걱정을 끊임없이 하고 있었다. 과감함이라곤 없던 대학 시절의 나는, 혹여라도 성적이 문제 되어 취업을 못하진 않을까, 대학 생활에서 뒤처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나의 적성, 흥미를 알면서도 도살장에 끌려가듯 다시 도서관에 스스로를 가둬두었다. 그러곤 억지로 앉은 열람실 책상에서 한숨을 쉬며 늘 말했다.
"하 재미없다."
그런 시간은 대학시절 내내 반복되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기뻐하다가도, 현실을 자각하지 못하는 스스로가 어리석은것 같았고, 불편한 감정들이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이렇게 소개한 나의 대학시절을 지인들에게 '방황'이라는 단어로 짧게 설명하곤 했다. 한 분야에 정진하지 못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여기저기 헤매고 다닌 부끄러웠던 경험 같았기 때문이다.
대학 3학년 시절, 나의 감성과 취미활동이 취업과 성공에 도움이 되지 않을 거란 판단에 스스로 감성팔이(?)를 하지 않겠다 다짐했다. 위로의 글귀, 예쁜 꽃이나 노을 진 야경을 담는 일을 의미없는 일이라 여기며 그렇게 보통의 사람이 따라가는 시류를 따라 취업준비에 만전을 기했고, 그렇게 나의 감성은 메말라가고 있었다.
직장인이 되었고, 흔한 대한민국 사회 초년생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2022년 9월, 친구들이 생일선물을 고르라고 연락이 왔다. 뭘 받을까 고민을하다가 방에 있는 오래된 책상을 마주하니 새 책상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바로 하얀 책상과 올려둘 작은 소품 하나를 부탁했다.
책상을 받았더니 공간과 구색이 안 맞아도 너무 안 맞았다. 좋은 책상이 생겼는데 스트레스도 풀 겸 방법을 찾다가 책상을 꾸밀 몇 가지 소품들을 추가로 구매했다. 그랬더니 이젠 책상이 아니라 벽이 눈엣가시였다. 톤이 안 맞아도 너무 안 맞았고 안 되겠다 싶어서 하얀 페인트를 주문했다. 가구를 다 드러내고, 페인트를 사서 '에라이 모르겠다.' 마인드로 모든 벽을 칠해버렸다.
군대에서 책을 버려둔 창고에서 2시간 동안 무아지경으로 예쁜 사진들을 모으던 날이 있었다. 그때 그 희열과 감정은 쉽게 잊혀지지 않았다.
“왜 이 좋은 사진들을 그냥 버리지?”
취업을 준비하고, 직장을 다니면서 먹고살기 힘들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말하며 감성을 잊고 살았던 수년간의 시간의 끝에 하얗게 칠한 방을 마주했다. 그리고 군대 시절에 느꼈던 감정, 사진을 찍으면서 느꼈던 어떤 뜨거운 감정이 느껴졌다. 어쩌면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내가 방황이라 말하던 그 시절의 감성이, 내가 스스로 내려놓았던 나의 즐거움이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방황이라 일컫던 나의 적성과 꿈을 펼칠 마지막 기회.
나는 그 시절의 방황이 내 인생에 필연적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었던 이미 정해진 섭리와 같은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온몸으로 거부했던 방황했던 시절이 새롭게 시작될 이야기의 단초가 될 수도 있다니!
그 방황으로 빚어낸 새로운 결과물이 바로 ‘유집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