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예비 중학생 아들을 재우고

엄마가 언제까지 수면제가 될까.

by 꿈꾸는나무

내 몸이 수면제라는 아들은 엄마 옆에서 잠드는 걸 좋아한다.

이 몸뚱이가 뭐길래. 엄마 살이 닿아있어야 편히 잠이 든단다. 역사는 갓난아기 시절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첫아이는 말할 수 없을 만큼 귀했다.


'사랑한다'는 말의 의미가 이런 거였구나,

온몸의 세포가 이 조그만 생명체의 들숨 날숨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지나치게, 또 유난스럽게 첫정이 들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하루도 거르지 않고 꾸준히 마셔온 믹스커피를 아이의 존재를 안 순간부터

마지막 수유를 끝낼 때까지 단칼에 끊었다.


임산부에겐 당연한 거 아니냐고 따지면 할 말이 없지만,

의지가 아니라 그냥 그렇게 되더라는 게 출산의 신비였다.


제왕절개 출산 후 무통 마취가 안 돼서 고통의 시간을 보냈지만 그때도 아기를 위해 모자동실을 택했다.

제대로 앉기도 힘든 상태에서부터

무려 13개월까지 모유수유를 했다.


(해냈다..라고 써야 하나. 출산 후 수유를 해 본 사람은

이 한 문장의 고통을 짐작할 수 있다^^)


아기가 울려고 '끼잉~'하는 소리를 내면 울기도 전에 순간의 몇 초를 참지 못하고 안아서 달래기를 반복했다.


'과유불급'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내 기준에서는 뼈를 갈아 넣는 최선을 다했지만

산모에게 맞춰진 모자동실 온도는 너무 높았다.

아이는 더위에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황달에 걸렸다.


기지개만 켜도 엄마가 들어 안는 버릇을 들였으니

혼자 잠드는 법을 몰라 엄마의 체온이 있어야 잠을 잤다.

하필 초보 엄마에게 걸린 아이에겐 그야말로 수난시대였다.


역사의 시작이 그때부터였나 보다.

아이는 잠을 못 자고 하룻밤에도

12번씩 깨서 엄마를 찾았다.


14킬로나 불었던 체중은 어느새 55 사이즈도 헐렁해져

입을 옷이 없었다. (아.. 그리운 그 시절이여~)


그렇게 키운 아들이 곧 중학생이 된다니,

세월이 어쩌네 하는 노인의 돌림 노래를

내가 맨날 하고 있다.


중학교에 첫 발령을 받았을 때, 엄마보다 더 큰 학생을 두고

"우리 아기 가요~" 하던 학부모에게 황당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던 게 새삼 미안해진다.


100살 노모에겐 70이 넘은 노인도 아이라는 걸

70살 노모에겐 마흔 넘은 어른도 아이라는 걸

이제 막 중학생이 될, 신발도 나보다 큰,

다 큰 아들을 끌어안고 재우면서 깨닫게 된다.


언제부턴가 아들에게 잔소리를 하면

"엄마가 자기 결정권을 침해하고 있어."라고 한다.

"응? 자기... 뭐라고?"


제법 어른스러운 어휘를 쏟아내며 날 당황시키다가도

밤이 되면 동생들만 데리고 들어가는 엄마가 야속한지

계속해서 애틋한 눈빛을 보내며 한 마디만 하겠단다.


그것도 변성기가 한창인 굵고 허스키한 목소리로.


엄마, 내 방에 안 오면 나 슬프당~~


아들이 슬플까 봐 또 인간 수면제가 되기 위해

쏟아지는 잠을 물리치고 꾸역꾸역 아들 방으로 간다.

신기한 건 힘들어도 힘들지만은 않다는 것.


날 필요로 하는 이 아이에 대한

행복감을 언제까지 누릴 수 있을까.

난 언제까지 아이에게 수면제가 될까.


다음은 임종 직전의 어느 어머니가 남긴 유서라는데,

아직 한참 남았지만 어떤 맘인지 알 것 같아 코끝이 찡하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