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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나무 Sep 12. 2020

성적 이의신청 방법이 있나요?

일단 우기는 건  NO!

지필 평가가 끝나면 성적 이의신청 기간이 있습니다. 학교 사정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은 지필 평가 후 일주일 정도 이의신청 기간을 둡니다. 이 기간에는 학생이 본인 점수를 확인해야 하므로 원칙상 현장 체험학습을 허가하지 않습니다. 2학기 학기말 시험이 끝나고 나면 학년이 곧 종료된다는 마음에 가족 여행을 계획하는 가정이 많은데, 이런 부분을 미리 확인하셔야 합니다.


학교에 체험학습 불허 기간이 있다는 것을 모른 채 미리 해외여행을 예약해 두었다가 체험학습 허가가 떨어지지 않자 고민하는 상황을 여러 번 보았습니다. 만약 성적에 대한 어떤 불만도 제기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하면 허가하는 학교도 있는데, 이렇게까지 여행을 강행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고등학생에게 혹시 모를 성적의 불이익을 감수하라고 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예약된 여행을 취소하려면 해외여행의 경우 해약금도 만만치 않습니다. 따라서 시험이 끝났다고 바로 여행 계획을 잡지 마시고, 최소한 이의신청 기간은 끝나고 나서 체험학습을 신청하는 게 좋습니다.  (이 기간이 지나면 당연히 이의신청을 받지 않습니다.)


대부분 기간에 성적을 정정하는 것은 보통 주관식 점수 정도입니다. 주관식 채점도 한 명이 하는 게 아니라 같은 교과 선생님이 교차 채점을 하는 과정을 거치므로 오류가 있는 경우는 드뭅니다. 그러나 사람이 하는 일이라 단순하게 점수 합산을 잘못했거나 답안지 뒷면에 작성한 답안을 보지 못했거나(다른 친구들은 대부분 앞면에 작성했을 경우) 나이스에 성적을 입력하면서 숫자를 잘못 넣는 등 예상치 못한 실수가 드물게 나옵니다.


여러 명의 답안지 확인을 해야 하니 선생님도 의도치 않게 이런 실수를 할 수 있어 한 명 한 명에게 답안지를 보여주고 이상 유무를 확인한 후 사인을 받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한 명씩 불러 점수 확인을 하면 본인 점수가 창피하다고 보지도 않고 사인하는 학생이 많습니다. 확인하지 않고 바로 사인하면 교사 입장에서는 일 처리가 빨라 좋을 수 있지만, 학생 본인이 손해 볼 수 있고 중요한 부분이므로 반드시 함께 확인해야 합니다.


만약 성적에 대해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 명백한 출제 오류 등이 있다면 이의신청을 할 수 있습니다. 지필 평가 시험 전에 서술형 평가가 마무리되어 서술형 평가에 대해서도 학생 확인을 받습니다. 보통 서술형 평가는 문제 시비가 있더라도 부분 점수를 줄 수 있고, 서술형의 특성상 답이 딱 떨어지는 게 아니라면 협의를 통해 인정 답안을 추가할 수 있어 큰 시비는 걸리지 않는 편입니다. 하지만 지필 평가 객관식 문제는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1번이 답이면 나머지는 모두 0점 처리가 되는 부분이기 때문에 문제 시비에 종종 휘말립니다.


교사는 문제 시비가 있는 경우 교과 협의를 통해 해당 문제를 꼼꼼히 재검토합니다. 학업성적 관리위원회를 거쳐 복수 정답을 인정하거나 해당 문제에 대한 재시험을 치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문제에 이상이 없는데도 계속해서 학생이 뜻을 굽히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성적관리위원회까지 안건이 올라가더라도 전문가들의 검토를 통해 ‘이상 없음’으로 결론이 나고 당연히 성적 수정도 되지 않습니다.


보통은 국어나 영어 교과의 경우 해석의 여지가 있고, 출제자의 의도라는 게 반영되기 때문에 성적관리위원회에서 결과가 바뀌는 일은 드뭅니다. 문학의 예를 들면 하나의 작품을 놓고도 관점에 따라 두 가지 이상의 해석이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정지용의 ‘향수(鄕愁)’라는 시에서 교사는 ‘얼룩백이 황소가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장면’을 ‘화자가 그리는 이상적인 농촌의 여유로움’라고 해석을 했는데, 이 시의 같은 장면을 놓고 ‘일제시대 농촌에서 황소(생산의 주체)마저 일이 없는 농촌의 궁핍한 상황’이라고 전혀 다른 해석을 하기도 합니다. 앞의 해석에서 '짚 베개를 베고 조는 늙으신 아버지'가 평화롭고 여유로워 보인다면, 뒤의 해석에서 짚 베개를 베고 조는 아버지는 병약하고 생산성이 떨어지는 가장입니다. 이렇게 해석의 여지가 많은 부분을 묻는 문제는 대체로 출제하지 않지만, 만약 교사용 지도서에 따라 A의 해석을 수업시간에 가르쳤다면 내신 문제는 수업자, 곧 출제자의 견해에 따라 A로 해석을 해야 합니다.


아무리 학원이나 전공서에 A와 B에 대한 해석이 모두 가능하다고 했더라도 교과의 특성상 내신 시험은 해당 출판사의 견해, 교사의 관점을 따라 문제를 풀어야 인정될 수 있습니다. 국어의 경우 특정 출판사가 같은 작품에 대해 독특한 해석을 할 때가 있는데, 이런 경우 출판사에 문의하면 집필자도 내신 시험문제는 출제자의 설명을 따르라고 안내합니다. 문법도 학교 내신에서 제시하는 견해를 공부해야 합니다.


하지만 수학이나 과학처럼 답이 딱 떨어지는 경우, 성적관리위원회에서 명백한 오류가 입증된다면 성적 이의신청이 종종 받아들여집니다. 정답이냐 아니냐가 비교적 명백하기 때문입니다.


교사들은 시험문제를 출제하고 나서 오류가 없도록 검토하고 또 검토합니다. 시험이 끝나기까지 마음을 졸이고,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습니다. 문제 오류가 자주 발생하면 교사로서 전문성을 의심받아 자존심이 상하고, 성적관리위원회를 거쳐 정정하거나 재시험도 봐야 하는데, 번가롭고 부작용이 많습니다. 한번 이의신청이 받아들여지면 막무가내로 본인의 답도 인정해 달라는 학생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합니다.


학생들도 ‘일단 우기고 보자.’라는 태도로 문제에 대한 이의신청을 계속해서 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문제에 명백한 오류가 있는 게 아니라면 아무리 민원을 넣고, 사인을 하지 않고 버티다가 성적관리위원회까지 가더라도 점수가 바뀌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런 과정에서 교사와 감정적인 대립의 골만 깊어집니다. 평가 권한을 신뢰하지 못하는 학생, 수업 시간에 가르친 내용은 듣지 않고 학원가의 말만 신뢰하는 괘씸한 학생으로 찍힐 수 있습니다.


제가 근무했던 학교에도 거의 모든 과목의 시험문제, 수행평가에 딴지를 거는 A가 있었습니다. 수업을 열심히 들은 학생들은 수업한 교사와 출제자가 일치하기 때문에 당연히 같은 맥락에서 내용을 이해하고(수업) 문제를 풀어(평가) 딴지를 걸 일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런데 A는 수업 시간에 성실히 공부하거나 필기하지도 않다가 시험 기간만 되면 나름대로 내신 준비를 했습니다. 전혀 수업 시간에 언급하지도 않은 내용을 시험이 끝난 후에 어디선가 가지고 와서 ‘이런 해석은 왜 안 되냐, 내 답도 정답으로 인정해 달라’는 항의를 수시로 하였습니다.

학생이 하다가 안 되면 학부모가, 학교가 안 되면 교육청에 민원제기를 하는 식의 연속이었습니다. 모든 교과에서 이러니 담당 교사들은 ‘A 노이로제’가 걸릴 정도로 그 학생에 대한 소문은 파다했고, 무조건 우기고 민원 넣는 학생으로 찍혀 나중에는 그 학생의 막무가내식 이의제기에 누구도 반응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끈질기게 교사들을 괴롭혔지만, 오류가 없는데 민원에 의해 성적이 바뀐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처음에는 본인도 틀린 문제인데 정답 처리가 될까 기대하는 심리에서 이 학생 편을 들던 친구들마저 나중에는 제발 그만 좀 하라며, 선생님들 그만 괴롭히고 진도 좀 나가자며 말리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고, 이쯤 되면 신뢰할 수 있는 학교를 찾아가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습니다.


서술형 평가가 끝나면 내 1점이 어디서 왜 깎였는지 득달같이 따지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미리 평가 계획에 평가 항목을 안내하고 학급에 공지해도 읽지 않다가 스스로 만족스럽게 치른 서술형 평가에서 왜 감점이 되었는지 궁금하다며 찾아오는 학생들이 교사는 반갑지 않습니다. 이의제기를 하러 교사를 찾아가기 전에 미리 평가 항목을 꼼꼼히 읽고, 자신의 답안과 대조를 해보아야 합니다. 찾아오는 학생들에게 평가 항목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는 것만으로도 ‘아하!’하고 수긍하고 돌아가는 학생들이 대다수입니다.


만약 평가에 명백한 오류가 있고, 객관적인 증거(만약 수업 시간에 가르친 내용과 평가의 방향이  다르거나 이과 과목에서 명백히 답이 아니라고 입증할 수 있는 자료)를 제시할 수 있다면 담당 선생님께 정중히 말씀드려 정식 절차를 진행하면 됩니다. 문제 오류가 발견되었다면 상식적인 교사는 당연히 절차를 거쳐 학생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해결합니다. 이렇게 입시에서 수시의 비중이 커지고, 내신 관리가 중요해진 시점에서는 자신의 실수를 인정할 수 있는 자세, 상대에 대한 신뢰가 학생과 교사 모두에게 요구되는 덕목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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