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치킨을 많이 먹다간 겨드랑이에서 날개가 나오겠다며 놀리는데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원래부터 튀김과 닭고기를 좋아하는데, 둘이 만난 조합이니 얼마나 맛있겠는가.
도대체 누굴 닮아 이렇게 몸에 안 좋은 치킨을 좋아하냐고 구박하면서 맘 한쪽 구석이 뜨끔한, 치킨과 관련된 어린 시절의 추억이 있다. 물론 양념치킨만큼 달콤하고, 생각만 해도 미소가 번지는 즐거운 기억이다.
처음 매콤한 양념치킨 맛을 본 것은 꼬꼬마 시절 우리 동네 시장에서였다.물에 빠진 닭만 보다가 시장에서 뜨거운 기름에 바삭바삭하게 튀겨 나온 고기, 매콤한 고추장 양념과 땅콩이 뿌려진 치킨은 그야말로 딴 세상에서 강림한 치느님이셨다.
삼계탕 속 닭은 “닭”이라고 불러도 되지만 튀긴 닭은 꼭 “치킨”이라고 불러야 느낌이 산다. “치! 킨!”이라는 어감 자체에 바삭함과 경쾌한 식감이 살아있다고 할까.
당시 할머니와 함께였는지, 외숙모가 맛있는 걸 사준다고 데려갔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아마 누구와 함께 있었느냐보다 강렬한 치킨의 인상이 더 뚜렷해서 치킨과 나, 그 외의 기억은 멀리 사라진 듯하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종종 그렇다. 맥락 없이 아주 찰나의 시간을 “찰칵!” 찍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그날 이후로 우리는 특별한 날에 치킨을 포장해서 먹었다. 특히, 동네 수영장에 물놀이를 가는 날이면 따뜻하고 바삭한 양념치킨은 수영만큼이나 기다려지는 간식이었다.
‘동서울 수영장’은 내가 ‘송사리 반’으로 입학하여 자유형을 배우고 물놀이를 즐길 수 있게 해 준 고마운 곳이다. 평일인지 방학인지 엄청나게 큰 수영장에서 강습을 받았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종종 사실과 다르게 왜곡되어 있다. 가령, 할아버지께서 화면이 너무 커서 머리가 아프다고 했던 TV가 25인치였다든지, 거실이 운동장만큼 넓다고 했던 고모네가 사실은 30평 아파트였다든지 하는 식이다.)
가끔씩 주말에는 부모님 손을 잡고 포장된 양념치킨의 고소하고 황홀한 냄새를 맡으며 동서울 수영장에 갔다. 수영장에서 공 뺏는 놀이를 하던 기억, 외할머니께서 수영복 대신 옷을 입은 채 풍덩 물에 들어오시면서 “할머니라 괜찮아~”라고 하셨던 황당한 기억, 물놀이하다가 배고프면 평상에 앉아 양념치킨을 먹었던 행복한 기억이 있다.
아주 가끔은 워커힐 수영장에도 갔고, 롯데월드가 생기고 나서는 롯데월드 스위밍에 다니면서 치킨을 먹었으니 물놀이와 치킨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내 기억 속의 동반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다가 중학생쯤 되어서 물놀이에 서서히 흥미를 잃어갈 즈음 우리 동네 골목에는 ‘이서방 양념치킨’이 생겼다. 당시에는 돈가스나 치킨 같은 음식이 특별히 존중받던 시기였다. 지금처럼 흔한 배달 음식이 아니라 뭔가 격식을 갖추고, 무거운 포크를 들어 찍어 먹는 그런 류의 외식 음식이었다고 할까.
주로 집밥만 먹다가 치킨집에 가서 양념치킨을 먹는 날은 기분이 좋았다. 우리가 우등상을 타 오거나 엄마의 기분이 좋거나(아니면 밥하기 싫었겠다는 추측은 이제야 해본다.) 하는 특별한 날에 가끔씩 외식을 했다. 살짝 어두컴컴한 분위기, 시원한 잔에 맥주와 콜라를 담아 마시는 사람들, 경쾌한 음악 소리가 또 한 편의 장면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그 후로 ‘이서방 양념치킨’의 시대가 지나가고, 페리카나와 BBQ, 알 수 없는 브랜드의 치킨집이 우후죽순 생겨날 무렵부터 치킨이 싫증 나기 시작했다.
어른이 된 지금은 흔해 빠진 치킨보다 오히려 기억 속 치킨을 더 좋아한다. 유년 시절의 치킨을 떠올리면 그 시절의 감성과 분위기와 흥분이 함께 올라오는 듯하다.
연세가 지긋하신 어른들이 한국 기행 같은 프로그램을 보시면서 나물이 가득한 고향의 시골 밥상을 떠올리는 기분이랄까.
우리 아이들은 어떤 식감과 냄새, 맛으로 어린 시절을 추억하게 될까. 치킨의 바삭한 식감, 고소한 냄새, 환상적인 맛의 기억이 나처럼 기름 냄새로 치부되는 순간 아이들은 훌쩍 다 자라 있겠지?
뱃살 걱정 좀 내려놓고 어릴 때 좋아하는 치킨,실컷 사주고 싶다. 아들아, 네가 치킨을 좋아하는 건 네 탓이 아니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