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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 학군 결정할 때 고려해야 할 원칙

아이의 성향을 파악하라

by 꿈꾸는나무
강남 8학군이 정말 사라졌을까요?


공식적으로 8학군이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교육열이 있는 학부모들은 여전히 대치동이나 분당, 목동 등 사교육 중심지를 선호합니다. 유아 때부터 영어 유치원을 다니고 놀이 수학, 예체능까지 섭렵한 아이들, 선행학습에 적응한 아이들을 보면 상상 초월의 능력을 장착한 유아들의 모습에 혀를 내두를 정도입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입학해서도 비슷한 분위기, 경쟁 체제에 익숙한 아이들은 공부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비교적 순응적입니다. 교사들 사이에서도 이런 지역의 학교는 아이들이 큰 사고를 치지를 않고 순한 편이기에 선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중학교까지 이 지역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학부모들은 큰 저항 없이 분위기만 그대로 타고 간다면 입시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온갖 유명 프랜차이즈 학원들이 입점해 있기에 사교육을 하기에도 좋은 환경이고, 공교육에서도 내신 시험이 곧 수능 수준이기 때문에 정시 준비하기가 훨씬 수월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자존감이나 자율성 측면에서 봤을 때는 꼭 이런 우수한 아이들이 모인 학교가 좋은 학교일까? 의문이 들 때도 있습니다. 90% 이상의 아이들이 선행학습을 하고 있고, 발달 수준을 넘어서는 내용을 배워야 한다면 분명 그 안에는 자신의 한계에 부딪히고 좌절하는 친구들도 있을 겁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모두가 달려가고 날아가는 친구들인데, 그 안에서 속도를 맞춰가지 못하는 학생들은 고립감과 무기력함, 패배감마저 느낍니다. 그래도 중학교까지는 심리적인 문제에만 영향을 끼치겠지만, 고등학교로 가면 이야기가 더 심각해집니다.

심리적인 어려움은 물론 실질적으로 입시에서 불리한 위치에 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 문제만 틀려도 등급이 3~4등급으로 쭉쭉 밀리고, 최상위권 학생이 많을수록 교사들은 최상위 학생들을 변별하기 위해 소위 킬러 문항을 출제합니다.


동료 교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킬러 문항을 출제할 때마다 교사 스스로 자괴감을 느낀다고 합니다. 본인도 전공 서적을 찾아봐야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단순히 변별력을 위해 출제하고 있으니 씁쓸하기만 합니다.


당연히 이런 문제에 접근조차 하지 못하는 학생들은 내신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자신감을 잃게 됩니다. 중학교까지 그럭저럭 따라오던 학생들도 고등학교에서 전의를 상실하고 심각한 경우 심리적인 상담이나 치료까지 받기도 합니다.

같은 모의고사 점수를 받는 학생이더라도 지방의 평범한 인문계고 소속이라면 내신 2등급 정도 받을 실력의 학생이 뛰어난 학군지에서는 4등급을 받기도 어렵다는 뜻입니다. 학교 선택만 잘했으면 소위 in 서울 대학 정도는 진학할 수 있을 텐데, 선택을 잘못해서 4등급을 받으면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대입에서 40%까지 정시 선발을 늘린다고는 하지만, 상위권 학생들은 선택의 여지없이 수많은 재수생, N수생, 같은 처지의 영재고, 자사고 학생들과 경쟁해야 하는 기막힌 처지가 될 수도 있습니다. 내신을 포기하는 순간 학교 수업 중 절반도 수능 과목이 되지 않기 때문에 학교생활 자체가 무의미하게 느껴지고 즐겁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고 단순히 내신을 따기 위해 학군 지를 벗어나야 할까요? 저는 기초실력이 부족한 학생들, 수업 시간에는 엎드려 잠을 자는 무기력한 학생들이 대다수 모인 학교에서 근무한 적이 있습니다.


모의고사 1~2등급은 구경하기 힘들고, 절반 이상 5등급을 넘어가는 학생들이 모인 곳이기에 내신을 따고 싶다는 야무진 꿈을 가지고 전학을 오는 학생들도 있었습니다. 그럼 이런 전학생들은 잘 적응하고 내신 1등급을 받아 원하는 대학에 진학했을까요?

제가 지켜본 바로는 학생의 기질에 따라 매우 달랐습니다. 학급의 분위기나 친구 관계에 큰 영향을 받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학생의 경우에는 이렇게 공부 안 하는 변두리 학교가 내신 경쟁에서 유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친구들이 떠들든 말든, 공부하든 말든 성실히 수업을 들을 수 있는 엄청난 인내심과 자제력이 있어야 합니다. 이 친구들은 주로 내신에 올인하기 때문에 정시 준비는 치열하게 하지 못합니다.


모의고사 성적보다 내신 등급이 월등히 높아서 수능 최저가 없는 대학을 노리거나 최저 등급만 충족할 정도로 수능 공부를 합니다. 대신 각종 교내 대회에 열정적으로 참가하고 우수한 학생이 적은 학교라 수상도 많이 합니다. 수업 시간에 열심히 참여하여 교과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도 학업역량을 최상위로 보여줍니다.


대다수 학생이 열심히 하는 학교라면 빛을 보지 못했겠지만, 공부 안 하는 학교에서 열심히 하는 학생은 눈에 띌 수밖에 없고, 그런 학생이 소수다 보니 교사들은 몇 명의 학생들의 교과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을 정말 정성스럽게 씁니다. 그만큼 기특하고 돋보이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학생부 종합전형으로 학군지에서라면 중위권 대학도 가지 못했을 학생들이 최상위 대학에 진학하는 성공적인 사례도 여럿 본 적이 있습니다. 당시 강남에 있는 고등학교에 다니는 자녀가 있는 동료 교사들이 우리 애도 여기 데려오면 최소 2등급은 받겠다며 하소연을 많이 하셨습니다. 하지만 정작 이사를 해서 적극적으로 아이를 전학시키는 부모는 보지 못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렇게 주위 환경에 휩쓸리지 않고 독하게 공부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웬만한 인내력과 자제력으로는 분위기와 환경을 거스르기가 쉽지 않습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목표 지향적인 사람은 극소수인데, 한창 친구 관계가 예민한 시기에 모두가 노는 분위기에서 독하게 공부하기는 정말 쉽지 않습니다. 내신 경쟁에 유리하다는 기대로 분위기가 좋지 않은 평준화 인문계고에 진학했다가 친구들이 떠들고 놀 때 분위기에 휩쓸려 같이 놀다가 내신과 정시 모두를 놓치는 학생들이 대다수입니다.

이런 학생들은 차라리 모두가 공부하는 분위기인 곳에서 큰 감정의 동요 없이 공부하며 정시 준비를 해 나가는 것이 더 좋은 선택일 수 있습니다. 학생들이 공부하지 않으면 교사도 수업 준비를 잘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수한 학생들이 많이 모인 학교에서는 교사도 항상 긴장하고 수업 준비를 열심히 합니다. 수업의 질이 더 우수해진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매시간 준비된 수업이 알차게 진행되고, 내신 수업이 곧 수능을 대비할 수 있을 정도로 수준이 맞추어져 있어 내신과 수능을 이원화해서 공부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또한, 학군이 좋지 않은 곳에 있다 보면 학교 폭력 문제, 수업 시간에 용인되기 힘든 행동을 하는 소위 날라리 친구들 때문에 소모하는 쓸데없는 감정의 소비가 많습니다. 고등학교 생활이 꼭 대입만을 위해 중요한 게 아닙니다. 교우관계, 학창 시절의 즐거움도 고려해야 합니다. 따라서 학생의 개인적인 성향에 맞는 학교, 발전 가능성이 있는 학교를 선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이런 점에서 자제력과 인내심이 뛰어난 학생은 내신 경쟁에 유리한 학교를, 분위기를 잘 타고 친구의 영향을 많이 받는 학생은 학군이 좋은 학교를 선택하는 것이
유리합니다.


이도 저도 아니라면 집에서 가까운 학교에 지원해야겠죠. 그래야 등하교 때 에너지 소모도 줄이고, 중학교 친구들 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으며, 학교급이 바뀌어도 인근 학교는 혁신지구로 묶여 있다든지 생활환경이 비슷하다든지 하는 공통분모가 있어 큰 모험 없이 안정적인 학교생활을 시작해 나갈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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