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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나무 Dec 14. 2020

살면서 포기한 두 가지

괜찮지 않지만 괜찮아.

나름 승부욕이 있고 도전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성격이지만, 해도 안 된다고 깔끔히 두 손 들고 물러선 게 두 가지 있다. '넌 내가 감히 넘을 수 없는 벽이구나.'라고 주저앉게 만든 것.


첫째는 영어다. 믿기 어렵겠지만 난 영어 특기생으로 대학에 입학했다. 수능 시험에서 수학은 폭망 했지만 웬일로 영어는 헷갈리는 두 개 중에 찍는 것마다 정답이었으니 이때까지 언어에 근자감이 있었다.


대학교 2학년 때 우즈베키스탄에 가서 나의 이런 근자감은 더욱 확고해졌다. 현지인 집에 하숙을 하면서 2개월 만에 다른 언어가 귀에 들리기 시작했고, "쉐르다 똑땅!(여기 내려주세요~~)"라고 씩씩하게 외치며 버스를 타고 다녔다.


'외국어 배우는 거, 별 거 아니네~~'라고 자만심에 빠져 있다가 이번 생이 끝날 뻔했으나 미국 생활은 나를 아주 작아지게 만들었다. 사는 곳이 미국이었다 뿐이지 집안에서 두 아이를 키우는 데 집중했기 때문일까. 4년을 살아도 말이 자유롭게 나오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을 못 하고 못 알아들어도 자존심 때문에 되묻지 못하고 웃기만 했다. 그러다가 한국에 들어오니 이제야 온전한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이다. 언어가 사람의 사고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모국에 오니 내가 똑똑해진 느낌마저 들었다.


미국 생활 이후 오히려 다시는 영어를 듣거나 말하고 싶지 않다는 고집이 생겨 버렸다. 우즈베크어는 한국어와 어순이 같고, 어간에 어미가 붙어 활용한다는 특징이 있지만 영어는 문법 체계가 완전히 달라 배우기가 어렵다는 결론을 갖고 항복했다.

둘째는 다이어트다. 많이 먹지도 않고 먹는 속도도 느린 편인데 마흔이 되면서 살은 꾸역꾸역 찌기 시작했다. 세 아이를 출산하고도 모유수유가 끝날 즈음이면 앞자리가 "4"로 내려왔으니 이렇게까지 살이 찔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마흔이 넘어가면서 야금야금 살이 오르기 시작했다. 워킹맘이라 운동할 시간을 내기도 어렵고, 퇴근 후 아이들을 먹이다 보면 저녁을 굶기도 어렵다. 달달한 과자 같은  간식이  아이들 덕분에 항상 손 닿는 곳에 있으니 끊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마음껏 먹고 즐긴 것도 아니다. 체력이 되는대로 땅끄 부부 같은 홈트레이닝 운동도 따라 하고, 다이어트를 한다고 한약도 먹어 보고, 바쁜 아침에 샐러드를 싸 다니면서 고칼로리 점심 급식을 끊기도 했다.

그래도 신기한 건 잴 때마다 체중이 늘고 있다는 절망스러운 사실이다. 교육학 개념 중에 "학습된 무기력"이란 게 있다. 실패의 경험이 누적된 아이들은 무기력을 학습한다. 노력하는 일마다 결과가 좋았다면 그런 아이들의 심리를 이해 못했을 것 같다.


"그냥 공부하면 성적 오르잖아. 잔말 말고 공부하라고! 노력하면 되잖아. 그걸 왜 안 하는데"하면서 답답해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해도 안 되는 게 있다는 걸 뼈저리게 깨닫는다.


"안 먹으면 빠지잖아. 운동을 (노력을) 하라고!"라는 말이 얼마나 간단하면서 허공을 울리는 밀인지! 오늘도 저녁 식사 후 초콜릿 과자를 앞에 두고 자신과 싸우고 있다. 실패를 반복하다 보니 난 이미 결과를 알고 있다. 참고 참다가 못 이기고 저 초콜릿 과자를 먹어버릴 거라는 걸.


그래서 어이없게 내리는 결론은 참다 포기하여 저녁 늦게 먹느니 한 시라도 빨리 먹자는 것이다. 달콤한 초콜릿 과자를 먹으면서도 마음은 씁쓸하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어릴 때는 '하면 된다, 포기는 배추를 셀 때만 하는 말이다, 내 사전에 불가능한 일은 없다.'이런 말에 자극을 받고 좋아했는데 요즘은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같은 류의 책에 손이 먼저 간다.


노력하지 않는 삶을 예찬하는 건 아니고, 모든 것을 잘할 수는 없으니 스트레스받지 잘할 수 있는 건 열심히! 해도 안 되는 건 내려놓는 연습을 하는 거다. 과감히  해 버리면 사실 스트레스도 받지 않고 편한 건데 아직도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걸 보면 완전히 내려놓지는 못한 것 같다.


언젠가 마흔이 넘어 영어를 정복한 이야기, 애 셋을 출산하고 다이어트에 성공하는 이야기도 올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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