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투리다이어리 005
다영인 참 착해. 친척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저녁 식사 준비를 하던 할머니가 나를 찾는다. 8살의 다영이가 부름에 응하자 할머니는 내 손에 천 원을 쥐여주며 두부 한 모와 콩나물 500원어치를 사 오라고 한다. 내가 ‘네’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할머니는 말한다. 다영이가 제일 착해. 본의 아니게 착해진 다영이는 기왕 착해져 버린 거 신이 나서 대답한다. 응!!!
그날은 담임선생님의 숙제 검사가 있는 날이었다. 국어 교과서에 실린 소설 한 페이지를 필사하는 일이었는데 A4용지의 반쪽 정도 되는 분량이라 당일 아침 등교와 동시에 부랴부랴 숙제를 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나는 전날 미리 해둔 숙제를 책상 위에 펼쳐두고 몸을 뒤로 돌려 뒷자리 친구가 숙제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또 다른 친구가 등교하자마자 책가방을 책상에 걸어두곤 우리 자리로 걸어왔다. 그 친구도 아이들이 아침부터 무언갈 적기 위해 몰두해 있는 모습을 보며 숙제가 있다는 사실을 상기한 모양이었다. 친구는 내 책상 위에 펼쳐진 숙제를 보며 말했다. 우와 다영아 너 글씨를 정말 잘 쓴다! 진짜 잘 쓰는데? 타고난 악필인 나는 뜻밖의 칭찬에 들뜬 표정으로 친구를 바라보았다. 친구가 이어서 말했다. 여기, 여기에 다시 한번 써볼래? 나는 A4 용지 반쪽짜리 숙제를 3장이나 신명 나게 써 내려갔다.
여자친구가 남자친구에게 ‘왜 나를 좋아해?’라고 묻는다면 그것은 당신이 심판대에 올랐다는 뜻이다. 당신과의 관계에서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끼거나 자존감을 갉아먹는 무례를 보였거나 또는 당신이 너무 좋아져 버려 불안함이 고조된 상태란 뜻이다. 그리고 답안지 속 정답은 모두 다르다. 지나간 내 남자친구들은 하나 같이 말했다. 너는 순하고 착해. 하나 같이 징역을 선고받았다.
나는 착한 아이콤플렉스가 있다. 그러니까 착한 아이가 되지 않을 거야 콤플렉스. 성인이 되며 누군가 내게 이 방아쇠를 당길 때마다 열을 내는 것은 콤플렉스가 있다는 가설에 대한 방증이니 신경 쓰지 말자하며 나를 다독이지만 나는 여전히 내 속에 이 콤플렉스가 존재하는 것을 안다. 착한 건 너무 별로다. 정말 싫어.
.. 나 바보 아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