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투리다이어리 004
내 아빠는 내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되었을 무렵부터 병원 신세를 졌다. 엄마는 아빠가 허리가 아파서 그렇다고 했다. 서있기 어려워 누워만 있어야 하니 입원해야 한다고 했다. 쓸데없이 낙천적이기만 한 눈치 없는 딸래미는 아구래? 하고 덥썩 현실을 받아들였다. 이 해맑은 딸래미는 저녁마다 아빠에게 전화해 언제와아 아빠아아아 보고싶다고오 투정하는데 아빠와의 마지막 2년의 시간을 다 써버렸다.
병원 생활을 하는 건 아빠만이 아니었다. 우리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던 엄마는 일을 관둘 수 없었다. 그렇다고 아빠를 간호할 간병인을 둘 만큼 여유롭지도 않았다. 그렇게 엄마는 무적이 되어 일과 간호를 병행했다. 아빠의 입원과 동시에 엄마도 거의 병원에서 살다시피 했다. 우리 가족은 세 명이었다. 구성원 셋 중 둘이 빠진 하나는 매일같이 예전처럼 둘이 돌아오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렸다.
한 달에 한 번 아빠를 보러 병원에 갔다. 아빠는 갈 때마다 여위어져 있었다. 어느 날은 머리가 다 빠져 대머리가 되어있었고 어느 날은 약에 취해 나를 알아보지도 못했다. 놀래서 아빠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는 딸에게 엄마는 아빠가 병을 치료하기 위해 독한 약을 써서 그렇다고 했다. 별 문제없다고 했다. 덤덤히 말하는 엄마의 모습에 외려 안심이 되었다. 허리가 아픈데 이렇게까지 독한 약을 써야 하는구나 생각했다. 암병동에 들어서면서도 아빠는 왜 여기에 입원했지 의심이 피어올랐지만 나는 어린이라서 어른들 사정은 모르는 거겠지 하고 금세 잊어버렸다. 돌이켜보면 무척이나 어이없지만 나는 철석같이 엄마 말을 믿었다.
1화에서도 언급했지만 어린 나의 기억조각모음은 어른들이 하던 이야기를 귀동냥해 저장해 두었던 것이다. 아빠는 8인실 병동을 썼다. 같이 병실을 쓰는 환자들도 꽤 오래 이곳에 머물렀다. 우리 환자네 가족들은 서로가 익숙해져 점차 눈인사도 하고 과일도 나눠먹었다. 입원한 환자들은 아마도 모두 항암치료 중이었을 거다. 다들 배든 호흡기든 삶을 연명하기 위해 무언가를 줄줄이 달고 생활했다. 어느 주말이었다. 오랜만에 이모들이 나를 아빠에게 데려다 주어 면회를 간 날이었다. 엄마 손을 붙잡고 병실에 들어서자 웬일인지 옆에 입원한 할머니네 가족들과 서먹한 공기가 맴도는 것이 느껴졌다. 그 분위기에 짓눌려 나도 할머니께 데면데면 인사를 하고 누워서 자고 있는 아빠 옆에 착 달라붙어 앉았다. 커튼이 쳐지자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이 이모에게 말을 쏟아냈다. 아니 어제 다영이 삼촌이 새벽에 치킨 스무 마리를 사 왔더라니까 글쎄. 술이 잔뜩 돼서는. 원무과에서부터 간호사들이 붙어 병동에 반입 금지라고 말려댔는데 욕을 욕을. 하. 기어이 병실까지 치킨봉지를 들고 들어오더니 이이가 자기를 못 알아보니까 다시 큰 소리로 고래고래 욕을 하면서 화장실로 가대. 그러고는 엉엉 울면서 치킨을 봉다리째로 변기에 마구 쑤셔 넣지 뭐야. 에휴 내내 사과하느라 한숨도 못 잤다니까.
한 동안 오래 입원해 있던 아빠가 얼마간 집에서 지내던 시기가 있었다. 아빠는 병원에서와 같이 내내 누워있었지만 그래도 나는 셋이 된 집이 좋았다. 저녁식사 후 아빠의 이부자리 주위로 엄마와 내가 둘러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 좋았다. 그날도 엄마와 나는 누워있는 아빠를 사이에 두고 내가 낮 동안 학교에서 있었던 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집집마다 유선전화가 있던 당시에는 늦저녁에는 전화를 걸지 않는 것이 예의였다. 때문에 밤늦게 갑자기 울려대는 전화소리에 이 시간에 누구지 의아해하며 나는 전화기로 달려갔다. 내가 여보세요라는 말을 마치기도 전에 수화기 너머로 삼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영아 아무 말도 뱉지 마라이. 삼촌이라고 부르지 말고 삼촌이 하는 말에 답해봐라이. 나는 시키는 대로 삼촌이라고 부르지 않고 응 하고 대답했다. 다영아 니 아빠가 죽으면 어쩔끼고? 나는 생각지도 못했던 질문에 당혹스러워하며 응? 어… 음.. 하고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전화를 받는 내 모습이 수상하게 느껴졌던 엄마는 황급히 달려와 전화를 뺏어들 고는 수화기에다 대고 소리쳤다. 애한테 무슨 소립니꺼. 이럴 거면 다신 전화하지 마이소.
아빠가 죽기 전까지 이러한 수상한 슬픔이 수없이 나에게 숱한 힌트를 주었지만 나는 당일이 될 때까지도 아빠가 죽을 거라는 생각은 상상하지도 못했다. 아빠의 죽음과 더불어 친할머니는 아빠의 장례식장에서 가족의 상장폐지를 선언했다. 엄마에게 삼촌은 자기가 알아서 할테니 연락처도 바꾸고 이사도 가라고 했다. 며느리에게 베푸는 마지막 마음이었을 거다. 직업도 없고 숙모도 없지만 욕은 잘하는 삼촌은 아빠 장례식에서도 시원하게 고성방가를 갈기다가 경찰에 끌려갔다. 그게 내가 본 삼촌의 마지막 모습이다. 지금 나는 삼촌이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른다. 내게 삼촌은 아빠랑 똑같이 생긴 사람. 하지만 아빠에게 지는 사람. 용돈을 많이 주는 사람. 나를 정말로 사랑해 주는 사람. 엄마를 괴롭히는 사람. 가족을 파탄 낸 사람. 이다. 삼촌을 못 본 지도 20년이 훌쩍 지나간다. 나는 어느새 삼촌의 나이에 가까워지고 있다. 아빠 인생의 마지막 2년동안 엄마를 못살게 했다는 이유로 나는 삼촌을 미워했다. 내가 삼촌의 나이에 들어서게 되며 이제야 생각한다. 삼촌은 아빠를 많이 사랑했구나. 그래서 많이 슬펐구나. 의도가 좋다고 해서 망쳐버린 결말을 면책해줄 순 없겠지만 나는 가끔 혼자서 몰래 그의 안부를 묻곤 한다. 삼촌 잘지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