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내 삼촌? (1)

자투리다이어리 003

by 다영

잘 지내 삼촌? (1)



삼촌은 작은 강호동처럼 생겼다. 아니 강남스타일을 부른 싸이에 더 가까우려나. 길쭉하게 찢어진 눈매와 호빵맨처럼 도드라진 광대가 그를 한층 더 익살스러워 보이게 한다. 그는 육 남매 중 넷째로 태어난 내 아빠의 바로 아래 다섯째 동생이다.


친할머니집에서는 항상 쿰쿰한 냄새가 났다. 비릿하고 정돈되지 않은 그 냄새는 어린 나의 콧 속에 가난의 냄새로 새겨졌다. 종일 화분의 풀잎을 쓰다듬으며 정원을 가꾸는 외할머니 집에서 나는 프리지아 향기와 대비되어 더 선명히 궁핍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외할머니를 할머니라 불렀다. 내게 할머니는 외할머니였다. 친할머니는 친할머니라 불렀다. 내게 이모가 둘이지만 내가 '우리 이모가~' 하고 말하는 것은 작은 이모를 의미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 시절 친할머니집 풍경을 떠올리면 어딘지 불행이 곳곳에 널려있는 모습이다. 볼일을 본 뒤 바지를 다 입지도 않은 상태로 문을 왈칵 열어젖히며 화장실에서 나오는 친할머니. 설거지가 끝난 그릇에 여전히 붙어있는 고춧가루. 우리 가족이 놀러 와 자리를 잡고 앉으면 밥상 둘 곳도 없을 만큼 좁디좁은 방. 친할머니는 친할아버지의 두 명의 부인 중 첫 번째 부인으로, 먼저 간 남편의 제사와 남편의 또 다른 부인의 제사를 함께 지냈다. 친할아버지는 아빠가 어렸을 적에 돌아가셨다. 친할머니는 어림잡아 30년을 홀로 육 남매를 키운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녀가 평생을 투자해 몰빵한 종목은 하락장이었지만. 첫째 아들은 그 당시 흔치 않은 돌싱이라는 신분으로 집에 발길을 끊은 지 오래였고 둘째 셋째 고모는 출가외인이라는 이유로 명절에도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막내 삼촌은 일찍이 죽어서 진즉 세상에 없었다. 친할머니집에 가면 나를 반겨주는 건 삼촌 한 사람뿐이었다. 친할머니집에 방문하는 유일한 손님은 넷째 아들네 가족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친할머니집에 가는 것을 좋아했다. 그곳은 우리를 최고로 반겨주는 곳이었다.


친할머니집에 가면 삼촌은 집의 유일한 방 문을 열고 나와 배를 벅벅 긁으며 우리를 맞이했다. 그는 늘 작은 방에서 방금 잠에서 깬 듯 쩌억 하품을 하며 나왔지만 나는 삼촌이 그곳에서 산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른들은 아이들 귀에 노이즈 캔슬링 기능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방 저 방 뛰어다니며 산만함을 뽐내는 어린이는 어른들이 나누는 말소리를 듣지 못할 거라 착각한다. 하지만 어린이들도 안다. 이 작은 세상 속에도 왕과 피고인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리고 이 세계에서 삼촌은 난봉꾼이었다. 삼촌은 그때 그때 자기를 예뻐해 주는 여자 집에서 살았다. 동거 기간이 길어지면 몇몇은 집으로 인사를 오기도 했다. 그녀들의 인사를 받을 때면 친할머니와 아빠는 나에게 그들을 숙모라 부르라 했다. 내가 곧장 숙모~하고 부르며 친한체하면 어른들은 난봉꾼에게도 아직 희망이 남아있단 걸 확인하여 안심한 듯 하하 호호하고 웃었다. 나는 무엇 때문에 웃는지도 모르면서 따라 으헤헤 웃었다. 어느 명절날이었다. 삼촌과 나란히 다소곳하게 앉아있는 숙모의 수줍은 모습을 멀뚱히 바라보다 불현듯 호기심에 삼촌에게 물었다. 근데 삼촌, 삼촌은 왜 맨날 숙모가 바뀌어? 그날의 공기를 아직도 기억한다. 우리는 다 함께 식사 후 커피와 떡을 집어 먹던 중이었다. 애석하게도 전씨네 사람들은 능청스럽기보다 진중한 타입이었다. 그날은 아무도 하하 호호 웃지 않았다. 나도 따라 으헤헤 웃지 않았다. 삼촌은 그날 집으로 돌아가서 숙모에게 혼이 났을까?


난봉꾼에 직업도 없었던 삼촌은 명절이면 나를 대형 문구점으로 데려가 장난감을 한가득 사주었다. (지금에서야 돈의 출처가 궁금해진다.) 삼촌과 손을 맞잡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는 지갑을 꺼내 나에게 현금뭉치를 자랑하기 시작했다. 삼촌 부자지? 그리고 시작된 연례행사타임. 삼촌이 좋아? 아빠가 좋아? 이 질문을 수없이 받아온 어린이는 더 이상 당황하지 않는다. 죄책감을 느낄 대상을 떠올리며 잠시 얼굴만 찌푸릴 뿐이다. 아빠에겐 미안하지만 대빵만 한 장난감을 손에 쥔 상태로 삼촌을 배신할 순 없었다. 게다가 마침 그 자리에는 아빠도 없었다. 나는 왕이 신하에게 비밀포상을 내리듯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삼촌...! 삼촌은 호탕한 웃음을 푸하하 터뜨리며 배춧잎 몇 장을 내 조막만 한 손에 쥐여줬다. 그 순간만큼은 우리 둘이 세상에서 최고로 행복한 사람들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