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언젠가는 그리고 반드시 사라질 역경이란 연기
“애애앵~~” 소방차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요 옆의 아파트에 불났데요”, “어?!”
“장욱씨! 아기!”라고 옆자리 직원이 외쳤다. 그 소리에 바로 나는 뛰어 나갔다.
아파트 7층에 살 때 지하 1층에서 불이 난 적이 있다. 당시 우리 집에는 100일이 갓 지난 아들과 아내 그리고 어머니가 같이 계셨다. 나는 회사에서 야근을 하고 있었다. 도보로 이동 가능한 가까운 거리에 있었기 때문에 금방 확인하러 갈 수 있었다. 엘리베이터는 사용을 하지 못하게 했고 소방차 여러 대와 많은 소방대원들이 와서 상황을 대처하고 수습하고 있었다. 겨우 아내와 통화한 나는 옥상으로 대피하고 있다는 연락을 받고 단숨에 15층을 올라갔다. 안전사고 방지를 위해 옥상 문이 잠겨 있어 그 앞에 미처 아파트 밖으로 대피하지 못한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아들은 어부바를 한 상태에서 무릎담요로 완전 덮여있었다. 정말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있었다. 개를 안고 나온 사람, 미처 옷도 못 입고 속옷 차림으로 나온 아저씨, 좀 더 큰 어린아이를 안고 온 사람, 요리하다 말고 나온 아줌마, 신발도 못 신고 나온 사람, 전화를 하느라 바쁜 사람 등.. 보통 아이들에게 강의할 때는 이 소재는 ‘가장 소중한 가치는 무엇인가?’라는 강의를 할 때 나누는 주제인데 이번 꼭지에선 다른 시선으로 다뤄보고자 한다. 다행히 큰 불로 번지지 않았고 다들 대피를 해서 큰 인명피해 사고는 없었다. 다만 불이 더 번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소방관들은 대피한 사람들을 집에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그것은 바로 “연기” 때문이었다. 복도와 계단, 집안까지 차 있는 연기가 완전히 사라져야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심지어 약간이라도 연기를 마신 사람은 앰뷸런스를 통해 근처 병원에 가서 진료와 검사를 받았다. 해당 시간이 저녁 8시가량이었기 때문에 우리 가족 모두는 진료를 마치고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여기서 나는 두 가지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다.
첫 번째, 연기는 역경과 고난처럼 우리를 힘들게 한다. 언제 어떻게 우리에게 올지 모른다. 연기는 독성이 강한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그을음을 남기는 연기도 있다. 연기는 농도가 있으며 짙으면 시야를 가린다. 연기는 마시면 호흡이 괴롭다. 일상생활을 못 하게 한다. 하지만 밑의 두 번째가 훨씬 더 중요한 내용이다.
두 번째, 연기는 언젠가 그리고 ‘반드시 사라진다’는 것이다. 우리도 역시 연기가 다 사라진 다음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 연기의 농도가 짙었어도 사라진다. 연기의 냄새가 매캐했어도 사라진다. 연기가 가득했어도 결국 사라진다. 연기가 많았어도 사라진다. 연기는 결국 없어진다. 결코 영원하지 않다.
운동선수에게는 슬럼프가 찾아온다. 슬럼프는 실력과 성적이 나쁜 선수가 겪는 경험이 아니다. 슬럼프는 실력과 성적이 좋은 선수가 겪는 경험이다. 우리가 잘 아는 인물이며 놀라운 성적으로 자신의 종목에 큰 업적과 기록을 남긴 선수들 모두 슬럼프를 겪었다. 골프선수 박인비, 박세리, 농구선수 마이클 조던, 축구선수 손흥민, 박지성, 피겨선수 김연아, 배구선수 김연경 등 이들의 공통점이 있다. 하나는 자신의 종목에서 엄청난 두각과 성적을 낸 선수들이라는 것, 다른 하나는 슬럼프를 겪고 극복했다는 점이다. 각자가 극복한 방법은 다양하다. 혹독하게 더 연습을 한 선수도 있다. 마음을 비우고 잘하려는 생각조차 내려놓은 선수도 있다. 더 나은 코치를 만나 새로운 훈련을 접한 선수도 있다. 그 방법은 다양하다. 중요한 것은 슬럼프가 연기처럼 사라졌다는 점이다.
나는 운동선수는 아니다. 어렸을 때 잠도 제대로 못 잘 정도로 고민이 있었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고 혼자서 가슴이 아리도록 가지고 있던 걱정도 있었다. 심지어 작년에도 지난달에도 고난이 있었다. 고민이 있었다. 역경이 있었다. 걱정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도 그것들이 나에게 남아있지 않다. 반면에 내일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걱정거리가 생길 것이다. 고민거리가 생길 것이다. 고난도 역경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지레 겁먹지 않는다. 마음 조려 하지 않는다.
내가 기억하지만 지금은 연기처럼 사라진 경험은 간단하게 써보면,
1. 중3 때 이사한 집이 내 머리가 천장이 닿을 만큼 낮은 화장실도 없는 다락방이었다.
2. 방학 때는 단체 독서실에서 의자를 올리고 책상 아래 들어가서 자면서 지냈다.
3. 대입에 실패하고 학원 다닐 형편이 안 되어 구립 도서관을 옮겨 다녔다.
4. 중3부터 대학교 2학년이 될 때까지 부모님과 떨어져 살았다.
5. 학교 졸업이 연기가 되어 합격한 학사장교 입소를 포기했다.
6. 다시 지원해서 간 학사장교 임관 후에 성적은 거의 꼴찌였다.
7. 인턴 후 계약직에서 정규직 전환에 실패했다.
8. 정규직도 얼마 되지 않아 권고사직을 당했다.
9. 결혼 후 겨울에 이불을 덮고 누우면 입에서 나는 입김이 보이는 집에서 살았다.
10. 다행히 겨울이 지나 이사를 했는데 그 집도 창문에 얼음이 어는 집이었다.
11. 기획부동산에 사기를 당했다.
12. 책은 출간했지만 1쇄를 넘기지 못했다.
13. 그 외에도 작고 큰 연기 같은 걱정거리가 있었다. (아들 새벽 복통으로 얼마 전 입원)
사람들은 부활은 믿지만 죽기는 싫어한다. 아브라함처럼 복을 받길 원하지만 이삭을 바치라는 시험은 받고 싶지 않아 한다. 야곱처럼 부유하길 원하지만 도망치고 연단받는 생활은 원하지 않는다. 요셉이 총리가 된 것처럼 높은 사람이 되길 원하지만 팔려가고 감옥에 갇히고 싶어 하진 않는다. 다윗은 배신당하고 도망 다녔다. 모세는 살인을 저지르고 광야에서 40년을 살다. 욥은 엄청난 고난을 당했다. 다니엘은 사자굴에 갇혔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했다. 우리가 결코 잊지 말아야 하는 진리는 예수님은 고통당하셨고, 저주받으셨으며, 제자들은 배신했다. 십자가에서 매를 맞으셨다. 못 박히셨다. 가시관을 쓰셨다. 창에 찔리셨다. 채찍에 맞으셨다. 그리고 죽으셨다. 하지만, 죽으셨기에 부활하셨다. 다시 사셨다. 부활이 있기 전에 반드시 죽음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이 겪는 경험들이 연기 같을 수 있는 기준과 조건은 무엇일까? 이 글을 볼 수 있는 시간이 있으면 이런 경험들은 사라지는 연기이다. 약간이라도 공감이 된다면 그가 지금 겪는 고통과 가지고 있는 고민은 사라지는 연기이다. 개선하고 나아지려는 의지가 있다면 그가 지금 갖고 있는 걱정과 문제는 사라지는 연기이다. 가장 중요한 믿음이 있다면 크고 많은 문제들은 결국 연기처럼 사라진다. 지나간다. 없어진다.
여러분이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분명 작년 한 해동안 가지고 있던 문제와 걱정거리가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아직도 여러분의 발목을 붙잡고 놔주지 않고 있는가? 아직도 가로막고 있는가? 여전히 앞을 가리고 있는가? 지금도 힘겹게 하는가? 대부분 그렇지 않다. 없어졌다. 희미해졌다. 사라졌다. 내가 그 고통을 겪을 만큼 성장했다. 무뎌졌다. 지나갔다. 통과했다. 어떤 모양으로도 그 연기가 지금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시 한번 강조한다. 연기가 영원하지 않다.
위기, 역경, 고난, 고통, 고민, 걱정, 괴로움, 어려움, 고비, 근심. 모두 연기처럼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