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되면 내가 밥 차려줄게
그와 저는 5살 차이가 납니다.
주위를 보면 오빠랑 만난다고 다 그런 건 아닌 거 같은데 저는 유독 신랑의 챙김을 많이 받는 편입니다.
어쩔 땐 소중한 아내/여자친구 대하듯 챙기고
어쩔 땐 귀찮은 여동생 대하듯 챙기고
어쩔 땐 손 많이 가는 딸 대하듯 챙기고
어쩔 땐 모셔야 할 할머니 대하듯 챙기고
그렇게 저는 그의 챙김과 보살핌을 많이 받는 편입니다.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제 띵~하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3일 연휴 동안 딸이 아팠고, 연휴 끝날쯤엔 저 또한 감기기운이 올라와 컨디션이 좋지 않았습니다.
잘 챙겨 먹어야 낫는다고 어젯밤은 딸을 재우고 소고기를 먹기로 했습니다.
딸을 제가 재우고 신랑이 먹을 준비를 하기로 했는데 신랑의 준비가 다 끝나도록 딸은 제 품에서 잠들지 않았죠.
결국 포대기로 아빠의 등에 업혀서 잠든 딸.
딸도 그가 재우고 밥준비도 그가 해서 고마움과 미안함이 공존한 채로 식사를 시작했습니다.
잘 차려진 밥상에
"잘 먹겠습니다!!" 외친 후 신나게 먹었습니다.
저를 빤히 보던 그가 물었습니다.
"이 한 상에 내 사소한 사랑과 애정이 들어가 있는 거 알아?"
"어~~~ 당연히 알지~~"
라고 답하며 고기를 씹으며 다시 상을 봤습니다.
구운 고기, 쌈, 소스들, 쌈무, 밥, 파무침.
일상적인 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하나의 그의 정성들은 차마 보지 못했습니다.
고기 식을까 봐 2번에 나눠서 구운 고기
마늘 좋아하는 나를 위해 썰어둔 생마늘
올리브유를 둘러 고기와 따로 프라이팬에 구운 마늘
내가 좋아하는 깻잎
입맛대로 다양하게 먹으라고 준비한 쌈장, 소금, 와사비
정육점에서 받은 걸 토대로 양념을 제조하고 내가 좋아하는 깻잎까지 추가한 파무침.
쌈 싸 먹는 걸 좋아하는 나를 위한 쌈무와 밥
사진 찍을 나를 위해 그릇에 정성스레 담기.
하나하나 세심하게 듣고 보니 아차... 싶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말했죠.
말 안 해도 아는 줄 알았는데 나는 정말 모르는 거 같다고...
네...
제가 이렇게 둔합니다.
그동안 모르고 지나친 그의 세심한 애정들이 얼마나 많았을까요?
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절대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
알고 있는데 무의식에 당연하게 받아들인 건 아닌지 반성해 봅니다.
딸을 재우고 주방을 보니
어제 그가 한 음식들이 한가득입니다.
내 최애 두루치기.
정성 가득 탕국.
영양 가득 미역국.
손수 만든 떡갈비.
내가 좋아하는 감자채볶음.
대단하죠 우리 집 아저씨?
세상에 이런 신랑도 있습니다.
그의 사랑 가득한 두루치기덮밥을 배불리 먹고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고자 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