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란하트 Jan 22. 2024

아이의 일이 부모의 감정싸움이 되지 않도록

그럴 수 있지, 그럴 수 있어


지난주 금요일에 있었던 일이다. 딸을 데리러 가기 20분 전쯤 담임선생님 전화가 왔다. 갑자기 온 전화에 불길한 느낌으로 받았는데 그 느낌은 적중했다. 선생님이 같은 반 친구 하원하는 그 사이에 옆반 친구가 딸이 서있는데 뒤에서 두 손으로 얼굴을 잡고 긁어서 양 얼굴이 부어올랐다고 했다. 약간은 조심스러운 말투로 입술에서 피도 난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당장 어린이집으로 갔다. 가면서도 ‘아이들끼리 놀다 보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나중에 우리 딸도 놀다가 친구 얼굴 긁을 수도 있는데’하며 괜찮다고 마음을 다독이며 갔다. 그러나 딸의 얼굴을 보는 순간 생각보다 많이 부어올라 있었고 눈물이 앞을 가렸다. 아리고 따가울 텐데 엄마 왔다고 웃으며 오는 딸을 보니 더 마음 아팠다. 주책맞게 어린이집 입구에서 울었다. 손으로 긁힌 게 아니라 입으로 깨문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한쪽 볼은 부어 있었고, 반대쪽은 선명하게 네 줄로 손톱자국이 나있었다. 피가 났다던 입술은 양 볼 쪽 흉터에 가려져 먼저 눈에 띄진 않았지만 상처가 있었다.


그 일이 있을 때 원에 안 계셨던 원장선생님이 곧바로 오셨고 생각보다 심하다고 하셨다. 내 딸이라서 내 눈에만 그렇게 보인게 아니구나 싶어서 더 속이 상해서 눈물이 나왔다. 씨씨티비를 확인하러 가시고 원에서 기다리는 동안 선생님은 연신 나에게 사과하셨다. 선생님의 말투와 표정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당연히 부모가 오면 하원하러 가는 거 맞고 맨날 이런 것도 아니고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며 빨개진 눈으로 선생님을 달래줬다. 씨씨티비를 확인한 원장님이 상황설명을 해주셨다. 딸이 서있었고 뒤에서 친구가 양 얼굴을 잡았는데 가만히 있다 보니 계속 잡고 있었고 움직이다가 앞으로 넘어졌고 그 위로 그 친구가 넘어졌다고 했다. 나도 씨씨티비를 보고 싶었지만 상황을 크게 만들고 싶지는 않아서 구두로 상황을 전해 들었다. 연고랑 마데카솔 습윤밴드를 원장님이 챙겨주셔서 그걸 받아 들고 어린이집을 나왔다.


딸이 유모차를 거부해서 함께 걸어가는데 그날따라 자꾸 넘어졌다. 안 그래도 친구가 그렇게 뒤에서 잡고 있었는데 가만히 서있었다는 말에 속상했는데 자꾸 넘어지는 딸을 보니 더 속상했다. 게다가 바람 불고 추워서 콧물이 줄줄 흐르는 딸을 보니 더 속상해서 짜증이 났다. 빨리 가자고, 유모차 타라고, 엄마 먼저 간다고 나도 자꾸만 날카로워졌다. 집 쪽으로 안 간다는 딸을 안고 겨우 집에 왔다.


집에 와서 놀고 밥 먹고 씻기고 하는 동안 내심 딸의 얼굴을 긁은 아이의 엄마 전화를 기다렸다. 미안하다고 하면 그럴 수 있다고 흉만 안 남으면 좋겠다고 말해야지 하면서. 그러나 전화는 오지 않았다. 분명 얘기 들었을 텐데.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일어난 상황은 충분히 이해가 하는데 그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마음이 풀린 부분과 더 기분이 상한 부분이 있었다. 연신 죄송하다며 사과하고 퇴근길에도 전화하고 주말에도 전화해서 괜찮은지 물어봐준 담임 선생님과, 연고와 밴드를 챙겨주며 위로해 준 원장선생님 덕분에 기분이 많이 풀렸다. 반대로 옆반 아이의 부모는 전화 한 통이 없었고, 내가 몇십 분 원에 있는 동안 그 일이 있었을 때 같이 있던 옆반 담임선생님은 문을 닫고 나오질 않았다. ‘사과를 받아야겠다!’ 이런 생각은 없었지만 말조차 없는 걸 보니 기분이 상했다.


금요일 저녁부터 주말 내도록 자려고 누우면 속상하고 기분 상해서 잠이 잘 안 왔다. 주말에도 담임선생님과 통화하면서 그 아이의 엄마도 이 상황을 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그런데도 연락 한 통 없는 상황에 주말 내도록 기분이 가라앉아있었다. 상처 보며 속상하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을 감정까지 상해버렸던 것이다.


월요일, 어린이집 등원시키면서 담임선생님에게 가방을 전해주는데 옆반 친구 엄마가 오셨다. 아이들을 들여보내고 원 앞에서 잠깐 얘기를 나눴다. 있었던 일을 설명했고 주말 동안 내가 많이 속상하고 기분 상했다는 걸 전달했다. 그 어머니는 이 상황을 ‘옆반 친구 얼굴을 긁었다’ 정도로 간단하게만 전해 들어서 이렇게 상황이 컸는 줄은 몰랐다고 하시며 눈물을 보이셨다. 그 모습에 나도 눈물이 나서 둘이 울었다. 딸 얼굴 그렇게 만들어서 죄송하다는 사과와, 월요일 아침부터 마음 무거운 얘기 해서 죄송하다는 사과를 서로 주고받았다. 상황을 알고도 연락 한통 없어서 마음이 많이 상했는데 오해를 풀고 나니 마음이 많이 녹았다.


아이를 키우면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인데 부모들끼리 감정싸움이 안되도록 뒤처리가 중요함을 느꼈고, 다음에 이런 일이 생기면(안 생기길 바라지만) 눈물부터 보이는 엄마가 아닌 의연하고 지혜롭게 헤쳐나가야겠다.


이제 마음의 상처는 풀고, 딸 얼굴에 남은 상처 잘 관리해 줘야지!





매거진의 이전글 왕초보가 청소하는 방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