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카드

by On Vacation

- 고객카드 -


꼭꼭 닫힌 수납장 속 꾹꾹 써진 고객카드

가려진 수납장 속 곱게 써 내려간 고객카드

연애편지도 아닌 것이 언제 왔었다 알려주고

기다리던 소식도 아닌 것이 곱게도 놓아뒀네


거긴 내 마음이야 거긴 소중한 내 마음 속이야

마음대로 열려거든 알려나 주던가

마음대로 놓고 갈 거면 아프게나 하지 말던가

나에겐 소중한 나만 보고 싶은 내 마음


살포시 두고 간 예쁘게 적힌 네 마음을

더 살포시 빼두려고 해 내 마음 밖으로

다시는 열지 않게 내 마음을

다시는 열지 않게 내 수납장을


그래서 싫어.

보기 불편하고 싫어서

그래서 좋아.

다시 닫을 수 있어서


어느 날 욕실 수납장에서 처음 보는 종이 한 장이 눈에 띄었다.

이게 뭐지? 하고 보니 비데 점검 고객카드였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 렌털업체에서 방문해서 점검해 주고 갔었다.

가면서 고객카드를 작성하고 수납장에 넣어두었던 것이다.

수납장엔 여분의 화장지, 치약과 사용하는 화장품, 빗, 드라이기 등이 있었고, 물론 숨기고 싶은 물건이 있던 건 아니었지만 꽤나 기분이 상했던 기억이었다.

수납장은 미닫이로 가려져 있었는데 거길? 굳이 거길? 열어서 왜 넣어뒀을까.

감추고 싶은 물건이 있는 건 아니지만 내 마음이 거기 들어있을 것 같은 건 왜일까..

마치 내 마음이 벌겨벗겨진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내 집인데.. 그래도 내 마음인데.. 왜 마음대로 내 집을 내 마음을 열어보고 마음대로 무언갈 넣어두고 닫은 걸까.

그래.. 내가 민감한 것일 수 있어.. 그래.. 일하시는데 편하게 아무 생각 없이 항상 그렇게 하셨을 수 있어..

...

..

.

아니. 난 그래도 내 마음이 소중해. 내 마음에 무언갈 놓고 가면 내 감정은 그걸 풀어볼 거고 일방적으로 당한 것 같아서 찜찜한 기분이 오래되니까.

그래서 싫어.

고객카드는 그 뒤로 수납장 밖에다 붙여두었다.

보기에 싫지만 그래도 내 수납장 속은 지킬 수 있으니까. 지저분해 보이지만 내 마음은 지킬 수 있으니까.

난 다시 나만의 수납장을 가지게 되었다.

난 다시 나의 마음을 감출 수 있게 되었다.

지저분하지만 감추어서. 어울리지 않지만 다시는 열지 않을 수 있어서.

그래서 좋아.


On Vacation.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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