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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포아빠 Aug 09. 2019

정부에 자료요구 잘하는 법

간신히 여의도 서식기_아홉 번째

지난 글에서 자료요구와 관련한 에피소드를 소개하면서 자료요구가 국회에서 일하는데 매우 중요한 일이라는 설명도 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내 나름대로 터득하고 생각하는 자료요구 잘하는 법에 대해 써볼까 한다. 자료요구는 무턱대고 한다고 좋은 자료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핵심을 잘 간파하고, 요령과 전략을 가지고 해야 더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자료요구에도 방법과 전략이 필요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정부에서 내 맘같이 자료를 순순히 알아서 주지 않기 때문이다. 자료요구는 더 알아내려는 자와 문제가 될만한 것들은 알려주지 않으려는 자 간의 두뇌싸움이고, 힘겨루기이며, 보이지 않는 신경전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나는 분명 A라는 서류를 달라고 했는데 B라는 엉뚱한 자료가 도착하기도 하고, 구체적인 수치와 통계를 말했는데 아무 쓸모없이 두루뭉술하게 포장된 자료를 보내기도 한다. 그러면서 "요구한 자료가 B인 줄 알았다"거나 "구체적인 자료가 없다"는 이유를 대기도 한다. 또 헌법과 국회법을 통해 국가 안보와 같은 중차대한 일을 제외하고는 자료 제출을 하도록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경우 "제출했던 관례가 없다", "자료를 가지고 있지 않다"라고 자료제출을 피하는가 하면, "원자료가 우리 부처가 아니라 다른 부처 소관이기 때문에 다른 부처에 달라고 해야 한다"라고 본의 아니게 핑퐁게임에 출전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때문에 자료요구를 둘러싸고 국회와 정부가 긴장관계에 있고, 또 읍소와 협상도 빈번하다. 자료요구의 목적이 사실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정부가 하는 일을 정부의 자료를 근거로 살펴 누구도 시비를 걸 수 없는 객관성을 추구하기 위한 것이라면 제대로 자료를 받아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물론 나보다 훨씬 자료 요구도 잘하고 일도 잘하는 분들이 국회에 셀 수 없지 많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노하우를 소개한다. 


방법을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필요한 것은 관찰력, 문제의식, 공부다. 늘 주위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관찰력을 통해 감수성을 발전시키고, 사건이나 사안을 볼 때 문제의식을 가지고 접근하며, 독서 등을 통해 공부가 되어 있을 때 양질의 자료를 요구하고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내게도 몇 번 그런 일이 있었는데,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을 며칠 앞두고 출근길에 소방관 수십 명이 눈이 쌓인 의자를 닦고 있는 모습을 봤다.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이지만 격무에 시달리며 화재와 구급상황에 출동해야 하는 소방관들이 의자를 닦고 있는 게 어딘지 마음이 불편했다. 그래서 사무실에 가자마자 동료에게 사진을 찍어줄 것을 부탁하고, 행자부 등 관련기관에 전화로 문의를 해놓은 후 언론에도 부당한 일이라고 제보했다. 소방관들이 강제로 동원된 것이라는 것을 확인한 후 어디 소방서의 인력이 얼마나 동원된 것이지 등 사실관계 등을 파악하는 자료요구를 통해 바로 자료를 입수했다. 이후 이 일은 신문 1면 등에 보도되는 등의 성과와 함께 많은 사람들이 소방관들의 열악한 처우와 부당한 대우에 대해 함께 공감하는 사건으로 확대됐다. 이처럼 마음의 작은 의문과 불편함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것, 평소에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는 것이 어떤 방법이나 전략을 논하기 전에 갖춰야 하는 자세라고 생각한다. 



자료요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자료요구는 최대한 빈틈이나 빠져나갈 여지가 없이 구체적으로 해야 한다. 

자료를 제출해야 하는 정부에서 국회가 원하는 대로 맞춰서 자료를 제출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건 공무원들이 나쁜 사람이라서가 아니다. 정부를 상대로 국회가 하는 일이 '견제와 균형'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좋은 소리보다는 듣기 싫은 소리, 칭찬보다는 비판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자료를 제출해서 질책이나 비판을 받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사람과 조직은 없기 때문이다. 물론, 본래의 목적과 의도대로 자료가 오면 좋겠지만 감나무 밑에 누워 감 떨어지길 기다리듯 알아서 좋은 자료, 필요한 자료가 오겠거니 생각하면 오산이다. 어떻게든 핵심을 피해 가고, 사실과 진상의 규명을 최소화하려는 태도에 대응해서 원하는 자료를 받아내려는 전략이 필요하다. 


때문에 자료요구는 될 수 있는 대로 구체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작성해서 제출하는 쪽이 재량을 가지고 판단하거나 자료를 취사선택할 수 있는 여지를 최소화해야 한다. 자료요구가 포괄적일수록, 또 작성하는 쪽이 개입하고, 가공할 여지가 많을수록 원하는 자료보다는 제출하는 쪽의 의도에 따라 작성된 왜곡된 자료가 도착해 별 쓸모가 없는 경우가 발생한다. 


구체적으로 자료요구를 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자료를 제출받고자 하는 사안, 파악하고자 하는 사건의 일시, 장소, 관련된 인물, 예산의 경우 세목과 구체적인 금액을 명시해 이에 대한 해명이나 설명, 관련된 자료를 요구하는 것이다. 자료요구에서 정부에 대해 하는 질문이 구체적일수록, 정확하게 원하는 것을 콕 짚을수록 정부의 자료제출 담당자가 이리저리 피해나갈 여지를 막고 효과적으로 자료를 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를 위해 주로 사용하게 되는 방법이 '표를 만들어 자료를 요구하는 것'이다. 제출하는 쪽에서는 다른 생각 할 여지없이 사실과 통계에 근거해 빈칸만 채우도록 하는 것이다. 그럼 자료요구를 둘러싸고 시비나, 해석의 차이가 발생할 가능성도 낮아지고 원하는 통계나 자료를 받아낼 가능성은 높아진다. 물론 이렇게 자료요구를 하는 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사안에 대한 공부가 충분히 되어야 구체적인 자료요구를 할 수 있고, 그냥 문장으로 하는 자료요구보다 표를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시간과 공이 많이 든다. 그만큼 자료요구는 들이는 노력과 공에 비례해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 같다. 


둘째, 자료요구는 지속적으로 끈기 있게 해야 한다.

항상 구체적으로, 표를 만들어 자료요구를 하면 좋겠지만 모든 자료요구를 그렇게 할 수는 없다. 글에도 두괄식, 미괄식이 있고 논리에도 귀납법과 연역법이 있듯이 자료요구를 하는 입장에서도 앞이 잘 보이지 않는 막연한 시작으로부터 성과를 얻어내야 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아직 명확하게 보이지는 않는데 정보나, 의혹을 통해 문제가 있다는 냄새가 날 때가 그런 경우다. 


이럴 때는 포괄적으로 시작할 수밖에 없다. 이런 경우 제출되는 자료도 추상적이고 뜬구름 잡는 식으로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나씩 단서를 잡아가면서 구체적으로 좁혀 들어가면서 자료요구를 해야 한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끈기다. 먼저 지치는 쪽이 지는 것이다. 계속해서 자료를 업데이트하면서 이미 받은 자료를 통해 알아낸 사실들을 발전시켜 전보다 더 구체적으로 자료요구를 해야 한다. 어제는 두루뭉술하게 질문할 수밖에 없었다면 오늘은 어제 받은 자료를 통해 한걸음 더 들어가는 자료요구를 해 진전을 시키는 것이다. 언론을 통해 크게 알려지거나, 정부의 큰 잘못이 밝혀져 문제가 되는 것은 이렇게 사소하고도 포괄적인 시작으로부터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자료요구에 있어 끈기가 필요한 이유는 한 가지 더 있다. 정부가 엉뚱한 자료를 내놓기도 하고, 최대한 시간을 끌면서 자료제출을 회피하기도 하고, 숨기고 싶은 경우에는 "자료제출은 할 수 없고, 직접 가서 설명하고 잠깐 보여드리겠다"라고 제안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장애물들을 뛰어넘고 결국 자료를 받기 위해 포기하지 않는 끈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부 공무원들을 고압적으로 대할 필요는 없지만 그들이 귀찮게 생각하더라도 충분한 기간이 지난 후에는 "자료 왜 안 주시냐", "언제까지 주실 거냐", "어느 정도 작성된 거냐", "오늘 준다고 하더니 왜 또 연락이 없는 거냐"같은 질문을 계속해서 해야 한다. 울지 않으면 떡을 주지 않는다. 


셋째, 의외의 횡재(?)를 할 때가 있다.

이건 방법이라기보다는 자료를 대하는 태도와 관련된 이야기인데, 제출받은 자료를 통해 애초에 살펴보고자 하는 내용이 아닌 전혀 다른 내용을 파악해 발견하는 의외의 성과를 얻을 때가 있다. 때문에 자료를 검토할 때 원래 필요로 했던 것만 보지 말고 최대한 꼼꼼히 살펴보는 태도가 필요하다. 이런 의외의 성과가 가능한 이유는 정부에서 자료를 제출할 때 국회가 목적으로 하는 내용에만 신경을 쓰다 보니 미처 다른 문제는 생각하지 못하고 자료가 나오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넷째, 자료요구가 아니라도 찾을 수 있는 건 요구하지 말고 먼저 찾아보자.

자료를 요구하는 보좌관도, 자료를 제출하는 공무원도 모두 일이 많다. 때문에 서로 에너지를 쓸모없이 소모하고, 서로를 괴롭히는 일을 할 필요는 없다. 생각보다 정부가 하는 일을 파악할 수 있는 경로들이 많이 존재한다. 이런 경우 이렇게 파악할 수 있는 내용은 자료요구를 해서 시간을 소모하는 것보다 조금 더 품을 팔아서 자료를 확보하고, 이를 토대로 더 깊이 있는 자료요구를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인터넷을 통해서도 알아볼 수 있는 자료들이 많다. 조달청의 '나라장터'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정부기관들이 구매한 물품들에 관련된 자료가 제공된다. 금융감독원의 '전자공시시스템 DART'에는 상장 기업들의 분기별 보고서, 재무보고서 등이 나와있다. '프리즘'이라는 사이트에는 정부부처가 발주하는 연구용역 보고서들이 부처별로 올라오고, '알리오'라는 시스템에는 공공기관들의 현황과 경영상태 등이 정리되어 있다. 이런 방법들을 통해 알아볼 수 있는 자료는 스스로 찾아서 파악하는 게 좋다. 의외로 많은 사실들을 알아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료요구를 위해 기초적인 근거가 되고, 공무원들에게 괜한 부담을 주지도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 나름대로 터득한 자료요구와 관련된 비법(이라고 하기엔 좀 부끄러운)들을 알아봤다. 그런데 자료요구와 관련해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애초에 정부가 하는 일을 '공개'하면 국회와 공무원들의 업무부담도 줄 뿐더러,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더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정보공개와 같은 제도들이 발전을 해오고 있고, 정부가 공표하는 자료들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이 양과 질에서 증가한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대한민국 정부는 숨기는 것이 너무 많다. 국가기밀과 같은 민감한 정보들은 철저히 보안을 지키더라도, 정부업무와 관련한 자료들은 누가 요구하거나 시비가 일기 전에 그 과정을 상세하게 공개함으로써 정부업무의 효율성과 투명성을 높이고, 부정부패의 여지도 줄여나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한다. 더욱이 정부가 일방적으로 지시하고, 국민은 따르는 시대가 아니라 국민의 지지와 협조가 있어야 정부도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으니 정부가 국민에게 신뢰받는 것은 정부를 위해서도 중요한 일이다. 무엇보다 국민의 돈으로, 국민이 준 권한으로 운영되는 정부라면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 알아서 보고하고, 공개하는 것이 이치에 맞을 것이다. 물론, 공개되어서 안 되는 정보는 철저하게 지키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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