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포아빠 Aug 23. 2019

정치인을 경멸하던 검사 누나를 떠올리며

'검사내전'을 읽고

자칭‘생활형 검사’인 김웅 검사의 책 '검사내전'을 읽었다. 검사생활 중 만난 한국사회와 한국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법과 국가는 무엇인지는 물론 앞으로 다가올 미래도 이야기하는 책. 재미있게 써 내려간 에피소드 속에서도 깊은 법철학적 이야기까지 꺼내어놓는 내공 깊은 책.


이 글의 제목 때문에 내가 이 책을 얼마나 즐겁게 읽었는지가 가려질까 약간 걱정이다. 무엇보다 이 책은 재미있다. 수도 없이 낄낄거리며 책장을 넘겼다. 이렇게 글을 재미있고, 술술 읽히게 잘 쓰는 검사가 있다는 것이 놀랍기까지 했다. 김웅 검사는 타고난 이야기 꾼같다.


나도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글이 쉽고도 깊었다. 우리 사회의 모습, 그리고 법을 통해 바라본 세상, 법조계는 물론 우리나라의 미래에 대한 고민까지 담은 이 책은 모든 사람이 읽어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양한 경험담이 펼쳐지는 책의 초반부터 어쩌면 AI가 재판을 하는 것이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는 무거운 고민을 담은 이야기까지 한 사람의 고민으로 두지 말고 우리가 함께 이야기해보면 좋겠다는 주제들이 들어차 있었다.

어쩌면 사람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무력감을 느꼈을지 모르겠다. 그가 구속하기 전 믹스커피를 타 주었던 사기범들의 이야기를 통해 결국은 법이 해결해줄 수 있는 것은 극히 제한적이며, 범죄의 피해자가 되는 순간 복구할 수 없는 재산과 정신적 피해가 발생하는 것이므로 속지 않고 예방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선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해줄 게 없다’는 무기력하지만 용기 있는 고백에 나는 100% 동의한다. 김 검사는 책에서 갈등과 분쟁이 발생하면 무조건 고소와 고발을 문제 해결 수단으로 삼고, 법정으로 달려가는 세태에 대해 비판한다. 그렇게 법이 모든 문제의 전지전능한 해결수단으로 각광받은 것도 사실 역사적으로 보면 얼마 되지 않은 일이라고 이야기한다. ‘법이 도덕의 최소한’이라는 경구를 굳이 끄집어내지 않더라도, 법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은 사실 우리가 더 잘 알고 있다. 세상에 많은 억울한 일들이 법정에서 이해받기는 커녕 더 많은 눈물과 한을 만들어내기도 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있지 않은가.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는 말도 이런 의미에서 곱씹어 볼 말이다. 이 말은 법의 조문에 저촉되는 일이 없을 뿐이라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상식, 도덕, 양심에는 엄청난 문제가 있더라도 할 수 있는 말인 것이다. 때문에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는 사람은 훌륭한 사람도, 괜찮은 사람도 아니다. 


저자는 도박판을 끊지 못하는 여사님, 인상이 너무 좋아 사기꾼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사기마’ 할머니, 땀 흘려 일한 돈으로 마련한 반지하 신혼방을 허무하게 날린 영민 씨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법이 이들을 어쩌지 못한다는 사실을 고발한다. 범죄자가 잘못에 상응하는 벌을 받는 일도, 피해자가 손해 본 대로 피해를 구제받는 일도 잘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법으로 모든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할 수 없기에 인간은 대화하고, 타협하고, 방법을 모색한다. 나는 그것이 정치라고 생각한다. 기계적으로 적용되는 법이 모두 보듬지 못하는 세상만사, 활자화되어 있는 법조문 밖에 놓여있는 다양한 삶의 모습을 품고, 다루고, 풀어내라고 정치가 있는 것이다. 그렇게 문제를 풀어내는데 최고의 전문가가 되어야 하는 정치인들마저 문제가 생기면 법정으로 달려가는 것은 우리 정치가 가진 최고의 후진성이라고 할만하다.


그래서 저자도 우리가 법을 통해 문제 해결을 추구하기 전에 동네에서 어른들이 재판관과 같이 경륜과 지혜를 통해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해왔던 전통이 있음을 상기시킨다. 나는 저자가 말하는 공동체의 문제 해결 방식이 지금 우리의 정치가 지향하고,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저자의 정치에 대한 평가는 혐오에 가까웠다. 어쩌면 대다수 국민들이 검찰을 불신하는 그 마음을 저자는 정치에 투영한 듯한 모습에는 공감을 하기 어려웠다. 그가 말하는 정치의 현실은 모두 수긍할 수 있는 것이었으나 그건 그냥 욕하고 말 것이 아니라 법이 해결 못하는 문제들을 정치가 풀어낼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숨 쉬듯 자연스럽게 막말을 해대는 정치인”(286쪽)


“표는 지금 받는 것이고, 책임은 나중에 지면 되기 때문이다. 물론 나중에라도 책임을 지는 정치인은 없다”(293쪽)


“우리나라 정치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우리나라 정당들을 보면 16세기부터 18세기경의 유럽 상황을 보는 것 같다. 고풍스럽다는 것이 아니라 이합집산, 결탁, 배신이 잦다는 뜻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정당 이름과 그 뿌리를 찾는 것은 근대 유럽의 국경선을 외우는 것보다 어렵다....아무튼 지역과 진영으로 나라를 산산조각 분열시키는 데는 대단한 능력을 보이고 있다”(343쪽)


“우리나라 정치꾼은 조직폭력배와 유사하다. 혼자 다니는 경우는 거의 없고 늘 떼로 몰려다니는데, 고향이나 출신지에 따라 모이며 주로 검은 차나 승합차를 타고 다닌다. 조직의 이름은 주로 모이는 곳이나 오야지가 사는 동네, 그게 아니면 오야지의 이름이나 별칭을 따서 만든다”(346쪽)


“정치는 세상을 좋게 만드는 데 유용하지 않은 도구이지만, 세상을 아수라장으로 만들기에 그보다 더 효율적인 도구도 없다”(346쪽)


위와 같은 저자의 정치에 대한 감상을 읽으면서 모두 옳은 말이지만, 모두 옳은 태도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검사로서 '당청 꼴찌'라 놀림을 받으면서도 지검장에게도 할 말을 했던 ‘용기 있는 또라이’라는 점에서 정치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밝힌 것은 귀담아 들을 일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낼 일인가. 그가 검찰과 검사(성실하게 일하는 대다수)에 대한 세간의 비난이 괴롭듯, 정치의 영역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런 평가가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나는 저자의 정치에 관한 글을 읽으면서 내가 알고 있는 검사 누나가 생각났다. 대학원 동기로 만난 사람이었는데 처음 입학해서 자기소개를 할 때 내가 국회에서 일한다고 하자 표정이 돌변하고, 태도도 차가워졌다. 아마도 검사로 일하면서 정치인들의 청탁전화 같은 행태에 진절머리가 나서 그런 것이 아닐까 짐작한다. 성실하게 일하는 검사였던 이 누나의 정치와 정치인에 대한 적개심이 대단했다. 내가 그런 것도 아닌데. 


그래서 처음엔 나도 어이가 없어서 “검찰개혁은 언제 하나요?”같은 질문을 비아냥거리듯 던지면서 속을 긁었다. 사람은 저마다 다른 것이지 어디에서 일하고, 소속되어 있냐고 한통속으로 평가받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나중에 이 검사 누나도 나에 대해서는 경계심을 풀고 편한 사이가 됐지만 처음에 받았던 그 이상한 태도에 대해서는 여전히 이해가 안 간다. 나는 검찰이 문제가 많다고 그 안에 일하는 사람들을 도매급으로 생각하지 않으니까.


다시 책으로 돌아와서,

저자는 법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다고 하면서도 법이 아닌 인간 상호 간의 교류 능력, 즉 대화와 협력을 통한 문제 해결 방식인 정치에 대해서도 전혀 희망을 찾을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결국 정치가 이 모양이라서 사람들은 더욱 법정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해결책이 무엇인가. 정치에 침을 뱉으면 그만인가. 정치를 없애야 하나. 아니 그런다고 정치가 없어지나. 


김웅 검사는 폐인이던 대학생 시절을 이야기하며, 누구도 거들떠보거나 가까이하려고 하지 않았던 노숙자 ‘길동도사’가 자신을 세상으로 끄집어 내주어 구원했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더러운 몰골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거친 말을 내뱉고, 뭐 하나 봐줄 게 없는데도 당당한 이 실패자가 자신에게는 인생의 빛을 던져주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게 모두가 피했던 사람을 저자만은 친구가 되었기에 그의 인생도 변화했던 것이다. 그는 이렇게 그 에피소드를 마무리한다.


“비록 더럽고 시끄러웠지만, 길동도사는 교양인이었다. 탁발승처럼 구걸을 할지언정 남의 물건을 탐할 사람은 아니었다. 혜안을 가졌고 지식을 존중했으며 우주와 여인의 신비에 감동할 줄 알았다. 무쇠 솥이 검다고 밥까지 검은 것 아니다. 그러니 사람에 대해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 어느 구름에 비 들었는지 아무도 모른다.”(275쪽)


김 검사가 이 글을 정치에 대입해 보면 어떨까. 그게 이 책에 대한 나의 단 한 가지 아쉬움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미국 관공서는 복불복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