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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포아빠 Sep 07. 2022

부끄러운 과거를 직시하는 힘

미국 겉핥기_열 다섯번째

찰스턴(Charleston)은 사우스 캐롤라이나주의 예쁘고 따뜻한 고풍스런 도시다. 미국에 머물 당시 살았던 메릴랜드 주에서는 남쪽을 향해 10시간도 넘게 차를 몰아야 닿을 수 있는 곳이다. 그 거리가 알려주듯 추운 겨울 따뜻한 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인기있는 관광지이기도 하다. 우리 가족도 동네 할아버지의 추천을 받아 추위를 피할 요량으로 장거리 여행을 결심하고 찰스턴을 가볼 수 있었다. 그렇게 도착한 찰스턴이 살던 곳과 다름없이 추워서 낭패였지만^^


지금 찰스턴은 '관광'으로 인기가 높지만, 그보다 더 찰스턴을 잘 설명해주는 단어는 '역사'다. 1861년 남부연합군이 연방정부군(북군)을 향한 포격을 함으로써 남북전쟁이 발발한 포트 섬터(Fort Sumter)가 대표적이다. 이곳에 가보고 싶었는데, 배를 타고 가야하는 곳이기에 아기를 안고 가기에는 너무 추워서 가지못한 게 아쉽다.


이 뿐 아니라, 사우스 캐롤라이나라는 지명이 알려주듯 남부의 플랜테이션 농업이 관광코스로 남아있는 등 남부특유의 문화와 분위기가 짙게 남겨져 있다. 미국 남부의 교역과 문화 중심지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도시가 바로 찰스턴이다. 그래서 가는 곳마다 오래되고 예쁜 건물들이 늘어서있고, 깨끗하고 아름답다는 느낌을 저절로 받게된다. 미국 남부는 무엇보다 인종차별이 심했고, 백인위주의 문화가 형성되어 있던 곳이다. 우리가 찰스턴을 방문하기 얼마전 인종차별주의자가 그곳의 흑인교회에 총기를 난사에 여럿이 다치고 사망한 사건(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추모식에 참석해 청중들과 '어메이징 그레이스' 합창해 깊은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https://youtu.be/IN05jVNBs64)이 있었는데, 이 사건 이후 인종차별의 상징으로 퇴출된 남부연합기를 여행중 곳곳에서 볼 수 있어서 긴장했던 기억도 난다.


찰스턴은 항구도시 답게 미국 남부 지역 교역의 중심지였다. 교역에서 다루어졌던 것은 물건 뿐 아니라 사람도 있었다. 바로 노예무역이다. 아프리카에서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며 물건처럼 실려 온 노예들이 찰스턴 항구에서 내려 마트에서 물건을 팔듯이 진열(?)되어 사고 팔렸던 것이다. 그렇게 찰스턴은 사람을 사고파는 노예무역의 중심지에서 그 노예제를 폐지시킨 남북전쟁이 시작된 역사의 도시다.



찰스턴에서 노예들이 사고 팔렸던 노예시장은 현재 건물의 원형이 보존되어 노예시장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MART'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는 것을 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사람을 사고파는 마트라니. 노예를 사고 팔았던 건물이 지금은 어떻게 노예무역과 매매가 이루어졌는지를 설명하고 그것이 얼마나 끔찍하고 잘못된 일인지를 가르쳐주는 장소가 되어 있었다.


미국은 어딜가나 사진을 찍는데 제한이 없는 편인데, 이 박물관은 내부 촬영이 금지되어 있었다. 이런 역사를 구경거리로 전락시키지 않고, 엄숙하게 관람을 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박물관에는 노예무역의 실상이 어땠고, 어떤 경로를 통해 미국으로 노예들이 실려와 거래되고, 이 과정에서 찰스턴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설명되어 있었다.


전시물과 설명을 보면서 인상적이었던 것이 두 가지가 있었다. 첫번째는 노예를 실어 날랐던 배의 내부 구조다. 노예들이 머문 선실은 층층이 쌓인 여러 개의 선반에 노예들이 누우면 전혀 움직일 수 없게 낮은 높이와 공간으로 설계되어 있었다. 누운채로 옴짝달싹 못하고 바다를 건너왔던 것이다. 누웠는데 바로 눈앞에 선반이 있고 몸을 전혀 움직일 수 없는 상태에서 수 개월 동안 배를 탄다는 것은 내가 직접 당한일이 아님에도 공포심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온 몸에 소름이 돋는다.


두번째로 인상깊었던 것은 노예를 팔기위해 농장주들에게 노예의 장점을 설명하는 상품설명서(?) 혹은 광고전단지(?) 같은 포스터 였다. 말을 잘 들어 다루기 쉽고, 힘이 쎄고, 싼값에 많은 일을 시킬 수 있다는 등등의 내용이 들어있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야만적인 일인데, 사람을 물건처럼 쌓아서 싣고와 팔았던 일이 실제로 일어난 현장에서 설명을 보니 그곳에 경매물로 세워진 노예들, 노예들을 사려고 흥정하고 이리저리 살펴보는 농장주들, 팔려서 끌려가는 사람들과 상품성(?)이 없어 팔리지 못한 물건(?)들을 때리는 무역상들의 모습이 보이고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노예시장 박물관 초입에 적혀있는 이 박물관의 목적은 "많은 사람들이 노예무역과 찰스턴의 역할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다. 이 참담하고 부끄러운 역사를 널리널리 알리고, 이해시키고, 잊지 않도록 공부시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숨기고 싶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과거일 수 있는데 오히려 그 현장을 보존하고, 기록하고, 알리고, 계속해서 전달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미국사람 아닌 나도 그 역사를 보면 가슴이 답답해지고, 화가나고, 소름이 돋는데 노예를 사고파는 중심지였던 그 동네의 후손들과 미국 각지에서 온 미국인들이 이 역사를 보면 어떤 생각을 할까. 물론 이 박물관이 의도하는대로 역사를 직시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마음에 새기는 사람도 있겠지만 겉으로는 표현을 못해도 불편하고 마음에 안드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두운 역사의 현장을 허물지 않고, 최대한 친절하고 상세하게 기록을 남겨 설명하며, 많은 사람들이 와서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미국 이란 사회가 용기 있는 사회이고 다시는 잘못된 과거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의지를 가진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수 있는 원동력과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는 스스로 이 부끄러운 역사를 극복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62만명이 죽는 끔찍한 전쟁으로 미국 전역이 피로 물든 대가를 치루어서라도(전쟁없이 이루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노예해방을 쟁취했다는 자부심과 긍지가 부끄러운 역사를 만천하게 공개하고 후세에 전달하는 근거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것. 그것이 그 문제를 다시는 반복하지 않도록 하고, 부끄러울지언정 숨기지 않으며, 더 좋은 사회를 위해 사람들의 마음을 모을 수 있는 가능성을 높여주는 것 아닐까. 어떻게든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면 어떤 과거이든 당당하고도, 담담하게 회고할 수 있을것이다. 미국이 노예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면, 이 박물관 뿐 아니라 찰스턴이 지금도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도시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노예무역으로 살았던 찰스턴은 노예해방으로 지금도 살아있을 수 있는것이다.


미국이 수도 한복판에 흑인역사 박물관을 세워 흑인과 백인은 같이 밥을 먹지도, 화장실을 쓰지도 못하게했던 짐 크로우법(Jim Crow Law)이 존재했던 시절을 전시할 수 있는 것도 많은 이들의 희생과 헌신속에 스스로 제도와 법과 문화를 고쳐가며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왔다는 스스로에 대한 격려가 아닐까. 자기의 일을 스스로 하는 것, 어렵고 힘들고 때로는 손해를 봐야 하더라도 요행이나 남의 힘이 아니라 스스로의 힘과 의지로 현실의 부조리에 맞서는 용기가 먼 훗날 그것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할 수 있는 디딤돌이 된 다는 것을 찰스턴의 노예시장 박물관은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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