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 도마치 계곡 백패킹
작년에 7,8월 서울 근교에 있는 산으로 백패킹으로 몇 번 다녀온 뒤로는 한여름에는 산으로 백패킹을 가는 것은 엄청난 인내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박지까지 올라갈 때 속옷이 젖을 정도로 땀이 났고, 땀냄새가 나는 몸 주위를 마치 잘 만난 먹잇감처럼 맴도는 벌레와 모기떼를 손으로 휘저으며 사투를 벌이게 된 뒤에는 '편안한 집 놔두고 내가 여기서 도대체 뭐 하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을 저절로 하게 되었다.
박지에 도착해서 땀에 젖은 옷을 갈아입기도 했지만 한여름 숲에서 내뿜는 습기와 열대야로 잠은 한숨도 못 자고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일도 더러 있었다.
그런 경험을 여름에 두세 번 하고 난 뒤로는 차라리 한겨울 추위가 더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백패킹의 꽃은 동계 백패킹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게 아니었다. 동계 벌레도 없고 땀도 안 나고 상쾌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한여름에는 백패킹을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다. 더군다나 올해는 사상 최악의 폭염과
하루가 멀다 하고 열대야 최장 기록을 갈아치우는 마당에 도저히 밖에서 잘 엄두가 나지 않았다.
계곡 백패킹의 시작
‘여름엔 계곡 백패킹이 진리라던데?
‘여름엔 어디 가나 덥지 않나?
‘계곡은 엄청 시원하데 저녁에 추울 수도 있고’
도시 생활에 익숙해져 있으면 숲이나 계곡의 날씨를 가늠하기가 어렵다.
'진짠가?..'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오랜만에 여름 백패킹에 나서게 되었다. 목적지는 경기도권에서 가까우면서도 오지 계곡 백패킹 분위기가 풍기는 도마치 계곡이었다.
도마치 계곡 캠핑장 근처에 차를 세우고 계곡 위쪽으로 향했다. 시작부터 난관이었다. 초입에서 계곡 물살을 가르고 지나야 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예상보다 불어난 물 때문에 반바지를 한껏 올려도 흐르는 물살에 바지가 젖을 수밖에 없었다. 비록 바지는 점점 축축해졌지만 차가운 물에 다리를 담그고 움직이니 확실히 더위는 가시는 느낌이었다.
초반 위기를 넘기고 임도길을 통해 한 시간 정도 걸었을 때 멀리서 몇 개의 불 소리와 사람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사람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조금 더 걸었더니 무너진 다리와 계곡 물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워낙 늦게 출발한 터라 해가지고 도착해서 위치 분간이 잘되지 않았지만 바로 앞에 큰 용소가 있어서 계곡 바로 옆 바위와 근처 공터에 자리를 잡기로 했다.
계곡에 도착해서 텐트를 설치한 뒤에 입고 있던 옷을 벗어던지고 계곡물에 뛰어들었다. 살얼음 같은 계곡물이 몸에 닿는 순간 피곤함이 사르르 녹는다. 산으로 백패킹을 가게 되면 땀과 뒤범벅된 습기 때문에 잠을 이루기 힘들 때가 있지만 오늘은 꿀잠을 잘 수 있을 것 같다.
깊은 살 골짜기 사이에 위치를 잡았더니 아침에 해 뜨는 시간도 꽤나 늦어진다. 덕분에 해가 들기 전까지 여유 있게 잠을 잘 수 있었다.
어젯밤 수영에 이은 모닝 수영으로 샤워까지 한꺼번에 해결
해가 계곡 사이까지 얼굴을 내밀 때쯤 슬슬 떠날 준비를 한다. 오늘도 어김없이 텐트에 걸어두었던 랜트 털 때 알아 차림.
하룻밤 전용 수영장이 되어준 용소. 물이 정말 맑고 깨끗해서 물 밖에서도 물고기가 돌아다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비가 많이 온 뒤에는 우리가 텐트를 피칭했던 자리까지 물이 찰 것 같았다. 계곡 옆에서 놀다가 불어난 물에 휩쓸려 119에 구조되는 모습을 뉴스에서 많이 봐 왔기 때문에 약간 걱정을 하긴 했지만 다행히 저녁내 비가 오진 않아서 무사히 하룻밤 계곡 캠핑을 마무리했다.
우리 일행이 원점을 복귀하는 동안에도 많은 백패커들이 도마치 계곡을 향해서 올라가고 있었다.
마치 한여름의 유일한 오아시스를 찾아 떠나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면 이번 백패킹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