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가장 아름 다운 일출을 만나다
나에게도 한때는 산이라면 치를 떨던 시절이 있었다. 강원도 인제 어딘가의 산속에서 2년 2개월의 군 시절을 보냈고 GOP를 담당하는 부대였기 때문에 2년여의 시간 중 1년 정도는 매일 산 1~2개는 오르내려야 했다.
그 이후로 등산 얘기가 나올 때는 여느 군필자처럼 강원도 쪽으로는 오줌도 안 싸겠다느니 어차피 내려올 산을 왜 올라가느냐니 하는 등의 농담을 심심치 않게 했었다. 제대 후 10여 년 동안은 산에 갈 일도 없었고 산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 적도 한 번도 없었다. 생각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제주도로 이사를 간 이후였다. 극단적으로 얘기해서 제주도에서는 여가시간에 할 수 있는 게 두 가지밖에 없었다.
산 아니면 바다.
시간이 있을 때마다 오름이나 한라산에 한두 번씩 다니다 보니 점점 산의 매력에 빠지게 됐다. 지금 생각해보면 제주의 오름과 산이 모두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 제주도 생활을 끝내고 다시 육지로 올라왔고 나는 여행 욕심을 북돋아 주었던 제주도에서의 경치를 찾아 헤매게 되었다.
강릉 괘방산이 그렇게 알게 된 장소 중 하나였다. 활공 정 데크 위에서 바라보는 탁 트인 바다와 그것을 뚫고 올라오는 새빨간 태양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꼭 가야 할 장소였다. 십수 년 전에는 정말 정말 싫어하던 그곳을 이제는 내발로 걸어간다는 것이 신기하고도 재밌다.
해성 횟집
본격적인 트레킹을 시작하기 전에 강릉에서 가보고 싶었던 맛집에 들렸다. 외관만 봐도 맛집의 포스가 느껴진다. 맛집으로 유명해져 으리으리한 건물 짓고 장사하는 곳보다는 이런 외관이 정감 있고 좋다.
주 메뉴인 삼숙이 탕을 주문했다. 삼숙이라도 불리는 생선으로 끓여낸 탕인데 얼큰하면서도 시원한 맛이 일품이다. 반찬이 많지는 않지만 엄마의 손맛을 느낄 수 있는 정성 들인 반찬 맛도 좋았다. 한 끼를 때우고 바쁘게 움직여 일해야 했던 옛 습관이 남아 있어서 일까. 쟁반 위에 통째로 차려지는 밥상이 흥미롭다.
맛집 탐방을 마친 뒤 본격적인 백패킹을 출발하기 위해 들머리인 강릉 임해 자연 휴양림 주차장에 도착했다. 괘방산의 들머리는 보통 안인해변 주차장에서 시작하지만 나는 조금 더 빠르게 오르기 위해서 강릉 임해 자연휴양림을 들머리로 택했다. 조금 더 시간 여유가 있다면 등명낙가사나 안인해변을 들머리로 해도 괜찮다.
휴양림에서부터 시작하는 길은 임도길로 되어 있어 오르기가 편하다. 20여분 정도 임도길을 따라 올랐더니 등으로 땀이 흐르기 시작한다.햇살이 비추는 곳은 아직도 한 여름 태양 못지 않게 뜨겁다.
임도길을 따라 20 여분 정도 올랐더니 멀리 동해 바다가 보이기 시작한다.가까에서 보면 집채만한 파도가 몰아 치겠지만 이렇게 멀리서 바라보니 동해 바다도 잔잔하게만 느껴진다.
30여분을 쉬지 않고 올랐더니 반가운 펫말하나가 나온다.중간 갈림길에서 부터 출발지인 강릉 임해자연휴양림까지의 거리가 800미터다. 800미터 오르는데 왜 이렇게 오래걸렸을까 나는.
이 갈림길에서 활공장 데크로 가려면 안인해변 쪽으로 10분정도만 더 올라가면 되지만 아직 해가 많이 남아 있어서 삼우봉쪽으로 트레킹을 좀더 해보기로 한다.
삼우봉으로 향하는 길 중간에는 도조각이 쌓여 있다.전쟁과 침략에 대비해서 쌓여진 성터라고 하는데 지금은 많이 훼손되어 돌조각으로 쌓여진 터만 남아 있다.
강릉 괘방산은 해파랑길 36구간 , 강릉 바우길 8구간이 겹치는 구간이다.BPL에 조금 더 신경쓰게 되면 트레킹코스 위주로 많이 다닐 수 있을 텐데. 저질 체력이 항상 아쉽다.
삼우봉으로 향하던 발길을 돌려 다시 갈림길로 돌아 왔다.괘방산이 워낙 유명한 백패킹 성지중 한 곳이다 보니 문득 빨리 가지 않으면 자리가 없을 수 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급해졌다.
갈림길에서 돌길을 따라 조금만 더 오르면 활공장에 도착하게 된다.
괘방상 활공장에서 바라본 동해 바다는 너무나도 잔잔하고 평화로웠다.하늘과 바다가 맞닿아서 지평선끝으로 사라지는 풍경을 한참을 바라본다.
다행히도 앞쪽 데크에 남는 자리가 있어서 텐트를 피칭했다.괘방산 데크는 7성급 호텔 부럽지 않은 오션뷰를 자랑한다. 바다 쪽으로는 안인해변과 통일공원 뒤로 탁 트임 바다가 보이고, 뒤편으로는 강릉시내를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이너텐트와 의자를 빼놓고 책을 좀 읽어 보려고 하는데 도저히 책이 눈에 들어 온지 않는다.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앞에선 오히려 집중이 되지 않는다.
괘방산 활공장 서쪽데크는 에서는 임해자연휴양림과 강근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평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출을 볼 수 있는 동쪽데크는 이미 만석이다.블랙야크에서 아웃도어 촬영을 왔는지 텐트피칭도 제대로 못하고 뒤쪽에서 서성거리면서 촬영에 방해되지 않게 기다려주었다. 다음날 아침에 촬영때문에 쉬는데 방해해서 미안하다며 연락처를 주면 선물을 보내준다고 했지만 지금까지 연락은 없었다.
텐트 불빛 위로 별이 쏟아진다. 이렇게 아름다운 밤 하늘을 혼자서 봐야 한다는게 아쉽다.혼자 와서 밥을 먹고 있는 모습이 안타까웠는지 2층 데크에 있는 분들이 같이 먹자며 초대를 하신다.어디서 왔는지,왜 혼자서 왔는지,백패킹하기 좋은 곳은 어디 인지 일너저린 이야기들을 하다보니 금새 친해진 것 같다.오늘이 지나고 헤어지면 어디선가 다시 만날 수 있을까?인스타 그램도 하지 않는 분들이니 다시 만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일출
깊은 어둠을 뚫고 해가 떠오른다. 온 세상이 황금빛으로 불 드는 짧은 시간이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내 평생 본 일출 중 가장 아름다웠고 찬란했다. 해뜨기 전 눈떠서 일출을 기다리는 시간 그리고 해가 떠오르고 한참 뒤에도 그곳에 서서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았다.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오늘 그리고 이 순간을.
자리를 정리하고 마지막으로 한번 더 이곳을 기억에 담아본다.강원도까지 와서 이대로 돌아가긴 아쉽다.첫 2연박에 도전해 볼까?
LNT : Leave No Tr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