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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가본드 Nov 19. 2022

감상후기 - 아끼는 마음 (박화진 글, 서하영 사진)

(읽으면서 듣는 음악) Aeris' Theme (Violin & Piano Cover Duet) Taylor Davis & Lara de Wit

영상 속 바이올린 연주자(Taylor Davis)의 유튜브에서 가져옴,  배가본드 일부 편집

박화진 작가. 브런치명 폴폴. 사람들은 그를 시인이라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른 생각을 가져 본다. 그에게 문인으로서의 길을 가장 먼저 열어 준 것은 시였지만, 에세이가 먼저였다면 박화진 에세이스트, 평론이 먼저였다면 박화진 평론가였을 것이다. 시문학 부문에서 수상을 한 적이 있다는 등의 이유로 그를 시인이라 한다면 어쩌면 그가 가진 것들(그리고 앞으로 그가 보여줄 것들)을 그 작은 말에 다 담아내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에게 어떤 수식어를 붙이기 조심스럽다. 내겐 박화진은 그냥 박화진이고, 폴폴은 그냥 폴폴이다.


박화진 작가의 '아끼는 마음'은 시집일까, 에세이집일까? 중요하지 않다. 장르 같은 건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런 건 책을 판매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여러 가지 필요에 따라 생겨난 것일 뿐이고, 나는 그저 단순하게 작가가 독자를 이리저리 끌고 가는 대로 글을 따라가며 느낄 뿐이다.


작가가 사랑한 한 문장

여러 음식에서, 여러 영화에서, 여러 장소에서, 여러 에피소드에서 아끼는 마음이 저마다의 모양을 드러낸다. 르네상스 시대 조각 예술로 잘 알려진 미켈란젤로가 떠오른다. 미켈란젤로는 다비드상과 피에타를 창조했을까? 아니. 그 자신도 제자들에게 말했듯 그는 아무것도 창조하지 않았다. 다비드상과 피에타는 이미 대리석 안에 있었고 단지 그는 대리석 안에 갇혀 있는 다비드, 예수 그리스도, 성모 마리아를 꺼내려고 불필요한 부분들을 쪼아서 떼어냈을 뿐이다.

(좌) 다비드상  (우) 피에타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박화진 작가의 작품들도 그렇게 탄생한다. 작가는 수원 화성에 다녀왔다고 수원 화성에 대해 쓰지 않고, 중경삼림을 감상했다고 중경삼림에 대해 쓰지 않고, 가면무도회를 보고 왔다고 가면무도회에 대해 쓰지 않는다. 그것들은 단지 그에게 끌과 정을 들려주고 영혼 속에 잠자는 무엇을 끄집어낼지 그 생각을 주는 역할만 할 뿐이다. 그리고 작가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꺼내기 위해 필요 없는 부분을 걷어내고 하나만을 남겨 둔다.


작가는 사색이 될 정도로 힘든 산행의 내리막길을 경험하고는 누군가를 업고 가는 연습을 위해 기꺼이 다시 가서 산을 업으려는 깜찍한 마음 하나를 남기고 모든 것을 깎아낸다.


작가는 낙산사의 고요함 속에서 누군가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게 자신의 유일한 소원이라는 청아한 마음 하나를 남기고 모든 것을 깎아낸다.


작가는 설명하기 어려운 그만의 이유로 사소하지 않았던 빵 쪼가리 하나를 구하려고 이틀 밤을 추위에 떨며 하나를 구하고는 꿈에서 그 빵이 가득 든 트럭을 몰며 1종 면허를 가진 게 다행이라 생각하는 사랑스러운 마음 하나를 남겨 두고 모든 것을 깎아낸다.


그것들이 하나하나 모이고

아끼는 마음이 된다.


나는 문장 수집을 좋아한다. 글을 읽다가 특히 마음을 울리는 문장이 있으면 자필로 문장 수집 노트에 옮겨 놓는다. 그런데 박화진 작가의 '아끼는 마음'은 그걸 할 수가 없었다. 문장을 수집한다는 건 뭔가를 고르고 뭔가를 빼야 하는 건데, 뭐를 빼야 하는 걸까. 문장 수집이 아니라 이건 아예 통째로 필사를 할 판이다. 이미 아끼는 마음만 남아 있는데 이 중에서 또 무엇을 뺀단 말인가.

무수히 많은 아끼는 마음들이 각각의 에피소드에서 저마다의 모습으로 변주되어 떠오르며 군데군데에서 재미있는 사실도 함께 발견된다. 작가와 같이 빙수를 먹을 때는 흔히들 그러듯 하나를 시켜서 같이 먹어선 안된다는 것, 작가와 마주 앉아 서로 얼굴을 쳐다보는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게 좋다는 것, 되도록이면 가족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 게 좋다는 것 등도 의도치 않게 알게 되지만, 작가는 그 아픔마저도 아끼는 마음으로 승화시킨다. 그걸 어떻게 하는지도 놓쳐서는 안 되는 지점이다.




박화진 작가라고 누군가를 미워하고 원망해 본 적이 없었을까. 그도 우리와 비슷한 것을 보며 일상을 살아 가지만, 보통의 다른 사람들과 차이가 있다. 그는 일상 속의 사소한 뭔가에 착안하고는 아끼는 마음을 빼고 모든 것을 깎아 낸다. 그러면서 사람의 마음속에 갇혀 있는 그것을 구해낸다. 작가가 이 책으로 누군가를 지도할 의도가 있었던 걸로는 전혀 보이지 않지만, 내가 가장 주목하고 싶은 곳은 여기다.


이 세상 어느 하나 소중하거나 귀하지 않은 것이 없다. 본디 예쁜 마음 위에 뭉개져 붙은 것들이 우리로 하여금 세상의 소중하고 귀한 것들을 발견하기 어렵게 만들 뿐 모든 것들은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있고 각각의 쓰임새와 의미로 세상을 빛낸다. 우리가 지금 어떤 모습이든 우리 안에는 우리 자신도 모르는 아름다움이 잠들어 있다. 창조주는 모든 인간의 마음속에 시를 숨겨놓았고 그 마음을 어떻게 깎아 내어 어떤 모습으로 보여줄지는 우리 각자의 몫이다. 아끼는 마음은 그렇게 만들어지고, 인간의 마음속에 잠들어 있는 천사는 그렇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우리 영혼 속에 잠든 아름다움을 깨워 보자.

우리 자신을 아름다운 작품으로 만들어 가자.

온 세상이 아끼는 마음으로 가득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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