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째 초장부터 안 좋았다. 카톡이란 게 처음 나오자마자 당시 직장에서 40명 넘는 부서원 전체 단체 카톡방을 만들었다. 며칠 후 단체로 운동복을 맞췄는데 하의가 신청한 것보다 다들 작아서 단톡방에 "바지통이 왜 이렇게 다 작아요?" 한다는 게 첫 글자의 ㅂ을 ㅈ으로 형편없이 오타 내곤 충격받고 폰을 끄고 잠적한 일이 있고, 안드로이드 폰을 아이폰으로 바꾸던 날에는 옆자리 여성 동료에게 폰 교체 기념으로 "하이여~" 한다는 게 "하니야~"를 날려 버리는 등 이놈의 카톡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괴상한 기억만 가득이다.
이번에 카카오에 큰 문제가 있었나 보다. 카톡이 고요해진 사이 내 단톡방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몇 달째 대화가 올라오지 않는 단톡방, 일회용으로 만들어지고 그게 다였던 방들을 정리하니 하나의 단톡방이 남는다.
직급이 가장 높은 사람이 업무 외 시간(야간, 휴무일)에 뭔가 지시를 할 때는 이 방으로 전달된다. 그런데 일단 방이 만들어지니 전혀 급하지 않은 것들도 당장 공유하지 않으면 숨이라도 넘어갈 것처럼 되어 버린다. 그가 하는 모든 말은 즉시 처리해야 하는 긴급한 일이 되고 안 긴급한 일은 하나도 없어졌다. 월요일 나와서 해도 되는 일인데도 주말 내내 톡방은 쉼 없이 울려 댄다. 이걸 누가 보긴 할까 싶은 인터넷 기사 하나만 떠도 무슨 '로동 1호'가 서울 한복판에 떨어진 듯 발칵 뒤집히고는 일요일 중으로 검토해서 월요일 출근 즉시 대책을 보고하라 한다. 누가 당첨될지 모르니 주말에는 전원이 계속 단톡방 상황을 주시하고 있어야만 한다.
그가 말한 이 방의 목적은 하나 더 있다. 허물없는 소통. 그러나 실제로는 한 명을 제외하면 누구도 먼저 말을 하지 않는다. 주말이면 그의 테니스 서브 넣는 사진이나 골프 스윙을 하는 사진이 뜬다. 까또! 휴대폰은 외마디 비명을 지른다. 모두들 긴장. 사진 옆의 작은 숫자는 빠르게 줄어든다. 그냥 읽는 것만으로 끝나면 안 되고, 앞다퉈서 놀라움과 환호의 리액션을 저마다의 언어로 올려야 한다. 이 와중에도 월요일은 시시각각 다가오고, 일요일 저녁이 되면 월요일 아침이 오는 게 싫어서 세상 닭이란 닭은 모조리 잡아다가 목을 빽 비틀어 버리고 싶지만 결국 월요일 아침은 오고, 이제는 단톡방으로 상쾌한 아침을 강요당한다.
그런데 이 방이 기습적으로 꽥 뒈져버리니 삶의 질이 달라졌다. 카톡이 장시간 복구되지 않길 내심 바라는 마음, 한편으론 이러다 브런치가 멸망하는 거 아냐? 하는 약간의 걱정. 두 상반된 감정이 묘하게 교차했다. 하지만 걱정은 이내 '설마’가 되고, 사색으로 여유롭게 글감 모으고, 먼산 보다 졸고. 전체적으로는 평온함이었다.
그 방에 있는 수십 명 중 카톡으로 행복해진 이는 1명 아니었을까? 카톡으로 인한 1명의 행복 증가분, 그리고 그 1명의 증가분을 위해 희생한 n-1명의 허공에 사라진 행복 감소분의 총합. 어느 쪽이 더 클까? 나는 오른쪽일 것 같지만, 그 1명은 실제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요즘은 말이야, 이렇게 밴드니 카톡이니 하는 것들이 있어서 언제든 전달 가능하고... 편리하고 신속하고, 다들 얼마나 좋아? 옛날에는 이런 거 상상도 못 했잖아, 나 때는 말이야..."
신속함은 분명 좋은 것이다. 언제는 걸어 다니면서 통화하는 것만으로도 혁명이라 하더니, 이젠 휴대폰 화면 터치 몇 번으로 예약이나 주문이 끝나고, 지구 반대편 사람과 실시간으로 얘기를 나눈다. 대단한 일이다.
그런데, 그게 거저 얻어지는 것 같지 않다. 신속함은 늘 누군가의 희생을 깔고 있다. 택배의 주말 배송이나 새벽 배송도 누군가는 클릭 몇 번으로 끝이지만 누군가는 모두 잠든 시간에 이리 뛰고 저리 뛰어야 한다. 모두가 행복해지는 신속함도 있는지는 모르지만 아직까지는 본 적이 없다. '기술은 인간을 행복하게 한다'라는 말이 선뜻 옳다고 말할 자신이 없다.
그럼 나는 카톡의 수혜자일까, 피해자일까? 카톡이 멈췄던 이번 이틀 동안 느꼈다. 나는 확실히 수혜자보다는 피해자에 더 가까운 사람이다. 카톡으로 행복했던 순간은 기억에 없다. 카톡이 없었으면 당연하지 않았을 신속함이 카톡 때문에 당연한 것이 되어 괴로웠거나, 받기 싫은 톡을 받고는 읽을지 말지 고민했거나, 내키지 않은 상황에 억지로 긍정적 반응을 보여야만 했던 일 등, 어느 수준의 신속이 당연한 상황에서 그만큼 신속할 수 없어서 힘들었던 기억, 상대방 기준에서 당연한 것을 주지 못해 힘들었던 기억들이 전부다.
내가 그렇다고 다들 나와 같을 거라곤 보지 않는다. 뭔가 중요한 일에 큰 차질을 겪으셨을 분, 카톡이 없어지니 삶에서 아무것도 남지 않아 정신적으로 힘들었을 분, 심지어 금전적인 손해를 본 분도 많았을 텐데. 그렇게 저마다의 입장이 있을 텐데 카톡 죽어서 좋다고 대놓고 촐랑거릴 수가 없었다. 바로 내 옆자리에서 일하는 사람도 그 사태로 편안했는지 괴로웠는지 그가 먼저 말하기 전에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하나는 선명해 보인다. 이젠 그저 당연한 게 되어 버린 그 신속함, 그걸 위해서 지금 가장 크게 희생하고 있는 건 누굴까. 카카오의 관계자들 아닐까. 그렇잖아도 정보시스템 유지보수는 일과 삶의 균형이 있기 힘든데, 시스템 복구라는 그 대작업을 하면서 그걸 무슨 컴퓨터 재부팅하는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이 태반인 상황에서 욕이란 욕은 다 먹고 그걸로도 모자라서 성미 급한 윗분들까지 책임 소재 파악해라, 원인 보고해라, 대책 보고해라, 언론 보도자료 작성해라, 오또회(=오노 또 회의)... 이러고 있을 걸로 짐작되는 상황에서, 왜 빨리빨리 복구 안 하고 꾸물거리냐는 속 모르는 질책까지. 여러 가지 이유로 정작 해야 할 일에는 전념하기 어려울 그분들의 마음은 어떨까. 나중에 사태가 진정된 후에도 내부적으로는 우리가 모르는 또다른 일이 기다리고 있을 텐데.
괴로운 상황에서 애써 주시는 분들의 노고에 감사하고, 너무 많이 힘들지 않으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