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잘못됐다. 눈을 뜨자마자 직감했다. 이게 그거구나. 역시나 양성을 알리는 선명한 두 줄.
첫째 주. 일주일 내내 목에 커터 칼날을 한 20개 박아 넣은 듯한 느낌이었다. 음식물은커녕 물조차 삼킬 수가 없었다. 목에 공기만 들어와도 칼로 헤집는 것 같아서 숨도 쉬기 어렵고, 말은 전혀 할 수 없었다. 군대에서는 마취를 안 하고 발뒤꿈치를 꿰맸던 적도 있었지만 이 정도의 고통까진 아니었다. 휴지를 물고 있다가 젖으면 바꾸기를 온종일. 이렇게 하루가, 이틀이, 일주일이 갔다.
둘째 주. 뭔가 삼키기 전에 비장한 각오(?)를 하면 간신히 삼킬 수는 있게 되었다. 말랑한 복숭아를 조금씩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일주일 내내 뭘 먹기만 하면 온몸에 두드러기가 돋아 올랐다. 처음에는 식중독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고 코로나 후유증으로 면역체계가 망가졌다고 한다.
셋째 주. 밖에 나갔다가 벌에 발목을 쏘였다. 약해진 면역력 때문인지 무릎 아래가 온통 괴사한 듯 시커멓게 죽고 감각도 없다. 퉁퉁 부어 신발도 못 신는다. 응급실에서 해독 주사를 맞고 3일 만에 걸을 수 있었다. 그나마 발목인 게 다행이었을까. 만약 목이나 얼굴이었다면?
이게 8월 22일부터 추석 연휴까지 3주간의 일이다. 가벼운 감기 정도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내가 막상 겪어 보니 이건 절대로 걸려서는 안 되는 거였다. 평생 아파야 할 만큼을 한꺼번에 다 아파 버렸다. 뭘 해도 나아지지 않아서 의료기관 상담 센터에 문의해서 약을 바꿔 봐도 차도가 없고, 암만 많이 자도 여전하고, 브런치 글이라도 읽으면서 고통을 잊으려 했는데 현기증 때문에 글씨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하나, 이불속에서 괴로워하는 것뿐이었다.
그런 아픔이 있었다. 아픔의 누적이 얼마 이상 되기 전엔 뭘 해도 소용없는 아픔이 있었다. 안 아프려면 아파야 했다. 더는 안 아플 때까지 아파야만 했다.
그걸 몰랐다. 무서워서 외면했다. 아프기 싫어서 괜찮은 척했다. 괜찮지 않은데 괜찮다고 나까지 속였다. 그게 쿨하다고 생각했다. 그게 용기라고 생각했다.
바다의 깊이를 재러 들어갔다가 몸이 녹아내린 소금인형처럼, 나는 오늘 내 마음의 깊이를 재러 들어가고 있다. 그 순간 모든 것을 멈추고 응당 돌보지 못했던 감정들, 비를 맞으면 톡톡이 사탕처럼 깨어나는 그 감정들을 마주하려고.
몇 번의 아픔 속에서 나는 그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사는 법만 배웠을 뿐, 안 아프려면 아파야만 하는 그런 아픔이 있음을 배우지 못했다. 앞으로도 많은 아픔과 마주하며 살게 되겠지만, 그럴 때마다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 아픔을 두려움 없이 마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바로 그저께, 관계 때문에 많이 힘들어하는 작가님의 글에 어느 이상 아프기 전엔 뭘 해도 안 되더라는 식의 댓글을 달고 연휴 내내 자책했다. 암만 좋은 말이라도 나 자신에게 하면 했지 다른 사람에게 하기에는 좋지 않은 게 있는데 나는 대체 무슨 말을 한 걸까. 유레카 모멘트가 찾아오며 자력으로 폼나게 깨달은 것도 아니고 모양 빠지게 이불 쓰고 펑펑 짜다가 비몽사몽간에 줍줍한 주제에 뭘 잘났다고 그런 말을 한 걸까. 그냥 들어주기만 하는 거라고 내 입으로 떠들고 다니지 않았나. 아니 서로를 볼 수도 없는데 아무 말도 안 하면 내가 듣고 있는지 소파에 휘떡 뒤집혀서 포테이토칩이나 빠그작빠그작 까처먹고 앉았는지 상대방은 알 게 뭐란 말이냐? 하고 나 자신에게 변명도 해 보지만, 꼭 그렇게 말해야만 했을까. 앞으로는 그런 말은 나 자신한테만 하자. 그런데... 아직도 속상하다.
이젠
무슨 일로든 너무 많이 아프면
그땐 나에게만 살짝 말해 줘야지.
아무래도 나,
많이 더 아파야겠구나.
어떻게 해야 덜 아플지 모르면
그걸 몰라 한참을 더 아파야만 한다면
그 아픔 속에 두 손 모아 고요히 누워 있으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