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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가본드 Sep 30. 2022

자그마한 스크래치와, 생각 한 조각

브런치에 글을 쓴 지도 어느덧 반년이 됐다. 대부분의 시간을 읽는 데 썼지만 그래도 가끔씩 쓸 때는 최대한 집중했고, 그것도 하나하나 쌓이니 어느덧 44개가 되어 있다.


별 것 없는 나의 글에도 구독이 따라붙고 계속 찾아 주시는 분들이 늘어 가니 재미가 붙었다. 주변에서 모든 것이 지나치게 계량화되는 모습에 늘 아쉬움을 품고 살지만 정작 그러면서 나도 한없이 어리숙한 사람이었다. '아, 나 같은 사람의 글도 누가 보긴 하는구나...' 처음에는 분명 이거였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한동안 나도 모르게 구독자 수를 내가 들인 공의 결과물쯤으로 여기고 있었으니.


구독은 브런치 작가들에게 민감한 지점이다. 어떨 땐 양쪽이 서로 구독하는지 한쪽만 하는지에 묘한 자존심 싸움이 숨어 있는 듯할 때도 있다. 내 경우는 100명을 넘기던 무렵부터 신경을 덜 쓰게 되었는데, 구독을 한다고 내 글이 올라올 때마다 읽어 주는 것도 아니고, 클릭 하나로 언제든 취소해 버릴 수도 있고, 이걸 의식할수록 내 글을 쓰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을 알고는 이젠 '늘면 좋지만 아니면 말고'가 되어 있다. 그렇다고 완전히 해탈한 건 아니고 지금도 어쩌다 숫자가 빠질 때는 우울하지만 확실히 예전보다는 덜하다. 어쩌면 그런 상황을 마주하는 방법이 나름 학습된 건지도 모른다(그런 걸 보면 나도 완전히 바보는 아닌가 보다).


나는 구독을 누르기 전에 그 작가님의 글을 충분히 감상해서 혼자만의 내적 친밀도를 높이고 싶어 한다. 읽는 글은 적게는 5개, 많으면 30개가 넘을 때도 있다. 그래야 한다는 게 아니고 그냥 내가 브런치를 하는 방법이다. 나에게 구독이란 그분의 글을 앞으로도 보고 싶다는 의사 표현이다. 내 관심작가 중에는 무려 600명을 넘게 구독하는 프로구독러도 있지만 나는 때려 죽인대도 그렇게는 못하겠고, 관심작가 수가 점점 늘어나며 피드에 뜬 글을 다 소화하지 못하고 허덕허덕하진 않을까 싶은 생각이 생겨나고, 나중에 취소를 고민하는 구독은 하고 싶지 않고, 여러 가지 이유로 구독 누르기에 필요한 시간이 전보다 길어져 있다.




지난주 어느 날, 한 작가님께서 나를 구독하기 시작하셨다. 그분의 페이지에는 80개 정도의 글들이 있었고, 구독자 수는 나보다 2배 정도 많았다. 늘 그랬듯 나는 그 작가님의 페이지에서 글들을 시간 순으로 하나하나 천천히 읽어 올라갔다. 그렇게 일주일. 그리고 어제. 이젠 내적 친밀도가 어느 정도 생겨서 구독을 누르려고 하는데, 알고 보니 그 작가님은 나에 대한 구독을 이미 취소해 버린 후였다.


그 작가님의 글을 천천히 감상하는 건 나중에 하고 일단 맞구독부터 해야 하는 거였을까. 나는 그 작가님께서 어떤 생각이셨는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최소한 내가 앞으로 쓸 글들을 보고 싶은 것보다는 다른 이유가 더 컸다는 건 확실하고 그렇다면 내가 곧바로 맞구독으로 화답했더라도 어차피 그 작가님이 내가 쓰는 글을 챙겨 보아 주실 것도 아니었을 텐데 정작 나는 일주일간 뭘 하고 있었던 걸까. 비록 많지는 않아도 내가 공들여 썼던 글들이 그 작가님께는 구독자 하나를 얻기 위한 소모품에 불과했던 것만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만약 그 작가님께서 구독을 누르시고 차근히 다시 읽어 보니 내 글이 엄청 별로라서 그랬던 거라면 그게 차라리 좋겠다.


쿨하고 싶지만 누구에게도 구독자 수가 아무것도 아닐 수는 없으리라. 뭔가에 공을 들이면 자연스럽게 내가 잘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지게 되고, 그걸로 힘을 얻는 것도 분명 크다. 다만 그게 브런치를 하는 목적이 되지는 않고 싶을 뿐이다. 내가 누군가를 구독할 때 어떤 특정 조건이나 반대급부를 바라지 않고 그저 그분이 앞으로 올릴 글을 보길 원한다는 그 하나의 이유 말고는 아무것도 없기를 바랄 뿐이다.


사람들의 생각은 저마다 다르다. 모두가 나처럼 생각해야 한다고 보지 않는다. 다만 딱 하나, 서로를 구독하는 사람끼리만이라도 생각이 같기를 바란다면 혹시 그조차도 지나친 욕심이 될까. 만약 두 사람이 서로를 구독하는데 정작 한쪽은 다른 쪽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어떤 글을 쓰는지도 모른다면, 그리고 만약 그게 나라면... 어쩌면 조금 슬플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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