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인상의 진실과 오류
1991년 미국 LA 코리아타운. 한인 슈퍼마켓에 흑인 소녀가 들어와 가방에 음료수를 넣는다. 소녀가 도둑이라고 직감한 여주인은 음료수가 든 가방을 잡고 실랑이를 벌이다 주먹으로 얼굴을 맞고 이에 총기를 발사, 15세 흑인 소녀는 즉사한다. 법원에서는 "그동안 흑인 강도가 많았기 때문에 피고가 착각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며 정당방위를 판결했다. 여주인이 얼굴을 맞는 순간 소녀가 자신을 죽일 수도 있다는 ‘착각’을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그 착각은 이듬해 코리아타운의 90%를 파괴시킨 LA 흑인폭동의 기폭제가 된다. 이러한 첫인상이 가져오는 착각이 당신의 인생에도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첫 데이트, 면접, 영업사원, 정치인, 그리고 새로운 브랜드. 새로운 것은 언제나 상대방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길 원한다. ‘첫인상이 당신의 인생을 결정한다’는 신화적 믿음 때문이다. 같은 사람인데도 옷차림이나 헤어스타일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의 평가는 검사에서 백수까지 변하며, 면접관으로 관상가가 참여하는 곳도 있다고 하니, 면접에 합격하기 위한 ‘취업성형’이 유행이 된 것이 이상할 것도 없다.
스탠리 밀그램 Stanley Milgram의 ‘권위에 대한 복종 실험’에서 증명된 바와 같이, 사람들은 흰색 가운만 보아도 권위와 위압감을 느끼며, 출신 대학만으로도 그 사람의 지적 능력을 평가받으니 ‘*스웨그’와 ‘스펙’이 만연한 사회가 된 것도 당연하다.
*swag. 셰익스피어의 희곡 <한여름 밤의 꿈(A Midsummer Night's Dream)>에 나온 말로 '건들거리다', '잘난척하다'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는데, 현대에 들어 의미가 확대되어 자신만의 여유와 멋, 약간의 허세를 여과 없이 솔직하고 자유분방하게 표현하는 것을 의미
인상이란, 마음속에 모양(모양상象)을 새긴다(도장 인印)는 뜻이니, ‘첫인상이 마지막 인상이다’는 것은 말이 된다. 그런데, 인상을 판단하는 시간이 찰나의 순간이라는 것을 믿을 수 있는가?
다트머스 대학교의 심리 뇌과학자 왈렌 Paul Whalen은"편도체가 눈매로써 첫인상을 판단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7/1000초다"는 것을 실험으로 밝혀냈으며, 또한 프린스턴 대학교의 심리학자 토도로프 Alexander Todorov는 「정치인의 첫인상이 선거에 미치는 결과」 연구로 후보자 결정에 불과 1초의 시간도 걸리지 않는 것을 증명했다.
찰나의 순간은 1/75초(0.013초)인데, 과학으로 증명(0.017초)된 시간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과연, 이 짧은 시간에 인상을 판단하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우리는 왜 이렇게 빠르게 인상을 판단하게 되었을까? 인간은 사냥과 전투를 통해 강한 외모는 공격의 위험성이 있으므로 적대적으로 느끼고, 종족 번식을 위해 좋은 유전자를 고르는 과정에서 매력적인 외모를 선호하게 된다. 그리고, 원시시대부터 학습된 이러한 자연에의 적응은 우리에게 본능처럼 남아 자신(혹은 부모)과 닮은 외모에 호감을 느끼게 된 것이다. 그런데 사회가 복잡해지고 정보가 많아지면서 첫인상의 형성에 본능 이상의 것이 작용하게 된다.
인간이 오감을 통해 받아들이는 정보는 초당 천만 개가 넘는데, 우리의 뇌는 스마트하게도 이 많은 정보 중에서 40개 정도만 뇌에 저장한다. 우리의 뇌는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먼저 제시된 정보가 나중에 들어온 정보를 해석하는 기준이 되어 영향력을 발휘하는 초두효과 Primacy Effect가 발생하는데, 첫인상이 중요한 이유가 이것이다. 짧은 첫인상은 긴 인간관계를 규정한다.
이렇게 첫인상은 상대방에 대한 정보 중 극히 일부를 토대로 빠르게 판단되는데, 심리학자 메라비언 Albert Mehrabian에 의하면 인간 커뮤니케이션의 단지 7%만이 언어적 words요소이며, 93%는 비언어적 body language & tone of voice요소인데, 특히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에서 시각적 요소가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맥거크 효과 McGurk effect에 의하면, 시각이 청각과 미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서점에서 관심 있는 분야의 코너에서 마음에 드는 책 표지만 보고 책을 사는 것처럼, 인간은 시각적 자극 중 자신이 원하는 것이나 믿는 것만 보고 첫인상을 형성하고 자신이 판단한 첫인상을 강화하기 위해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는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으면 무시하기 때문에 첫인상은 과장되고 왜곡되기 마련이다.
이처럼 애초에 첫인상이라는 것은 본능적이고 비이성적으로 형성되지만, 우리는 우리의 신념과 실제가 다를 때, 오류를 바로잡기보다는 생각을 바꿔 불일치를 제거하는 인지부조화를 겪기 때문에 사실 첫인상은 잘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첫인상이 좋으면 나중에 잘 못을 하더라도 ‘누구나 실수는 한다’는 식으로 생각하지만, 첫인상이 나쁘면 잘 못에 대하여 ‘그럴 줄 알았다’는 편견을 가지게 된다. 즉, 첫인상은 순간적으로 긍정적 혹은 부정적으로 각인이 되어 나중의 관계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그러나, FBI 30년 베테랑 프로파일러 profiler(범죄심리 분석관) 메리 앨런 오툴은 사람의 겉모습만으로는 그 사람을 알 수 없다며 '첫인상은 항상 배신한다'라고 한다.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우리네 속담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동안 우리는, 범죄자는 애초에 범죄자로 태어나고 그들은 특별한 신체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범죄심리학의 창시자인 체사레 롬브로소 Cesare Lombroso의 ‘생래적 범죄인설’에 따라 험상궂게 생긴 사람은 ‘범죄형 인간’으로 규정하는 식으로 인상에 대한 사회적 선입견을 지켜왔다. 이러한 선입견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표준화’되어 있는데, 가령, 동양에는 오래전부터 인물을 평가할 때 *신언서판이라는 기준을 두기도 하였다.
身言書判. 중국 당나라 때 관리를 등용하는 시험에서 인물 평가의 기준으로 삼았던 몸[體貌]·말씨[言辯]·글씨[筆跡]·판단[文理]의 네 가지를 이르는 말.
상대방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한 조건-사회적 인식-이 명확하므로, 첫인상을 속이는 것은 어찌 보면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가령, 소비사회에서는 특정 직업이나 조직에 속하는 사람들의 외모를 규정짓고 소비하게 만든다. 그것이 브랜드 퍼스낼리티이다. 그래서 검사의 외모와 비슷하게 옷을 입고 행동하면 검사로 착각하고, 백수처럼 옷을 입고 행동하면 백수로 보는 것이다. 선거에서 후보자는 더 이상 정책에 신경 쓰지 않는다. 서민을 위하는 척, 소통하는 척하면 그 이미지가 그 후보에게 투표하게끔 한다. 우리는 매일 이런 첫인상의 속임수에 꼬드김을 당하고 배신당하는 것이다.
그러면, 상대방으로부터 첫인상이 낙인찍히면 그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가? 분명한 것은 나쁜 첫인상을 바꾸기 위한 시간과 노력이 좋은 첫인상을 주려는 시간과 노력보다 더 크며, 첫인상은 대인관계에 큰 변수임에는 틀림없다. 현대사회에서 인관 관계는 싫다고 멀리하거나 끊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첫인상이 좋지 않더라도 그것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여기 간단한 방법이 있다.
파리의 명물, 프랑스의 자랑인 에펠탑의 설계도가 처음 공개되었을 때, 철골 구조물에 대한 반응은 차가웠다. 예술가들과 파리 시민들은 흉물스럽고 천박하다며 반대 시위를 벌였고, 결국 프랑스 정부는 20년 후 철거를 약속하고 에펠탑을 세우게 되는데, 파리의 경관을 망친다며 에펠탑을 세우는 것을 반대했던 소설가 모파상 Maupassant은"파리 시내에서 에펠탑이 안 보이는 유일한 곳이 여기다"라며 매일 에펠탑에서 식사를 할 만큼 에펠탑은 사랑받지 못했었다. 그러나 지금, 에펠탑이 없는 프랑스 파리는 생각할 수 없다.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게 된 에펠탑, 그 사랑의 이유는 단순하다. 항상 그 자리에서 계속 보였기 때문이다. 이것이 자주 보는 것만으로도 호감이 증가한다는 에펠탑 효과(단순 노출 효과)이다.
첫인상이 극단적으로 나쁜 경우에는 자주 보여줄수록 호감보다는 혐오감이 증가하게 된다고 하지만, 첫인상의 평가가 바뀌는 경우가 많이 있다. 주연급 주연으로 ‘신 scene스틸러’에서 ‘심心스틸러’가 된 유해진 같은 배우가 그런 경우다. ‘범죄형’이라는 초기 평판을 넘어, 그는 꾸준히 반전 매력을 보여주었고, 볼수록 매력이 많은 볼매남의 대명사가 된 것이다. 첫인상이 좋지 않게 형성되었다고 할지라도, 반복해서 제시되는 행동이나 태도가 첫인상과는 달리 진지하고 솔직하게 되면 점차 좋은 인상으로 바뀌어지는 현상을 빈발 효과 Frequency Effect라고 하는데, 첫인상이 좋지 않은 사람들은 실망하지 말고 성실하게 관계와 내공을 쌓아 나가면 된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좋아하는 성향이 있다. 단순한 소통을 넘어 거울과 같이 상대방의 태도나 가치관 등을 이해하고 유사하게 소통하면 상대방으로 하여금 신뢰와 친밀도를 얻을 수 있다는 개념의 라포 rapport라도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라포는 ‘사실상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을 반영해 주는 사람을 좋아한다(Really All People Prefer Others ReflectThemselves)’는 줄임말인데, 결국 호감을 얻으려면 자기의 이야기를 떠드는 사람이 아니고 거울처럼 상대방을 비춰주고 들어줘야 한다는 단순한 진리와 다름 아니다.
최근 인기를 끌었던, 영화 《관상》에는 인상에 대한 중요한 두 가지 대사가 있다. 한 사람의 관상에는 그 사람의 인생에 대한 정보가 있다는 의미로 “얼굴에는 세상 삼라만상이 모두 다 들어있소이다!”라는 대사와 또 하나는 한 사람의 관상은 사회적 관계 안에서 규정된다는 “난 관상만 보았지 시대를 보지 못했소”라는 대사이다.
찰나의 순간에 결정되는 첫인상에 따라 그 사람의 진면목이 실현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한다. 이것은 인간의 본능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에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냥 인정하자. 그러나, 사회적 관계 안에서 한 인간에 대한 평가는 비교적 오랜 시간 동안 축적되고 변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첫인상이 호감형이 아니다고 투덜대지 말고, 자주 보면 익숙해지고, 관계 속에서 매력을 보여주면 평판이 바뀌고, 진정성을 가지고 공감대를 형성하면 호감이 생겨 첫인상의 멍에도 벗을 수 있다는 것을 실천해 보자. 그러면 첫인상이 바뀌고 인생이 달라지는가?
대답은 “그렇다”이다. 인간관계에서 우리가 진정 얻고 싶은 것은 사랑과 존중이며, 사랑과 존중으로 상대방을 대하면 그것은 부메랑으로 돌아오게 마련이다. 결국, 사랑과 존중으로 충만한 삶을 사는 사람은 인상도 그렇게 바뀌게 되어, ‘생겨먹은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대로 생겨먹게 된다’.
※ 브런치 매거진, 『프로그래밍화된 심리』는 심리학 '이론' 자체보다는 '개론'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입니다. 제가 심리학자가 아닌 까닭에 적정선에서 다루는 이유도 있겠거니와, 심리학을 심리학 밖으로 꺼낼 때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심리 현상을 모티브로 하여, 우리 일상의 고민과 소비의 연결고리를 찾는 데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사실 우리네 고민의 대부분은 '상품을 소비'하는 것을 넘어, 이념, 정체성, 관계, 그리고 안정감(불안 해소)까지도 소비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복잡성, 그리고 혼란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데요, 그것은 우리가 인식하든 인식하지 못하든 ‘소비사회의 메커니즘과 매스미디어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프로그래밍 되어 있는 것이죠.
즉 '불안'과 '죄책감'과 같은 심리상태는 사실, 어떤 '메커니즘'에 의해 '세상을 보는 틀' 뿐만 아니라 '생각과 행동의 방식'마저 재단 당하고 암묵적으로 지시당한 결과 느끼게 되는 '프로그래밍화된 심리'이며, 이로 인해 우리는 그 어떤 '메커니즘'에 더 강하고 깊게 지배당하게 된다는 것이 저의 관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심리를 더 객관적이고 진지하게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자기 자신의 삶에 더 다가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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