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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호훈 Nov 10. 2017

우리는 우리의 기억을
믿을 수 있는가?

“기억은 사실과 허구가 뒤얽힌 창조적인 메커니즘이다”


14살 된 소녀의 엄마가 수영장에서 익사했다. 30년이 지나, 그녀의 삼촌은 물에 빠진 엄마를 처음 발견한 것이 그녀였다고 알려 주었다. 그녀는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때의 일들은 금방 되살아났고, 그녀는 생생하게 다 기억해 내기에 이른다. 그런데, 얼마 후 그녀의 엄마를 발견한 것은 그녀가 아니었다는 삼촌의 전화가 온다. 그녀의 기억은 ‘거짓 기억 false memories’이었던 것이다. 훗날, 그녀는 (거짓) 기억의 대한 연구로 세계적인 권위자가 된다. 그녀는 *엘리자베스 로프터스이다.


*Elizabeth F. Loftus(1944~, 美, 심리학자) 캘리포니아 대학교 심리학·범죄학·인지과학 교수로 거짓 기억과 조작될 수 있는 기억에 대해 연구하고 있으며, 기억은 왜곡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등 ‘인간 기억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우리의 기억은 진짜 기억일까? 


우리의 기억이 불완전하고 부정확 하다는 것을 직접 경험한 로프터스는 기억의 왜곡과 재구성에 대한 연구를 시작으로, 목격자 증언에 지나치게 의존할 경우 따를 수 있는 위험 연구로 이어졌다. 미국은 배심원들의 증언에 대한 신뢰가 매우 높으니, 그녀의 ‘목격자 증언의 부정확성’ 실험은 엄청난 논쟁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로프터스는 실험에서 목격자는 당시의 상황을 그대로 재생하는 것이 아니라 재구성과 왜곡을 한다는 것, 그리고 목격자들의 기억에 대한 확신과 실제 기억의 정확성과는 관계가 없다는 것을 밝혔기 때문이다.


실제로 트로이 데이비스 Troy Davis는 1991년 경찰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된 후, 어떠한 증거도 없이 순전히 배심원의 증언만으로 사형 판결을 받았으나, 후에 증언했던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증언을 번복한다. 경찰의 강압에 의한 기억 동조가 있었기 때문이다. 기억 동조란, 자신의 기억을 사회적 환경(혹은 그 상호작용)에 끼워 맞추기도 하고, 그것이 오랫동안 반복되면 자신도 모르게 거짓된 기억을 맞는 기억으로, 혹은 남의 기억을 나의 기억으로 착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22년간 무죄를 주장하다 결국 어이없는 죽음을 맞이한 데이비스와 같이, 타인의 잘못된 기억 때문에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은 한두 명이 아니다. 미국의 한 프로젝트에서 자신들이 범하지 않은 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아 수감되었다가 DNA 검사 덕분에 무죄가 입증된 300명의 사건들을 분석해보니 75%가 잘못된 기억, 거짓 기억에 의한 증언 탓이었다고 한다. 결국 기억은 잘 정리된 컴퓨터 폴더와 같이 분류되어 저장되고 LP판처럼 순차적으로 재생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인데, 그렇다면 우리의 기억은 진짜인가? 가짜인가?



기억은 기록이 아닌 해석이다!


기억은 기록할 ‘기記’와 생각할 ‘억憶’으로 즉, 정보를 저장하고 인출하는 과정 혹은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기억은 일반적으로 감각을 통해 접한 정보 중 자신과 연관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것을 단기 기억으로 넘긴다. 단기 기억은 20초 전후의 짧은 순간의 기억으로 의미단위를 군집화(전화번호를 세 자리, 네 자리로 끊어 기억하는 것처럼) 한다든지, 이미지화하여 오랫동안 기억을 유지시켜 장기기억에 남게 한다.


그런데, 이 기억의 과정이 컴퓨터처럼 명령에 의해 작동(input-output)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 안에 있는 수많은 것들이 단서에 의해 추론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관점이나 취향에 따라 세상을 바라보고 그것을 기억하며, *에빙하우스의 ‘망각곡선’에 따라 학습 후 10분 후부터 망각이 시작되어, 1시간 뒤에는 50%가 하루 뒤에는 70%가 한 달 뒤에는 80%를 망각하기도 한다. 기억의 저장체계는 하나가 아니라서, 만약 머리를 다쳐서 과거를 기억하지 못해도 자전거 타는 법을 기억할 수도 있다. 한때 유행했던 광고 카피처럼 ‘기록이 기억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트라우마 trauma처럼 마음이 기억을 지배하기도 한다. 

*Hermann Ebbinghaus(1850~1909, 獨, 심리학자) 독학으로 역사학ㆍ언어학ㆍ철학을 거쳐 심리학을 연구하였다. 베를린대학, 브레슬라우 대학, 할레대학 등에서 교수로 있었으며, 기억과 망각의 실험 연구를 개척하였다.


결국, 우리의 기억은 객관성을 담보하는 기록이라기보다는 주관적 견해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아내의 강간살해 사건의 충격으로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린 남자가 범인을 쫓는 과정을 그린 영화 《메멘토 Memento》에서 주인공은 단서를 잊지 않기 위해 자신의 몸을 메모지 삼아 문신을 하는데 기억을 위한 문신이 사건을 왜곡할 도구가 될 수도 있다. 근본적으로 인간의 기억은 해석의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기억의 메커니즘으로 소비를 자극하다 


이렇듯, 기억의 허구성에도 불구하고 소비사회에서는 기억의 메커니즘을 무시할 수 없다. 왜냐하면, 경쟁제품과의 차별점을 지속적으로 각인시켜야만 소비의 순간에 나를 기억하고 사줄 것이 아닌가? 나를 오랫동안 기억하게 하는 가장 단순하고 훌륭한 방법은 ‘자주 보여주는 것’인데, 그 끝에 *식역하 광고가 있다. 잠재의식에 광고를 한다고? 효과가 있을까? 영화를 보는 동안 5초 간격으로 “팝콘을 먹어라, 코카콜라를 마셔라 Eat Popcorn and Drink Coca-Cola"라는 슬로건을 1/3000초 동안 주기적으로 보여주는 것만으로 콜라의 판매량은 18.1%, 팝콘의 판매량은 57.8% 증가하였다고 한다. 

*subliminal advertisement. 소비자가 인지할 수 없는 속도 또는 음량으로 소비자의 잠재의식에 호소하여 구매 행동에 영향을 주는 광고기법


그러나, 너무 자주 노출되다 보면, 오히려 브랜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발생하기도 한다. CJ E&M의 김혜영 PD는 연구논문에서 심리학자 잭 브렘 Brehm의 '*심리적 반발 이론'에 근거하여, "PPL의 노출 수준이 높아지면, 시청자들은 PPL을 더 잘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시청의 방해 요소로 느끼며, 이러한 심리적 반발심이 채널을 돌리는 등의 행동으로 이어져 결국 시청률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라고 하였다. 결국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한 것이다. 이것은 구매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인데, 구매 시점에 너무 많은 정보를 주면 구매자는 정보 과부하 상태가 되어, 아무거나 사거나, 안 살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과 동일한 현상이다.

psychologicalreactance theory.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하려는 자유를 박탈당하거나 제한되리라는 위협이 있을 때, 심리적 반발이나 저항 또는 자유를 복원하기 위한 다양한 행동을 하게 된다는 이론


          지금의 마케팅에서 필수적인 요소로 이야기되는 ‘스토리텔링’도 기억의 메커니즘을 잘 이용한다. 우리는 이해한 대로 기억하기 때문에 학습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주입식 교육, 다양한 경험과 독서 같은 것들이 끊임없이 접착제로서 역할을 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정보의 파편들이 서로 혹은 이미 알고 있는 지식들과 연결되어 효과적으로 기억되기 때문이다. 결국, 브랜드의 ‘스토리’와 ‘체험’이 강조되는 이유는 광고의 효과가 떨어지자, 브랜드와 소비자를 를 묶는 접착제 역할이 필요했던 것이다. 



디지털을 통해 기억을 기억하다?


소비사회가 쏟아내는 정보와 관계들은 그 양이 막대하여 더 이상 통제하기 어려운 지경이다. 사람들은 더 많은 기억을 제대로 기억하고 싶어 한다. 아니, 기억해야 한다. 그래서, 컴퓨터나 스마트폰이나 각종 기억 보조장치의 도움을 얻고 있다. 이제, 우리의 기억 혹은 기억력은 점점 더 디지털화되어 가고 있고 SNS와 같은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도구를 통해 공유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며 문제가 생긴 것이다. 이제, 잘 가던 길도 내비게이션이 없으면 못 가고, 스마트폰의 주소록이 없으면 전화 한 통화할 수 없다. 정보를 정리해주는 서비스가 없다면 무엇을 봐야 할지도 모르게 되었다. 가장 훌륭한 기억장치이자 처리장치인 뇌를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어쩌면 인간은 스마트 시대를 맞이하여 덜 스마트 해지고 있다.


이렇게 디지털 기기 사용에 익숙해지면서 사람들의 기억력과 계산능력이 크게 떨어지는 현상을 디지털 치매 Digital Dementia라고 하는데, 디지털 장비에 익숙하고 의존도가 높은 젊은 층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IT 전문가이자 저명한 칼럼니스트인 니콜라스 카 Nicholas Carr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서 “우리의 뇌는 진화의 산물로서, 오랜 세월을 거쳐 특정한 환경 조건에 적응해왔고, 단언컨대 이러한 환경조건에는 디지털 미디어가 속해 있지 않다. 그리고 오늘날 많은 문명화 질병이 과거의 생활방식과 현대의 생활발식 사이의 부조화 때문에 나타나고 있는 것처럼, 디지털 미디어가 진화와 신경생물학적 부분에서 우리의 정신적 프로세스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 또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인간은 기억을 기억하고자 하는 노력에서 창조를 하곤 하는데, 이 디지털화된 기억을 검색하는 과정에서는 사실 그러한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 손쉽게 정보를 얻으려 하지 말고 집중력과 사색의 시간을 가져야 하는 이유이다.



기억의 재구성으로 마음을 다스리다


동물도 기억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하지만 인간의 기억은 조금 다르다. 출산의 고통이 너무 강해 “다시는 애를 낫지 않겠다”는 애기 엄마는 아기를 키우면서 좋은 기억 때문에 고통의 기억을 잊고 다시 출산을 한다. 이러한 인간의 완전무결하지 않은 기억이 (극단적으로 말하면) 인류를 지속시킨 것이고, 기억의 불완전성이 사실은 우리 인간의 가장 완전한 모습인 것이다.


그럼에도 자신의 기억을 찾기 위한 전직 요원의 고군분투를 그린 영화 《본 아이덴티티 The Bourne Identity》와 같이 지금 시대의 영화와 드라마는, 기억을 상실한 자가 그 기억을 찾아가며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해 가는 것을 많이 담아내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함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인간의 기억(력) 그 자체가 정신적 고통의 가장 큰 원인(90% 이상의 정신질환은 과거의 기억 때문)이라고 것과 망각은 신이 내일 선물이라는 니체 Nietzsche의 말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면 굳이 불완전한 기억을 찾아 노력할 필요가 있나 싶다.


풍요를 채울수록 텅 비는 마음과 상처받은 마음을 극복하기 위해, 마음을 다스리는 글을 검색하고 명상하고 심리치료까지 받는 것이 현대인의 모습일진대, 마음이라는 것이 기억, 그리고 기억의 연상이 떠올리는 생각, 감정, 의지, 혹은 상상력의 작용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은 기억을 다스리는 간단한 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어차피 기억은 주관적인데, 내 맘대로 조금 더 좋게 재구성해보는 것은 어떨까? 그것이 바로 행복을 위한 ‘긍정적 자기암시’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 브런치 매거진, 『프로그래밍화된 심리』는 심리학 '이론' 자체보다는 '개론'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입니다. 제가 심리학자가 아닌 까닭에 적정선에서 다루는 이유도 있겠거니와, 심리학을 심리학 밖으로 꺼낼 때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심리 현상을 모티브로 하여, 우리 일상의 고민과 소비의 연결고리를 찾는 데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사실 우리네 고민의 대부분은 '상품을 소비'하는 것을 넘어, 이념, 정체성, 관계, 그리고 안정감(불안 해소)까지도 소비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복잡성, 그리고 혼란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데요, 그것은 우리가 인식하든 인식하지 못하든 ‘소비사회의 메커니즘과 매스미디어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프로그래밍 되어 있는 것이죠.
           즉 '불안'과 '죄책감'과 같은 심리상태는 사실, 어떤 '메커니즘'에 의해 '세상을 보는 틀' 뿐만 아니라 '생각과 행동의 방식'마저 재단 당하고 암묵적으로 지시당한 결과 느끼게 되는 '프로그래밍화된 심리'이며, 이로 인해 우리는 그 어떤 '메커니즘'에 더 강하고 깊게 지배당하게 된다는 것이 저의 관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심리를 더 객관적이고 진지하게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자기 자신의 삶에 더 다가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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